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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 lin Oct 06. 2024

나의 미국 해장일지

버거는 왜 질리지가 않을까?

'나도 이제 미국사람 다돼 가나?'라고 느낀 순간이 바로 해장음식을 고를 때다. 이상하게도 국물 있는 라면이나 얼큰한 음식이 아닌 버거나 피자 등 헤비하고 느끼한 음식에 손이갔다. 한 번은 미국인 친구 에릭에게 본인의 주된 해장음식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굉장히 미국인스러운 답변이다.



The best breafast sandwhich


카지노 240불 잭팟의 영광에 심취한 나머지 밤새 과음을 한 탓에 아침부터 끔찍한 숙취에 시달렸다. 전날 먹은 거라곤 피자 한 조각뿐이니 내 위에게 너무 가혹했단 생각이 들었다. 해장 겸 아침을 먹기 위해 에릭이 데려간 곳은 스트립에서 차로 15분 정도에 있는 어느 한 샌드위치 가게. 로컬느낌이 강한 작고 아담한 크기에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어 웬만한 관광객들은 와볼 생각도 못할만한 곳 같았다.


우리가 주문한 것은 breakfast sandwhich와 아이스라테. 일반 식빵이 아닌 와플이 베이스로 되어있고 속에는 토마토, 아보카도, 닭가슴살, 베이컨 등이 들어가 있다.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와플의 쫀득한 식감과 촉촉한 닭가슴살, 아보카도가 한데 어우러져 부드러우면서도 담백한 맛이 입안을 감쌌다. 바삭하면서 짭조름한 베이컨에 아삭한 토마토까지 더해져 씹는 내내 입안이 축복으로 넘치는 느낌이었다.


또 커피는 왜 이렇게 맛있는지, 살면서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맛이었다. 분명 오트밀크인데 어느 브랜드 제품을 썼는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고소했다. 밀키 하지 않은 걸쭉한 식감에 자꾸만 입이 빨대로 향했다.


“작은 로컬식당은 절대 실망시키지 않는다.”

“현지인의 픽을 믿어라.”


이 두 가지가 여행에서 제대로 된 맛집을 찾는 비결이라 생각한다.




최고의 해장버거 in vegas


베가스에서의 둘째 날 밤, 취기가 한 것 오른 상태로 클럽을 나서니 어느덧 시간은 새벽 3시로 향해갔다. 같은 스트립 내일지라도 호텔과 호텔사이의 거리가 꽤 있기에 내가 묵는 곳까지 꼼짝없이 20분 이상은 걸어가야 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에릭이 Marquee 호텔까지 앞까지 데리러 와준 덕분에 귀갓길이 안전해졌다. 술 때문인지 가는 내내 연신 배고픔을 호소하자 그가 나를 근처 버거집에 데려갔다. 취기에 메뉴가 제대로 눈에 안 들어와 그냥 그의 선택에 따라 더블치즈버거를 주문했다. 갈증이나 물도 주문했는데 그냥 Tap water, 수돗물맛 그 자체였다.

비주얼은 꽤나 그럴싸했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번 속 체다치즈가 사르르 녹아있고 패티는 스모키 한 향이 가득했다. 간혹 치즈버거임에도 치즈를 너무 적게 넣어 그 맛이 온전히 전해지지 않는 곳이 있는데 이곳은 육안에서부터 흘러넘치는 치즈양에 부드럽고 짭짤한 풍미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살면서 무언가를 이렇게 정신없이 먹어본 게 얼마만인지 마치 누가 쫓아오는 양 허겁지겁 한 개를 뚝딱 해치웠다.


음주 후 먹는 음식들은 왜 다 맛있을까? 사실 맛있다기보다 너무 취하면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뭐에 홀린 마냥 입에 막 쑤셔 넣게 된다. 알코올이 음식의 맛을 잡아먹어버려 진짜 그 음식이 무슨 맛인지 제대로 느끼기 힘들다. 그래도 끊임없이 들어가는 덕분에 뭐든 맛있다고 느끼는 가짜 미각 같은 셈이다.




버거 체인의 숨은 강자, 잭 인 더 박스(Jack in the box)


버거의 나라답게 체인점도 다양하고 각 브랜드마다 맛이 다 다른 게 미국 버거의 특징이다. 그 어느 것 하나 겹치는 게 없으며 생김새도 다르다.


코로나로 대면수업에 차질이 생기며 일주일간 기숙사에서 꼼짝없이 격리생활을 했다. 카페테리아에 운영이 중지되어 매일 어학원 스태프들이 석식을 기숙사 문 앞까지 배달해 주었다. 퀄리티는 말 그대로 최악 중의 최악. 사람이 먹는 음식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볼품없는 비주얼과 간이 전혀 안 돼있는 맛에 식욕이 절로 떨어졌다. 입맛이 까다롭지 않은 편이라 맛없는 음식에 대한 장벽이 그리 높지 않은 나도 포크질 몇 번에 그대로 냉장고에 박아둘 수밖에 없게 만드는 맛이었다.

안습적인 비주얼의 석식

미각의 즐거움을 되찾고자 둘러본 우버이츠, 인 앤 아웃이나 셰이크쉑은 이미 경험해 봤을뿐더러 어느 정도 아는 맛이기에 새로운 시도를 원했다. 몇 번의 스크롤링 끝에 내 손가락을 멈추게 한 곳은 잭 인 더 박스(Jack in the box). 맛이 꽤 좋다는 평을 듣기도 했고 국내에는 수입이 안 돼 있던 터라 여기 아니면 경험할 길이 없었다.

내가 주문한 메뉴는 classic buttery jack combo. 두께부터가 압살이었다. 개인적으로 채소가 듬뿍 들어간 버거를 선호하는데 이곳은 굳이 따로 추가하지 않아도 양상추를 듬뿍 넣어주는 점이 맘에 들었다. 간단한 입운동 후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패티의 육즙과 싱싱한 토마토와 양상추가 결합되어 아삭하면서도 짭조름한 식감을 연출했다. 야채보다 패티의 비율이 많을 경우 자칫 무를 수 있는데 여기는 각 토핑의 비율이 적절하게 채워져 비교적 느끼한 맛이 덜했다. 무엇보다 두터운 두께와 아낌없는 채소덕에 씹는 맛이 이써 제대로 된 '버거'를 먹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멕시칸 식 비빔밥, 브리또 보울(burrito bowl)

타코벨 브리또 보울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식은 비빔밥이다. 그릇 하나에 영양가 있는 모든 재료를 다 넣어서 먹을 수 있어 편리하고 무엇보다 별다른 반찬이 필요 없어서 좋다. 혼자 밥을 차려먹을 때마다 갖가지 밑반찬들을 주기적으로 사는 것도, 일일이 접시에 덜어먹는 것도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나의 구세주가 되어주는 것은 비빔밥. 한 그릇 안에 원하는 재료를 다 때려 넣고 비벼주면 되니 맛도 좋도 건강도 챙기고 설거지 거리도 줄여주는 효자메뉴다.


그런 비빔밥을 대체할 수 있는 미국음식 중 하나는 브리또 보울이라고 생각한다. 베어 먹는 브리또도 좋지만 보울에 갖가지 재료를 가득 담아 비벼 먹는 것도 색다른 재미가 있다. 항상 빼먹지 않는 옵션이 있다면 바로 아보카도 추가. 아보카도가 없으면 어쩐지 맛이 심심하게 느껴진다. 더불어 약간의 톡 쏘는 매콤함을 살려주는 할라피뇨는 빼지 말고 꼭 넣길. 느끼함을 확 잡아줘 해장메뉴로도 제격이다.




의외의 요물(?) 코코넛 워터

어학원 수료 후 OC로 넘어오면서부터 산타바바라 파티에서 번호를 교환했던 남자 Saint와 본격적으로 연락을 하게 되었다. 하루는 그의 친구들과 함께 웨스트할리우드에서 흥겨운 밤을 보냈다. 전날 마신 테킬라의 여파 때문인지 아침에 눈을 뜨는 게 그렇게 고통스러울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던 중 기름을 채우기 위해 한 주유소에 들렀는데 세인트가 손에 과자와 음료수를 한가득 들고 나타났다. 그가 나에게 건넨 건 코코넛워터. 안 그래도 갈증이 심했던 터라 받자마자 꿀꺽꿀꺽 들이켰는데 차가운 코코넛워터의 목 넘김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코코넛워터 자체가 브랜드마다 맛도 천차만별이고 호불호가 강한 음료라 음주 후 잘 넘어갈까 걱정했는데 신기하게도 물보다 갈증해소에 훨씬 효과적이었다. 부드러운 목 넘김을 원한다면 웬만하면 종이팩보단 냉장고에 진열되어 있는 캔 코코넛워터를 택하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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