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31 포르토마린→팔라스 데 레이
2025.7.31 (Thu) | 27° | 8:50~16:30 (7h 40m) | 25.5km
새벽 5시. 알람으로 맞춰놓은 진동소리에 잠이 깼다. 몸은 깼지만 머리는 여전히 잠에 빠져 있는 듯하다. 머리를 마주대고 있는 도영의 침대는 손이 닿지 않았다. "도영! 도영!" ASMR처럼 공기 100%로 소리쳐 보지만 이 소리에 일어날 리가 없지. 무거운 몸을 움직이기 싫어서 항상 지니고 자던 사코슈 끈을 잡고 도영의 침대에 냅다 던졌다. 깜짝 놀라 일어난 도영은 몇 시냐고 묻더니 5:30에 알람을 맞춰놓았다며 다시 눕는다. 그래? 그럼 나도 다시 자야지. 맘 같아선 30분 뒤에 잘 일어나는지 봐주고 싶지만 자신이 없다. 다시 눈을 떴을 땐 휑한 숙소의 창문 가득 환한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오늘은 도영뿐 아니라 다른 일행들도 이르게 출발했다. 마틴과 나만 덩그러니 남아서 출발 전 함께 아침을 먹었다. "한국은 출산율이 낮다며"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결혼으로 이어졌다. 20대 후반인 마틴에게 언제 결혼할 계획인지 물으니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혼자 사는 게 낫다고 말했다. 손바닥을 바닥 가까이 가져다 대고 본인이 이만한 갓난아기 때 아버지가 가족을 떠났다며, 그런 결혼은 안 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한다. 이만큼 멀쩡하게 자란 마틴을 보니 그의 어머니의 인생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마틴의 트라우마에 대한 위로의 말도 해주고 싶지만 영어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끄덕이고만 말았다. 최악의 리액션이다. 안 되는 영어는 오늘따라 왜 이리 막히는지.
"한국에 돌아가면 도영을 만날 거야?" "그러고 싶지만 쉽지 않을 것 같아." 살다 보면 나의 세상이 여러 번 바뀌고 주변 인물도 달라진다. 20대엔 그게 더 심하고. 도영의 세상이 여러 번 바뀌고 내가 그 추억 속 한 인물이 될 거라는 걸 알기에 이 만남이 지속될 거라 장담할 수 없었다. 여행에서 만났던 인연들은 모두 그때뿐이었다. 이번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계속 인연을 이어가고 싶지만 내 희박한 관계에 대한 노력을 생각하면 역시 쉽지 않겠지. 이런 얘기를 차분히 해주고 싶지만 부족한 영어로는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아무도 연락하지 않아." 투박하게 건넬 뿐이다. "나는 연락을 다 하고 있어" 마틴의 대답에 아차 싶었다. 마틴 역시 여행에서 만난 사람인데 이건 무슨 연락을 끊겠다는 예고도 아니고.. 출발한 지 얼마 안 돼 마틴은 먼저 걷겠다고 앞서나갔다. 그래 이따 보자.
앞서 걷는 앰버가 사진을 보냈다. 비석에 적힌 낙서였다. 'Jesus did not start in sarria' 이렇게 통쾌한 낙서라니. 모두가 사리아 이후부터 여러 가지로 실망했지만 제임스 커플은 특히 그 실망이 커 보였다. 그들은 빨리 출발해서 인파를 피하고 싶었는데 되려 사람들로 빽빽한 길을 걷고 있는 듯했다. 주변에 대여섯 명씩 모여 걷는 젊은 그룹이 많아졌다. 부엔까미노가 사라진 길. 시끌벅적한 무리들을 뚫고 지나다 보니 내 길을 그들에게 뺏겨버린 듯 뭔가 억울했다. 얼마쯤 걸으면 마틴이 기다릴 거라 생각해서 걸음을 재촉했지만 어디든 사람이 가득한데 마틴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쉬지도 않고 평소보다 빠르게 걸었다.
팔라스 데 레이(Palas de Rei)에 먼저 도착한 도영이 단체방에 어느 숙소에 묵을 건지 물어보아서 찾아놨던 숙소를 보내줬다. 서로 어디까지 걷는지 위치를 공유하다가 갑자기 마틴이 관광객들과 함께 걷는 게 즐겁지 않다며 더 멀리 걸을까 생각 중이라고 보내왔다. 이안과 함께 걷던 제임스 커플도 다음 마을로 갈 것 같다고 했다. 마음 같아선 나도 더 멀리 가고 싶지만 팔라스 데 레이도 한참 남아서 다음 마을까지는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나는 더 못 갈 것 같다고 보내고 나니 아침부터 떨어졌던 텐션이 아래로 툭 떨어져 버렸다. 마틴과의 대화가 계속 찝찝하게 남는다. 목적지를 2km 앞두고 아직 그곳을 지나지 않았다면 만나고 가라고 문자를 보냈지만 한참 후에 이미 떠났다는 답장을 받았다.
체크인 후 도영을 만나 빨래를 돌리고 숙소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식사 후에 한참을 고민하다가 마틴에게 프랑스어로 번역해서 문자를 보냈다. 내가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과 연락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건 너에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라고.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도 언젠가 다시 만날 거고 계속 연락하기를 정말 바라고 있다고. 잠시 후에 장문의 한국어 답장이 왔다. '네 메시지에 감동했고 너의 말에 전혀 상처받지 않았고 10년 후라도 메시지를 보내면 너를 반겨줄 거다. 산티아고에서 기다릴게.' 이런 내용 이었고 마지막 '내일도 화이팅이야!' 부분에서 이렇게(콩글리시)까지 번역을 해준다고? GPT에 새삼 놀랐다. 종일 심난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도영을 만나 오늘 있던 일을 이야기해 주니 어제 마틴이 다리가 가렵다고 했을 때 내가 베드버그 같다고 놀린 것부터 삐졌단다. 그건 또 몰랐네. 하지만 그건 아닐 거야.
한 달 동안 혼자 걷더라도 마지막 산티아고는 누군가와 함께 걸어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난 포르투갈길을 걸을 때 산티아고로 들어서면서 갑자기 만난 대도시와 사라진 화살표에 당황했었고, 복잡한 골목길을 구글맵만 보면서 걷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성당이었다. 내 첫 산티아고의 기분은 "여기라고?"였다. 길 찾기가 되어버렸던 끔찍한 마지막 순간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네. 남은 일정은 3일. 남은 길은 70km. 마음 같아선 무리해서 이틀로 줄이고 싶지만 일단 30km 거리의 아르주아(Arzua)로 동키를 신청했다.
한적한 길에서 함께 걷던 사람들을 보내고 복잡한 길에서 혼자 걷게 되었다.
이건 내가 예상한 전개가 아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