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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여행자 Aug 11. 2020

오늘도 비빔밥을 먹었다.

직장생활 애증의 점심메뉴

이전 발행물에서 나는 이런 말로 글을 마쳤다. '혼자서 잘 살기에 성공했으니 이제 누군가와 함께 잘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만 미워할 것이라면 더 정확하게 미워하고 좋아할 것이라면 재지 않고 마음을 내주겠다고.' 그리고 어젯밤 잠을 설쳤는데 아무래도 글의 핵심에 해당하는 저 말에 확신이 없어서다. 게다가 글에서 혼자가 좋다는 내 심경의 변화를 불러온 건 영화 속 조지 클루니의 달콤한 격려의 목소리 아니었나. 더구나 그는 주인공과 같이 죽을뻔 한 위기에서 주인공을 구하고 죽은 영웅이기까지 했다. 현실에 이런 동료가 있을까? 여러분도 알고 나도 알다시피 그런 동료는 없다.  


같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지만 여전히 나는 혼자 일 하는 게 좋다. 혼자 일하면 무엇보다 밥을 혼자 먹을 수 있다. 즉, 날마다 점심메뉴로 비빔밥을 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고추장찌개, 차돌 된장, 비빔국수... 손 맛 좋은 이모님의 필살기가 즐비한 백반 집에서 하필 비빔밥이라니. 게다가 나는 비빔밥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비빔밥은 그러나 식당에서 유일하게 다른 사람의 숟가락을 침범받지 않고 독점할 수 있는 유일한 메뉴였다. 찌개는 2인분 이상을 시키면 작은 뚝배기가 아닌 큰 냄비에 나와 숟가락이 섞이기 일쑤였고 매콤한 비빔국수처럼 입맛을 돋우는 별미에 속하는 한 그릇 음식은 "한입만"의 표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텀벙텀벙 숟가락이 섞여도 맛있게 밥을 먹고 후식으로 동그랗게 둘러앉아 팥빙수까지 함께 떠먹는 동료애 앞에서 나는 사무실에서와 달리 종종 사회생활 부적응자가 됐다. 내가 특별히 비위가 약하거나 위생관념에 유난한 사람도 아닌 것 같은데.


역시 혼자 살아갈 팔자인가? 조지 클루니 같은 동료라면 고추장찌개를 함께 떠먹을 수 있을까? 그래비티에서 조지 클루니는 어떤 동료였나. 따지고 보면 조지 클루니는 인류애나 동료애로 동료를 살린 게 아니었다. 그는 고도로 훈련받은 우주선 조종사다. 유사시 행동 요령을 수도 없이 익혔을 것이다. 그는 매뉴얼대로 했다. 그것이 우주선 비행사로서의 선(善)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게 善한 동료란 자기가 할 일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 할 일을 유능하게 해내는 사람이다. 썩 유능하지 못해도 열심히 해보려는 동료까지는 오케이. 그리고 이제, 나도 단련이 되어 내가 기대하는 만큼의 상냥함이 없는 동료쯤이야 일만 잘한다면 과한 의미 부여 없이 그냥 넘길 줄 알게 됐다.

아니 이 외의 자질은 좋은 의도라 해도 대개 성가시다. 따뜻할 필요 없고 착할 필요 없고 술자리를 자주 만들어 어깨를 다독일 필요도 없다. 할 일을 알고 제대로 하는 사람이면 된다. 살짝궁 하나만 더 덧붙이자면 일 외적으로 타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평가하지 않고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면 족하겠다. 이 정도만 소박하게 완벽한 동료라면 가끔 내 앞의 순두부찌개에 숟가락을 담가도 "앞으론 덜어서 드릴게요."라고 용기 내서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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