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의 정의가 뭔가요
'워라밸'을 쫓아 앞만 보고 걸어왔는데 신기루인가 보다.
적어도 나에게는 허상이다.
50을 앞두고 경력단절 웅덩이에서 겨우 올라온 지 5개월이 되어가는데 '워라밸'은 완전히 무너졌다.
25여 년 전 대졸 신입 시절로 돌아간 듯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9 to 6" 생활을 하는 것도 힘든데 거의 매일 야근에 회식까지 이어지는 회사 생활에 진입하면서 유턴해 나오고 싶다는 욕구를 품었다.
일하러 가는 길에 사람에 치이고 보내는 시간이 아까웠다.
그래서 직장 선택에 중요한 기준은 도보 출퇴근이 가능한 위치.
아니면 최대한 이동시간이 짧은 위치에 있는 곳.
이 조건 단 하나만 보고 선택한 사다리.
사다리가 흔들린다.
부여잡고 올라가야 할 것인가.
다시 경력단절 웅덩이로 떨어질 것인가.
안정적인 취업을 목표로 대학 생활을 했다면, 그렇게 대기업에 취업했다면 지금까지 경력단절 없이 20여 년 넘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을까?
이력서에 한 줄씩 추가하면서도 별로 후회한 적은 없었다.
치열하게 꽉 채우는 것보다는 여백이 있는 시간이 좋았고, 내가 추구하는 인생의 가치였다.
적당히 치열하게
입시를 치르는 것 외엔 다른 선택지가 없었으니까 공부를 했고 꼭! 반드시! 하고 싶은 분야는 없었기에 적당히 타협할만한 학과로 선택해서 지원했는데 높지 않은 경쟁률로 운 좋게 합격했다.
대학생활에 특별한 로망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입학해서 입시해방을 제대로 만끽하기도 전에 취업준비, 고시준비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든 생각.
'미... 쳤.... 네...'
존경의 대상이 아닌 이해할 수 없는 대상으로 치부했다.
그렇다고 완전히 자유로운 생활을 한 건 아니다.
세상의 눈에 벗어나 자유로울 용기는 없어서 틀 안에서, 눈치 보지 않으면서 숨 쉴 공간을 찾아다녔다.
숨 쉴 공간은 "치열하지 않은 여백의 공간"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 중요해서 근무시간이 빡빡하지 않은 직장이 우선이었다.
돈보다는 시간
취업단계가 많거나 경쟁률이 높을 만한 곳은 피했다.
열심히 준비한 사람들이 응시할 수 있는 곳들이고 난 준비를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대학원 진학과 취업 사이 선택의 문 앞에 너무 늦게 서서 준비를 미리 하지 못하기도 했다.
나름 전문성이라는 날개를 달고 제대로 취업해야겠다고 선택한 대학원 진학도 분야를 변경했고, 취업 직장의 조건은 더더욱 돈과 복지보다는 시간과 근거리였다.
신생 작은 외국계기업 마케팅팀 직원으로의 첫출발.
작은 곳에서 멀티플레이어로 성장할 수 있다는 또 하나의 위안을 안고 시작했던 곳.
사회생활의 쓴맛을 제대로 봤다.
"시간" 단 하나만 보고 선택한.. 사실 (경쟁회피를 위해) 남들이 가지 않을 작은 회사라 선택한 것일 수도 있는 첫 직장에서 돈도 시간도 벌지 못하고 매일 야근, 성실하지 않고 술 좋아하는 대표를 보며 불신을 배우고 1년도 채우지 않고 첫 퇴사까지!
그렇게 확고해진 일과 일상의 균형.
워라밸, Work Life Balance라는 가치가 자리 잡은 내 인생은 25년 가까이 시소 타기 중이다.
다시 시소에 올라타니 그 첫 직장의 경험이 같이 쓰나미로 몰려와 울렁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