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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zyvision Aug 05. 2023

23.04.04 너무 감성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게

중요한 건 밸런스!


고뇌하는 Y와 Q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가게이름을 정해야 할 때가 되었다.  거의 매주 카페에서 만나던 우리였는데 이상하게 3월에는 너무 바빠 (특히 내가)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진행은 Y가 이리저리 해나가고 있었으나, Y는 이제는 정말로 이름을 확정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로고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평일 저녁에 모이기로 했다.


회의 장소는 화요일 저녁, 동네 역 주변의 프랜차이즈 카페였다. 이 날따라 회사 일이 늦게 끝났다. 결국 저녁을 같이 먹으려는 계획은 취소하고 각자 밥을 먹고 모이기로 했다.


오랜만에 내린 단비가 반가운 저녁이었다. 카페에 먼저 도착해 노트북을 열고 이것저것 살펴보는 와중에 Q가 도착했다. 고단한 하루가 끝났다는 이야기를 늘어놓기를 잠시, Q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날 Y랑 이야기를 좀 했어.”


그날이라 하면 Y의 집에서 메뉴를 만들어 이것저것 먹어보다가 나는 다른 약속을 갔던 날이 있었다. Q는 Y가  우리에게 표현하는 것 이상으로 힘들어하는 것 같다고 했다.


Y는 지금 일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큰 부담을 가지고 있고, 이렇게 혼자서 많은 결정과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도 있으며, 수익 분배에 대해서도 러프하게 이야기를 했지만 조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긴 긴 ‘문제'들이 끝없이 흘러나왔다.


난처한 감정이 올라왔다. 예상을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협업은 어려운 일이고, 친구와 함께하면 더 문제는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잠시 머리를 굴렸다.


문제를 해결을 위해 내가 해왔던 익숙한 방법들을 적용해 보기로 했다. 회사에서 겪었던 수많은 문제상황을 떠올렸다.


첫 번째는 내 안의 우선순위를 정리하는 것이었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Y와 Q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그 외의 것들, 예를 들어 높은 수익을 얻는 것, 편안하게 일하는 것 같은 일들은 우선순위로 따지면 확실히 아래에 있었다. 그렇지, 그건 달라지지 않을 기준이었다.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든 모두가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향으로 끌고 가고 싶었다. 그를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화였다.


Y는 우리에게 털어놓지 않은 여러 개의 문제를 안고 있고, 아마도 그 안에는 말을 꺼내기 불편해 보이는 주제가 뒤섞여 있을 것이다. 그리고 Y는 웬만해선 먼저 문제를 끌어내는 성격이 아니다. 아직 Y는 카페에 도착하지 않았다. 나는 Q가 가지고 온 종이를 뒤집고 펜을 들었다.


    Weekly로 회의를 진행할 것. (최대한 서로 동기화될 수 있도록)  

    너무 이성적이지도, 너무 감정적이지도 않게 문제를 마주할 것.

    불편하고 말을 꺼내기 힘들어도 자신의 생각을 서로에게 전달할 것.

가장 중요한 것. 우리가 이 일을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시작했다는 것을 잊지 않기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회사를 다니며 느낀 점이었다. 극으로 효율을 추구하게 되면 과하게 냉정해지고, 정말 중요한  가치를 잊어버리게 되기 쉬워진다. 그러다 보면 겉보기에는 멀쩡하지만 알맹이는 없는 결과물이 나온다. 재미도, 감동도 없는 그런 것 말이다.


반대로 모든 일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 게다가 구성원 모두의 감정을 만족시키는 현실적 해결책이라면, 그야말로 유니콘을 찾는 일이다. 우리는 그 중간의 어딘가를 찾아야 했다.


타이밍 좋게 Y가 도착했다. 야근하느라 제대로 밥도 못 먹었다며 퍽 지쳐 보이는 얼굴이었다. 음식을 주문하고 자리로 온 Y에게 Q가 조금 어색한 말투로 그날 했던 이야기 J한테 했어.라고 했다. 나는 그전까지 쓰던 종이를 내밀었다.


“우리의 그라운드 룰을 적었어.”


그리고 이날, 처음으로 회의 같은 회의가 진행되었다. 머뭇거리는 Y를 괴롭히며 속을 터놓으라 말했다. 지금생각해 보면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나랑 10년은 넘게 알고 지냈고,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깊은 이야기를 한 것도 여러 번이다. 하지만 새삼스럽게 Y는 나랑 다른 종류의 인간이라는 것을 실시간으로 느낀 날이었다.


고민하는 시간도, 속도도, 방향도 차이가 크다. Y는 가끔 보면 달팽이라고 소리치고 싶을 정도로 깊고 천천히 생각한다. 문제를 발견하면 바로 밖으로 꺼내놓는 나와는 극과 극에 가깝다. (Q는 이 사이 어디쯤에 있는 편이라고 해야 할까)


그날의 회의는 이렇듯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학습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다른 생각을 최선을 다해 솔직하게 드러내고 이야기했다. Y의 고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몇 가지 방안을 정리했다. 걱정은 짧게, 해결책을 실행해 보자고 이야기했다.


회의를 마무리하고 짐을 챙기면서 나는 Q에게 물었다. 걱정은 좀 나아졌냐며. Q는 말끔해졌다며 웃었다. 다행이다 싶었다.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까. 예상보다는 예상밖의 일이 더 많을 것이다. Y의 멱살을 잡고 말을 하라며 소리쳐야 하는 날도 있을 것이고, 상처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과 그럼에도 해야 하는 일이라는 이성의 마음이 부딪히는 순간이 또 오지 않을까.


그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각자의 어깨를 잡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즐거운 중심을 잡는 것이다. 우리의 레이지-한 비전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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