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첫 단추가 어긋난 것일 수도
"100세 시대를 살아가세요."
"평생 배우고, 평생 일하세요."
"은퇴는 없습니다."
요즘 들리는 말들이다.
나는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막 사라지기 시작하던 시대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부모님 세대는 사회에서 정해 둔 길이 당연하던 시대였다.
좋은 대학을 나와서 좋은 회사에 들어가면 정년까지 다니는 것. 그것이 성공한 삶의 공식이었다.
그 공식이 당연한 시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대입도 그런 의미에서 좋은 곳을 가는 것이 당연했다.
그렇게 대학을 왔는데 IMF 금융 위기가 터졌고 '평생직장'이라는 것이 희미해졌다.
나는 모범생 이미지로 눈에 띄지 않는, 사회 시스템에 순응하는 아이처럼 보였지만,
속은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강한 삐딱이였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길을 따르긴 싫었다.
'나는 다르게 살고 싶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깨고 나갈 용기도 없었다.
'그래도 눈에 띄기도 싫고 어느 정도 범위 안에서...'
결국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모호함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점수 따라 선택한 전공
전공 선택은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단순했다.
"문과보다는 이과체질인 것 같고, 컴퓨터를 좋아하니까 컴퓨터학과에 가볼까?"
하지만 수능 점수가 잘 안 나왔고 가고 싶었던 학교, 학과에 가기엔 조금 부족했다.
가고 싶다는 것도 특별한 계획이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대학 농구가 인기 많았던 시기였고, 연고전(고연전) 문화가 멋있어 보였고,
이과지만 수학이나 과학 자체를 그다지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나마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컴퓨터학과, 아님 전자공학과? 건축학과?
막연한 방향이어서였을까.
가고 싶었던 대학도 학과도 지원할 수 없었다.
점수로 지원이 가능한 다른 학교, 다른 과인 통계학과를 선택했다.
전공 분야의 우열은 아니지만 대입의 줄 세우기 현실이니까.
"통계학과? 뭐 하는 과야?"
"잘 모르겠어. 그냥 수학이랑 비슷한 거 아닐까? 컴퓨터도 좀 쓰고."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 안일했다.
4년이라는 시간, 그리고 그 이후의 인생을 좌우할 선택을 이렇게 가볍게 했다니.
내가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 돈을 얼마나 벌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멀리 내다보지 않고, 그 순간 적당히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했다.
그때의 선택이 큰 커리어 줄기를 만들지 못하고 '경력단절' 웅덩이에 빠지게 한 것인지,
아니면 평생직장이 없는 100세 시대에 평생 진로 탐색은 필수적인 것인지 지금도 확실히 모르겠다.
첫 직장을 고르는 기준
대학 졸업 후를 진지하게 생각하거나 계획하지 않았다.
졸업 준비를 치열하게 하지도 않았고, 전공을 살려서 커리어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도 특별히 없었다.
통계학을 전공하면서 원래 진학하고 싶었던 컴퓨터학과 복수전공을 할 계획이었지만,
나의 질풍노도의 시기는 대학 때 제대로 온 건가 싶을 정도로 방황을 했다.
동기들이 많이 선택하는 컴퓨터학과 복수전공, 부전공 길을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대안으로 경영학과가 눈에 들어왔고 부전공으로 들었다.
다른 관점이라 재미는 있었는데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다.
열심히 안 했거나 재능이 없거나... 흥미만으로 커리어를 선택할 수는 없으니까.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제대로 통계를 공부하고 취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공부는 대학원부터!라고 스스로 합리화하며 그렇게 대학원 진학을 정하고 취업은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막상 대학원 등록금 고지서를 받고 보니 도저히 못 내겠더라.
'내가 정말 이 전공을 더 해서 취업을 하고 싶은 게 맞나?'
이왕 대학원을 갈 거면 해외로 가자!
경영학을 부전공할 때 스포츠마케팅에 대해 알게 되었고, 스포츠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분야에 커리어를 시작하는 것이 재미있을 것 같아 도전을 결심했다.
그렇게 호주 스포츠경영 유학을 계획하고 유학 준비기간 동안 임시로 취업하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취업 준비를 할 때,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돈"을 최우선으로 뒀다.
"저기는 초봉이 얼마래."
"여기는 보너스가 몇 개월 치래."
"복지가 좋대."
하지만 나는 달랐다. 아니, 다르다고 생각했다.
나는 "시간 보장, 적당한 일, 가까운 거리"를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뒀다.
왜 그랬을까?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벌어도 내 시간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근무시간이 빡빡하지 않은 직장이 우선이었고, 취업 경쟁률이 높을 만한 곳은 피했다.
치열한 것이 싫었고, 신입으로서 지나친 압박도 부담스러웠다.
"야근 많이 하는 데는 싫어."
"회식 문화가 강한 데도 싫어."
"출퇴근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것도 싫어."
지금 보면 참 순진했다.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는데 말이다.
진로탐색, 평생동안 하는 것일 수 있다.
내 적성에 딱 맞는 분야라고 해도 인생의 길에서 다른 방향으로 흘러 갈 수 있다.
하지만 그 시기, 그 시점에 "나와의 대화"는 충분히 했어야 했다.
상황이 그러니까, 피하고 싶으니까, 요리조리 둘러 다니느라
정작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런 듯, 저런 듯'으로 흘러 흘러
지금까지 온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