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zyvision Jul 23. 2023

23.03.25 :새로운 일, 낯선 감각, 불안한 마음

맨땅에 발 딛고 싶진 않았는데?


우리는 Y의 집에 모였다. 가게에서 판매할 음식 테스트를 해보기 위해서였다. 가게를 운영하는 데 있어 어쩌면 와인보다 조금 더 중요할 수도 있는 요소였다. 전날 단톡방에서 오고 간 대화에서 나온 재료를 미리 주문했다.

결국 맛만 보고 보내준 (짱 맛났던) 떡볶이


간단한 샐러드를 위한 토마토, 오이와 같은 야채들, 뜬금없이 내 머릿속에 떠오른 명란 오차즈케도 포함되었다. Q는 친구네 집에서 맛보고 반해버렸다는 떡볶이 소스도 챙겨 왔다.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오전 커피 루틴으로 정신을 깨우고 점심시간이 다되어 Y의 집에 입장했다. 딱 배가 고파질 시간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배고플 때 메뉴 테스트를 하는 것은 썩 현명한 선택은 아니다. 배가 고프면 행동이 급해지고 뭘 먹어도 맛있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나는 먹고 싶었던 오차즈케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참기름을 조금 부어서 위에 명란을 올렸다. 타닥, 타다닥,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소리와 함께 터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흩어진 작은 알알들이 튀어 올랐다. 원래 이러는 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를 Q와 Y가 뭐 하냐는 얼굴로 바라보다 옆에 있는 환풍구를 켰다.


이번엔 녹차를 우려야 했는데 티백이 안보였다. Y의 취향이란. 찬장엔 고급스러운 포장지의 알 수 없는 찻잎이 가득했다. 한창 뒤적거리다 딱 하나 남아있는 녹차 티백을 찾았다. 조미김도 다행히 하나 남아있었다. 그야말로 재료를 긁어모아 완성된 오차즈케는 유튜브 레시피 영상의 섬네일처럼 보기에 아름답지는 못했지만 맛은 있었다. (참치액 넣는 걸 까먹어서 뒤늦게 섞어 비볐음에도 불구하고)


Q는 냉동된 가래떡을 꺼내 큰 칼을 들고 낑낑거리며 잘라내려 애썼다. 해동을 시켰어야 하는데 너무 얼어버린 탓이었다. Y가 (연약한) 손목에 힘을 주고 칼질을 몇 번 하고 겨우 겨우 떡을 잘라냈다. 그 뒤에는 물에 넣어서 녹이고 전자레인지에 돌려보고- 이리저리 해보다 보니 나름 먹기 좋은 상태가 되었다.


케이터링 사업을 하는 Q의 친구가 부산에 놀러 갔다 반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떡볶이 집의 소스를 꺼냈다. 고추장맛이 진한 달콤 매콤한 맛이었다. 맵찔이인 Q가 좋아할 만한 맛이다. 반짝이는 유리그릇에 예쁘게 담으면 어울릴 것 같다며 위에 소스를 듬뿍 뿌렸다. 오, 예상보다 더 맛있었다. 우리는 한 그릇을 뚝딱하고 한 그릇을 더 만들어 먹었다.


내가 호주에서 워케이션을 하는 동안 매일 만들어 먹었던 샐러드도 만들었다. 토마토, 오이를 팡팡 썰어 올리브유와 후추를 뿌리면 완성되는 간단한 사이드였다. 어찌어찌 차려진 점심상을 앞에 두고 이 메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시작했다.


Q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라고 했다. 셋이 동일한 수준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요리로 메뉴를 채워야 한다는 의미였다. Y는 그래도 메뉴의 완성도를 높여줄 만한 구성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와인바라고 하면 사람들이 기대하는 어떠한 수준이 있다는 의견이었다.


글쎄, 어디로 가야 더 잘 될 수 있을까, 사람들이 더 이 공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안정적으로 메뉴를 제공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고, 손님들이 만족할 수 있는 메뉴 구성으로 경험 수준을 높이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둘 다 옳게 들렸다. 시뮬레이션으로 쉽게 판단되지 않는 대화가 끊이지 않고 오갔다. 확실한 것은 우리 모두가 다른 기준을 가지고 이 일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시간은 흘렀고, 우리는 몇 가지 합의에 도달했다. 일단 테스트해 보는 것. 요리해 보고, 맛보고, 그릇에 내어보고, 이 모든 과정을 해보지 않으면 우리도 알 수 없다. 이 모든 상황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회사는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된다'라는 대략적인 여러 개의 솔루션이 있는 곳이었고, 그 여러 개의 선택지 중에 적절한 것을 골라 조금씩 조절하며 일을 하는 것은 이제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일은 달랐다.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고, 지식도 없다. 소모적인 일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회사 입사 초반에 겪었던 고난과 고통을 다시 한번 경험해야 하는 것이다. 아이고 귀찮고 귀찮다. 근데 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 기분은 뭘까. 뭐라고 해야 하나, 귀찮아 죽겠는데 왜 재미있을 것 같고 기대가 되는 걸까?


이전 05화 23.03.18 : 느리지만 움직이는 삶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