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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여행자 Nov 12. 2020

아침의 전단지

알바생의 얼굴을 제대로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오후에만 오가던 사무실에 이른 아침 볼일이 생겨 직장인의 출근 시간에 직장인 흉내를 내며 허둥지둥 걷던 중이었다. “수건 떨어져요. 수건!”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출근하는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에서 웬 수건 타령인가 싶었지만 외침은 꽤 긴박하게 계속됐고 뒤늦게 그것이 나를 향한 것임을 눈치챘다. 날이 차 목에 대강 두르고 나왔던 머플러가 땅에 끌리고 있었던 거다. 수건이라니, “이래 봬도 캐시미어 머플러인데....” 얼른 머플러를 추스르며 고맙다고 눈인사를 하고 보니 날마다 어둑할 무렵 저녁을 먹기 위해 오가던 상가 앞에서 지나쳤던 전단지 할머니였다. 그를 아침에도 목격한 것은 뜻밖이었다. 하긴 이 근처에 산다면 아침과 저녁 무렵에 같은 장소에서 전단을 돌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가 내게 건네는 전단지를 그동안 나는 단 한 차례도 받지 않고 지나쳤더랬다. 거의 매일 지나치면서도 전단지를 받지 않은 이유는 오래전에 내린 나름의 결단 때문이었다. 20대 때 같이 일하던 선배와 꽤나 진지하게 광고 전단지를 대하는 올바른 자세에 관해 토론한 적이 있었다. 읽히기도 전에 곧바로 버려지곤 하는 전단지의 환경적 유해성 대 빨리 일을 마쳐야 하는 알바생의 입장만을 놓고 대립해서 토론했다. 나는 취업 취약 계층 비율이 높은 전단지 알바생을 그냥 지나치는 것은 좀 매정하지 않으냐는 입장이었고 선배는 그런 마음으로 읽지도 않을 전단을 받으면 환경에 유해한 시스템을 사라지게 할 수 없으며 노년 고용 문제는 나라가 나서서 고민해야 할 구조적 문제라고 맞섰다. 게다가 불법으로 이뤄지는 전단지 광고의 유형도 꽤나 다양하다는 말도 보탰다. 선배의 말에 설득된 나는 그날부터 전단지를 받지 않기로 했고 어디까지 읽고 언제쯤 버릴지 몰라 난감한 마음과 버려지는 종이를 볼 때마다 언짢음을 느끼지 않아도 되니 편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나는 할머니 알바생과 눈이 마주친 그 아침 이후로 꼬박꼬박 전단을 받고 있다. 그동안 그가 내게 건네려던 전단은 필라테스 광고였다. 일대에선 유일한 기구 필라테스 업체라는 소개였다. 필라테스라면 나와 전혀 무관한 광고는 아니라고 생각하며 쓱 읽고 가방에 구겨 넣었다. 그리고 나는 그날부터 누군가 전단지를 내밀 때마다 받아 모은다. 못 본 척 지나치는 동안엔 몰랐는데 하루에도 몇 번이나 전단지를 받는 날도 있었다. 새로 오픈한 미용실이나 감자탕집, 때론 불법으로 추정되는 대출 광고도 있었다. 처음엔 재활용 통에 버렸으나 사실상 재활용이 어려운 경우가 태반이라고 해 종이 접시도 접어보고, 욕실 청소할 때 머리카락 뭉치 같은 이물질을 싸서 버릴 때 쉽게 젖는 휴지 대신 쓰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광고 전단지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편치 않다. 받아서 바로 길바닥에 내버리는 사람이 대다수니 몇초 만에 쓰레기로 전락하기 일쑤다. 거리가 지저분해질 뿐 아니라 가뜩이나 귀한데 소용없이 동원되는 나무들도 걱정이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전단지 시장에도 O2O 바람이 불어 맞춤 고객층만을 위한 온라인 전단지도 등장했다. 그런데 이런 추세가 계속 된다면 할머니들의 일자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날마다 거리가 어둑해질 때 내게 전단지를 권하던 그녀의 실루엣은 그리 피곤한 줄을 몰랐는데 내 목도리를 걱정하는 아침의 얼굴은 위급함을 알리던 커다란 목소리완 달리 늙고 지쳐보였다. 아침의 훤한 빛 아래였기 때문일까 밤에만 보던 사람을 아침에 만났을 때 느끼는 어색함 탓이었을까?

밤에 주로 나에 대해생각한다면 아침엔 다른 것에도 환해진다. 그러니까 할머니 알바생의 얼굴 같은 것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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