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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zyvision Jul 29. 2023

23.04.02 우리 가게에서의 첫 벚꽃놀이

아주 작은 벚꽃 축제


4월 첫 주 주말은 참 바빴다. 친한 친구의 결혼식 덕분에 경주에 갔고, 저물어가는 벚꽃놀이를 즐겼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서울로 돌아오고 나니 오후 3시가 넘었다. 주말이 끝났구나, 월요일을 생각하면 침대에 누워서 좀 쉬어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날씨가 좋아도 너무 좋았다. 남쪽에 있는 것은 경주인데 서울이 더 포근하고 화창했다. 길가에 풍성한 벚꽃 나무들이 곳곳에 시선을 끌었다. 왠지 안 나가면 아쉬울 것 같은데... 침대에 누워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러고 보니 오늘 Y와 Q가 누군가 만난다고 했었던 것이 떠올랐다. 단톡방에 메시지를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Y의 단골 바 사장님들과 한잔하고 있다는 답장이 왔다. 심지어 장소는 아직 인테리어도 시작하지 않은 가게 자리였다. 엥? 그 먼지 날리는 바닥에서? 철거도 깔끔하게 되지 않은 어둑어둑한 공간일 텐데. 일단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버스정류장에 내려 가게로 걸어갔다. 왜인지 조바심이 나 걸음을 재촉했다. 저 멀리 어딘가에서  ‘꺄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많이 신이 났구나. 웃음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어떻게 하나, 인사부터 하고 가야 하나. 처음 보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긴장됐다. 결국 바로 옆에 단골카페로 먼저 들어갔다.


카페 사장님에게 경주에서 사 온 찰보리빵을 내밀었다. 사장님은 다들 옆에서 신나게 마시고 있으니 빨리 가보라고 하셨다. 주춤주춤 옆에 세탁소, 아니 우리 가게가 될 곳으로 다가갔다. 계약은 완료했으니, 이제 우리 가게라고 불러도 될 곳이다.


“왔네?”


Q가 밝은 얼굴로 나를 반겼다. 밝은 대낮에 붉그스름한 얼굴 다섯. 멀리까지 들렸던 신난 목소리의 근원은 역시나 이곳이었구나.


먼지 가득한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피크닉 온 것 마냥 음식이 놓여있다. 오래된 나무 벤치를 가져다 위에 올려진 와인은 하나, 둘, 대충 다섯 개쯤 된다. 심지어 다 마신 것 같았다. 이 동네에 아무래도 술쟁이가 한둘이 아니었나 보다.


Y가 단골로 방문하는 동네 와인바의 사장님들과 처음으로 인사를 나눴다. 근처에 와인 바가 하나 더 생기는 게 뭐가 그렇게 즐거우신 건지 다들 한껏 흥이 올라 있었다.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긴 해도 견제하는 게 자연스러울 것 같은데, 하지만 Y가 이렇게 친해진 이유는 있었다. 복잡한 고민보다는 함께 즐거우면 좋은 거 아니겠냐며 웃는 사람들이었다.


마주 앉아 이야기하다 보니 분위기는 금방 말랑해졌다. 문 밖으로 흩날리는 벚꽃들이 너무 예뻐서 들떴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경주에서 챙겨 온 찰보리빵과 결혼식 뒤풀이에서 핀란드 친구들이 준 페퍼민트로 만든 핀란스 위스키를 꺼냈다. 핫초코에 타먹으면 아주 맛나다는 친구의 팁도 덧붙였다.


“그럼 카페에서 핫초코 사다가 타먹자!”


그러게, 옆에서 바로 사 먹을 수 있네. 나는 그대로 카페로 돌아가 핫초코를 주문했다. 사장님에게도 마셔보라고 내밀었다. 운전해야 해서 못 마신다는 사장님의 얼굴이 슬퍼 보였다. 다음에 시도해 보자며 웃었다.


나는 다시 우리 가게로 돌아갔다. 한걸음이면 우리의 공간, 한걸음이면 카페 사장님의 공간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한번 들어와 본 적은 있었지만 실제로 이 공간에 오랜 시간 머물러본 것은 처음이었다. 우리가 토요일마다 모이던 이 카페 옆에 이제는 우리가 운영하는 공간이 생겨날 예정이라니.


핀란드 위스키와 핫초코와의 조합이 Q의 맘에 쏙 들었는지 Q는 이 위스키를 사 올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다. 다들 한입씩 돌려 맛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술쟁이들 같으니.


공사판 같은 작은 공간에 돗자리를 펴고 술을 마시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동네 주민들의 시선은 우리에게 향했다. 주기적으로 눈이 마주쳤다.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은 낯선 이를 두려워하기보다 신기한 듯 오랜 시간 쳐다보다 가셨다. 어린아이들은 몰래몰래 눈치를 살폈다. 그게 왜 그리 머쓱하게 느껴지는 것인지, 나는 어정쩡한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


“여기에 이제 곧 와인바 생길 거예요!”


경력직의 짬이란 이런 것인가. 사장님 한분이 와인잔을 높이 들며 힘차게 외쳤다. 적극적인 홍보 활동에 다들 웃음이 터졌다.


시간이 지나면 이 작고 거친 공간이 정리되고 단장될 것이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들어와 향긋한 와인을 즐기며 벚꽃을 바라보며 와, 너무 예쁘다 하고 즐거워하겠지. 상상하는 것 만으로 에너지가 회복되고 있었다.  피곤하다고 느꼈던 것이 거짓말 같았다. 이게 바로 설렘의 힘인가?


내년에 봄 시즌에 이 설렘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많이 찾아주기를, 그러고 싶은 공간을 만들 수 있기를, 그러길 바라며 앞에 있는 잔을 따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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