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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지제스트 Sep 04. 2024

'자존감'이라 믿었지만 변종이었나 보다

Ep.3


'나'는 누구일까?

어떤 사람일까?

무엇을 좋아하지?

무엇을 잘하지?


이런 질문에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하고 대답을 시원하게 하지 못하는 내가 답답하고 싫어지는 순간.


글쓰기를 결심했다.

'글쓰기'라 쓰고 '나와 마주하는 시간, 나와 나누는 수다'라 부른다.


퍼즐 조각 같은 기억을 뒤적뒤적 거리는 시간.

그때의 나를 다시 마주하면 지금의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학창 시절의 나.

그 시작은 가족의 변화에서부터 시작된다.

동생이라는 존재가 나의 정체성 형성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줬을지는 알 수 없다.

내 몸 세포 속 어딘가에 박힌 채로 영향을 아직까지 주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둘째 아이를 낳으면서 첫째 아이의 변화를 직접 지켜봤기에 나 또한 유사한 변화를 겪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이다.

신기하지만 밉고,

밉지만 이쁘고,

귀찮지만 도와주어야 할 것 같은 대상.


주변 어른들의 사랑과 관심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던 내가 어느 순간 서서히 '외곽'으로 밀려나는 분위기를 순순히 받아들였을 리 없다.

엄마의 변화에 어린 나도 서서히 준비했었을 것이다.

태세 전환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동생이 태어난 후 곧 나는 초등학생... 아니 국민학생이 되었다.

어렴풋이 입학식에 엄마 없이 아빠와 갔었던 짧은 흑백 동영상이 보인다.

아기였던 동생 때문에 '스스로' 해야 살아남는다고(너무 장엄한가?ㅋㅋ) 생각했었던 것 같다.

스스로 해내야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다고.


이사를 자주 다녀야 해서 동네가 아닌 교대부국에 지원했다고 하셨다.

운 좋게 당첨돼서 시내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했어야 했다.

몰라서 용감했었거나 엄청 자립심이 컸거나.   


1학년 적응기가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나보다 덩치 큰 아이가 엄마가 만들어주신 간식을 가져가는 것을 직접 보고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울면서 엄마에게 전화했던 장면.

시내버스를 타고 버스에서 내려 한참 걸어서 집에 갔어야 했는데, 비가 엄청 내리는 날 우산이 없어 진흙이 된 길을 울면서 걷다가 엄마에게 전화했던 장면.


고 보니 엄마에게 울면서 전화했던 기억만 남았네.

그 이후엔 결국 전화해도 아기 때문에 엄마가 나를 도와줄 수 없다는 걸 깨닫고 혼자 해결하려고 했던 것 같다.

혼자 할 수 있다고 했고,

필요한 거 없다고 했고,

괜찮다고 했다.


나는 어느새

스스로 알아서 잘하는 학생.

선생님 말씀 잘 듣는 학생.

학년마다 반장, 부반장 하는 아이.

(선생님 대리인이 된 것처럼) 애들한테 빡빡한 재미없는 아이.

공부도 그럭저럭 하는 아이.

운동도 그럭저럭 하는 아이.

모범생.

범생.

다가가기 어려운 이미지.

차가운 이미지.

그런 아이가 되어 있었다.


친한 친구들도 있었지만 두루두루 친구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항상 거리를 두는...

왜 그랬을까?


그 당시에는 '어른스럽다'는 말을 좋게 받아들였던 걸까?

나는 어른스럽게 행동하는, 모범생이어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여

그 강박을 마치 "자신감"이 넘치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된 증표로 받아들였나 보다.



인터넷 국어사전, 나무위키에 따르면 자신감, 자존감, 자존심을 아래와 같이 정의한다.


자신감(self-confidence) : 스스로를 믿는 감정, 용기
자존감, 자아존중감 (self-esteem) : 자신을 존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라고 인정하는 마음
자존심(pride) : 남에게 굽히지 아니하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


그 나이 때, 그 시기에만 나를 오롯이 표현할 수 있는 특권이 있는데

나는 존재감을 증명하겠다고,

나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어른스러움이란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고,

아이다움을 버리고 주변에 끊임없이 하소연을 했던 것 같다.


나 자신을 믿는 "자신감"이 높고,

나 스스로를 가치 있는 존재라는 "자존감"이 높았던 걸까?


아니다.


(나만의) 세상에서 중심이었던 사람이라고,

난 외곽으로 밀려날 사람이 아니라고,

인정받기 위해서라면 빨리 성장할 수 있다고,

나를 지키는 '자존심'을 넘어서 '자만심'으로 향해하는 pride였다.  


혼자여도 괜찮다고 했다.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고 했다.

독립적이고 의존적이지 않은 자신감이 넘치는 나라고 믿었다.


하지만...

자신감과 자존감에서 파생된 변종을 인지하지 못하고 나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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