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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 lin May 14. 2024

영어,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데?

땡전 한 푼 안 쓰고 독학하기

한국인의 새해 목표 부동의 1위 영어공부


새해 힘찬 출발과 함께 올해는 꼭 영어공부를 시작하겠다는 굳은 다짐이 3일을 넘긴 적이 없다. 아무리 머릿속으로 그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도 고등학교 졸업 후 놓았던 펜을 다시 잡게 해 줄 만큼의 강력한 동기가 늘 부족했다.


그러던 2019년 어느 봄, 그토록 갈망하던 결정적 계기는 놀랍게도 영어권 국가가 아닌 일본 여행을 통해 찾아왔다.




계획형과 무계획형의 조합은 예견된 시나리오였던 것인가. 계획의 ‘계’ 자도 관심 없는 친구와 여행을 간다는 것은 무모한 도전 그 자체였다. 더군다나 해외여행 경험이 전무한 친구와 역할 분담을 한다는 것은 내 스트레스를 더욱 가중시키는 일이기에 차라리 내가 총대를 메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고 생각했다.


항공편부터 숙소, 3박 4일에 거친 모든 일정을 다 내가 맡았다. 여기에는 서로 별다른 의의가 없었다. 난 그저 친구가 아무 불평 없이 내 계획에 잘 따라와 주고 금전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비용만 철저히 반반씩 나눠준다면 충분히 성공적인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오사카 여행은 졸작 중에 졸작으로 남았다.


도착 후 시내로 나가는 열차 탑승구를 못 찾고 헤매는 바람에 예약해 둔 열차를 놓친 우리는 티켓 창구로 가서 탑승 시간을 변경해야 했다. 남에게 물어보는 것조차 주저하던 내 친구는 나에게 반쯤 떠넘기다시피 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쭈뼛쭈뼛 역무원에게 다가갔다.


가기 전 나름 성인 학습지로 기본 일본어 실력은 다졌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앞에 서니 도저히 입에서 떨어지질 않아 어쩔 수 없이 영어로 대화를 시도했다.


“We.. lost.”


역무원이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나는 최대한 아는 단어를 이리저리 조합해 곧바로 다음 문장을 내뱉었다.


“Umm.. we, missed, the train.”


혹여나 알아듣지 못할까 최대한 또박또박 천천히 내뱉었고 다행히 내 말의 의도를 알아차린 양 금세 티켓을 바꿔주었다. 어쩌면 나 같은 사람을 하루에도 수십 명씩 만나니 굳이 긴말 안 해도 대충 알아들었을 터.


상황을 수습하는 나를 가만히 옆에서 지켜본 친구는 놀라운 듯 나의 영어 실력을 칭찬했지만 그 칭찬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았다. 문제를 해결했다는 안도감보단 "내가 열심히 공부했다면 더 자신 있게 대화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 작은 아쉬움은 여행 내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매일 수십 번씩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고, 교통카드를 분실하거나 와이파이 도시락을 잃어버리는 등 친구의 실수를 뒷수습하기 위해 현지인을 붙잡고 대화를 시도하는 등  끝없는 언어장벽과의 싸움이었다.



여행을 다녀온 직후, 나는 곧바로 영어 공부에 돌입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도 미룬다면 난 평생 영어 포기자로 남을 것이 분명했다.


성인이 되어 영어공부를 시작하니 좋았던 점은 시험공부처럼 틀에 박힌 한국식 주입 교육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점이다. 관계 대명사, 5 형식, 보어 등 한국어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문법 공부에 시달리지 않고, 회화에 중점을 두어 부담을 덜 수 있다.


영어 책, 단어장, 유료 강의 등 남들이 하는 흔한 방식은 철저히 배제했다. 저런 방법들로 꾸준히 공부를 할 수 있는 끈기가 있었다면 진작에 했을 것이다. “이미 수많은 실패를 겪어 봤지 않나?”, “사놓고 라면받침으로 전락한 책만 몇 권인가?” 더 이상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돈 한 푼도 들이지 않고 배울 수 있는 유튜브를 선택했다. 이렇게 하면 중도 포기해도 타격이 덜할 것이라 생각했다.



당시 노트북이나 태블릿도 없었던 나는 오직 공책, 필기구, 스마트폰만을 이용해 공부를 시작했다. 평소에 이해가 안 되는 문법을 검색한 후 나오는 다양한 강의 중 몇 개를 듣다 보면 내 스타일에 맞는 선생님을 찾을 수 있다. 그러한 채널 한 두 개 정도를 구독한 후 올려져 있는 강의를 하나씩 들으며 기초를 다졌다.


선생님이 만드신 예문과 대화문을 한글로 먼저 적어놓은 다음 영어로 5번 이상 따라 말한 후 적어보는 연습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영어 문장을 가리고 한국어 해석만 보며 기억나는 대로 내뱉으며 복습했다. 이렇게 하면 단기 암기력도 테스트할 수 있고 오답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보충할 수 있다.


그 밖의 회화 실력을 향상하기 위해 고안한 방법은 모델링과 쉐도잉이었다. 흔히 미드 ‘프렌즈’가 쉐도잉에 적합한 자료로 알려져 있지만 그보단 나의 관심사를 공략하는 것이 지루함을 덜어주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어렸을 적부터 할리우드 연예계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오랫동안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카다시안 패밀리를 롤모델 삼아 그들이 출연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나 인터뷰 등을 찾아보며 그들에게 빙의된 양 억양과 발음을 따라 하며 입을 틔우는 연습을 했다.




언어를 배우면 또 하나의 세계가 열린다. 새로운 인연을 맺고 그들의 일상 속에 스며들 수 있으며 감정과 생각을 전달할 수 있다.


그 나라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지 차이다. 먼 타지까지 날아가 언어가 통하지 않아 친구도 못 사귀고 수업내용도 못 알아듣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그보다 끔찍한 그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영어와 친해지기 위해 1년 동안의 처절한 싸움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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