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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지제스트 Sep 13. 2024

인생 형태가 바뀌는 찰나의 순간

Ep.5


"혼자"

늘 사용하는 단어인데 글자로 쓴 모양이 낯설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않고 그 사람 한 명만 있는 상태.

다른 사람과 어울리거나 함께 있지 아니하고 동떨어져서.

영어로 찾으면 "alone" "by oneself"로 나온다.

혼자, 다른 사람 없이, 혼자 힘으로, 그리고.... 외로운.



by myself라고 하면 뭔가 당당하고 독립적인 느낌인데

alone이라고 하니 외로움이 확 느껴진다.

단어, 표현에도 타고난 관상이 있는 건가?




타고난 성향도 있겠지만 환경적으로 상황적으로 대외적으로 "독립적인 사람"으로 자리 잡았다.

학교 생활에서도 모범생으로 포지셔닝을 하면서 스스로 할 건 알아서 하는 아이.

하지만 잘 어울리기는 쉽지 않은 대상.


그 시기의 나와 마주하면서 찬찬히 돌아보니 내실이 없는 독립성인 것 같지만 얻은 것도 있다.

결국 해내고 마는 책임감과 신뢰.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신뢰"를 바탕으로 프리패스, 하이패스 혜택을 보는 경우도 많았다.

하겠다고 하면 할 수 있는 것도 많았다.

오래 묵혀둔 묵은지처럼 나의 요구사항은 무조건 심사숙고한 것으로 인정받았다.


넉넉한 경제환경은 아니었지만 내가 직접적으로 부족한 결핍을 크게 느끼진 않았다.

부모님은 어린 시절 나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지 못한 것에 맘이 좋지 않았다는 말씀을 결혼할 때쯤 하셨다.

인생의 큰 이벤트 앞둔 시점에 고해성사를 보시듯이...

정작 나는 아쉬움이나 상처가 없으니 그런 생각하지 마시라고 했지만,

나도 인지하지 못한 내가 이미 알아차리고 있었다.


엄마가 거대한 방패로 오랜 기간 막아주고 계셨다는 것을.


그래서 자연스럽게 "혼자" 이기 위한 부단한 노력으로 인생을 채우려고 해 왔다는 것을.


대학 때 집을 떠나 유학을 오면서 공식적으로 혼자 생활을 했다.

기숙사에서 낯선 룸메이트 3명과 작은 방에서 지내야 했고 손바닥만 한 침대와 작은 책상이 있는 공간에 정을 붙이느라,

낯선 도시와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신나게 헤드뱅잉 하면서 방황했다.


그렇게 혼자의 생활에 적응하면서 풍선처럼 부푼 자신감으로 더 멀리 떠나는 나만의 프로젝트를 만들어 떠났다.


혼자



낯선 나라에 떨어지자마자 자신감 풍선은 바늘에 찔려 힘없이 터졌다.

여행지가 아닌 현실이 된 나의 로망의 대상이었던 호주는...

냉기가 가득한 차원이 다른 "혼자"를 체험하게 해 주었다.

다시 처음 집을 떠난 것처럼 또다시 새로운 혼자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또다시 혼자 생활 미션을 해낸 나를 뿌듯해하며

스스로를 단련한 "혼자"에 이젠 고수가 되었다고 자신했는데,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던가.


방패막이로 사는 엄마를 보면서 다짐했던 '혼자'이기.

오랜 시간 쌓고 있었던 '혼자 인생' 형태 만들기.

그런 '혼자'이기 위해 10년 동안 단련하며 쌓은 공든 젠가가 무너져버렸다.


인정받았던 나의 "독립적인" 특성의 껍질이 공갈빵 표면처럼 부스러진 찰나의 순간.

그 찰나의 순간이 나의 인생 형태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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