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인 자체에 의지하기보단 커피, 그 고유의 맛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커피 없는 일상은 상상이 불가능했다. 우리 주변엔 커피를 당기게하는 자극제들이 넘쳐난다. 한 다리 건너 하나씩 즐비한 카페, 그곳에서 새어 나오는 그윽한 원두향, 걸어 다니는 사람들 손에 하나씩 쥐어진 아이스 아메리카노, 진한 크레마가 올려져 있는 블랙커피, 핀터레스트에 coffee aethetic를 검색하면 홍수처럼 쏟아지는 커피 사진들, 물때하나 없이 매끈하게 광이 나는 스테인리스 재질의 커피머신, 커피로 아침을 여는 브이로그 등을 볼 때마다 나도 당장 에스프레소 한 잔 내리고 싶은 욕구가 가득해진다.
매번 다짐해도 커피를 끊을 수 없었던 이유는 '일'
집이던 회사던 책상에 앉는 순간 내 옆엔 물과 커피가 나란히 놓아져 있어야 본격적으로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갓난아기가 쪽쪽이를 물듯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마다 입을 갖다 댈 물 이외에 무언가가 항상 필요했다. 차, 탄산수, 주스 등 음료자체를 안 좋아하는 나에겐 커피만이 유일하게 그 빈자리를 채워주었다.
그런 내가 각성하고 독하게 커피를 끊기로 다짐했다. 그것도 영원히.
일반건강검진에서 뜻하지 않게 썩 좋지 않은 결과를 받고 난 후 근심을 가득 안고 대학병원 외래 진료를 보러 갔다. 교수님께선 아직 뭐 약을 복용하거나 이렇다 할 집중적인 치료를 요하는 단계는 아니라며 너무 걱정하지 말고 한 달 후 다시 재검을 진행하자 하셨다. 마치 한 달간의 최후통첩이 주어진 기분이었다.
폭식, 과식, 배달음식과는 거리가 먼 소식좌인 데다 틈이 날 때마다 홈트도 해주는 등 나름 건강을 챙기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무엇이 잘못된 걸까? 20대 초반 때 내일은 없을 것처럼 마셨던 음주량? 소식하다 못해 부실했던 영양섭취? 수면부족? 스트레스? 명쾌한 답이 없는 질문들의 연속이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인데 어쩌랴,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지. 따라서 지난 20대를 돌이켜보며 내가 내 몸에 '안 하다 한 짓'에 무엇이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중 하나가 커피, 카페인 섭취였다.
피곤해서, 삶이 고단해서 시작했다기보단 남들이 마시니까, 또 맛있어서 마시기 시작한 커피와의 인연이 어느덧 4년을 넘겼다. 하필 또 진한맛을 좋아했던 탓에 아침엔 무조건 에스프레소 3샷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그다음엔 블랙커피, 점심식사 후엔 아이스라떼로 마무리했다. 못해도 2잔 이상은 매일 마셔온 셈이다. 그렇다고 빈 속에 마신적은 없었기에 당연 문제가 없겠거니 했을뿐더러 인터넷에는 커피의 효능을 타이틀로 한 기사들이 매일 수십 개를 쏟아져 나오는 탓에 단점보단 장점이 더 많을 것이라 여겼다.
물론 커피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어쩌면 내 체질엔 득 보단 실이 많을 것이라 판단, 그다음 날부터 바로 끊기 시작했다.
사실 챌린지에 있어서 뚜렷한 계획이 전혀 없었다. 보통 나처럼 오랜 기간 마셔온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끊는다는 게 보통 쉬운 일이 아니기에 점진적으로 줄여가는 방향을 택하지만 난 발등에 불이 제대로 떨어진 터라 극단적으로 시작했다. 첫날부터 카페인 음료는 입도 대지 않고 오직 물만 섭취하기로 한 것이다. 주방 한 구석에 자리한 커피존에 있는 물건들은 모두 눈에 안 보이는 곳에 숨겨놓았다. 뭐든 내 시야에 들어오면 눈길이 가기 마련, 최소한 집에서 만큼은 유혹을 불러일으킬만한 모든 요소들은 차단하기로 했다.
카페인 끊기를 수십 번 시도했음에도 번번이 실패했던 이유는 바로 금단현상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두통'. 첫날 오후부터 머리를 쥐어짜는 듯한 극심한 두통에 시달렸다. 원래 같았으면 타이레놀을 복용하여 통증을 줄여보려 했겠지만 이번만큼은 그 어떤 것에 의지하지 않고 이 악물고 참아내는 방향으로 가기로 했다.
두통은 2일 차까지 지속되었다. 그 때문에 집중력 저하, 피로감, 무기력함 등 모든 게 한꺼번에 몰려왔다. 무엇을 하든 생산성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와중에 끊임없이 극심한 졸음이 밀려와 생전 자지 않던 낮잠까지 자게 되었다.
3일 차부터 눈에 띄게 두통과 멀어지며 며칠 동안 나를 짓누르던 무기력함에서 서서히 빠져나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평소 커피를 마시던 때보다 에너지가 훨씬 증가한 느낌이었다. 참 아이러니 하다. 오히려 에너지를 얻으려고 일할 때 커피를 마시고 운동 전에 에너지 드링크는 마시는데 카페인이 없이도 이런 힘이 난다는 것이 신기했다.
2주 차부터는 모든 게 수월해졌다. 더 이상 커피가 끌리지 않았다. 수면의 질도 훨씬 높아진 느낌이었다. 커피를 몇 잔을 마셔도 잠만 잘 잔다고 굳게 믿고 살아왔지만 끊어보니 카페인이 맞아서라기 보단 그냥 피곤해서 빨리 잠에 들었던 것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개운함'이라는 것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헤비한 음식에 커피까지 때려 부을 땐 속이 그렇게 더부룩할 수가 없었는데 이젠 그 어느 것도 거슬리게 하는 것이 없어졌다. 무엇을 먹어도 속이 편안했다. 커피의 자리가 비워지니 그 자리를 자연스럽게 물이 채워주었고 평소보다 수분 섭취량도 증가했다. 특히 커피를 많이 마실 땐 이뇨작용 때문에 화장실을 자주 가곤 했었는데 끊은 이후론 횟수가 눈에 띄게 감소했다.
그 외 치아 착색방지, 커피값 절약 등 소소한 장점을 꽤나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물론 모든 과정이 수월했다고는 할 수 없다. 유혹을 떨쳐내기 힘든 순간도 더러 있었다. 특히 아침시간.
아침을 항상 챙겨 먹는 나에겐 아침메뉴만큼 커피와 잘 어울리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토스트, 베이글, 오트밀 등 모든 음식이 커피와 찰떡궁합이다. 따라서 아침을 먹을 때마다 옆에 커피잔이 없는 그림이 꽤나 큰 허전함을 안겨주었다.
그다음은 업무시간.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마다 실시간으로 수혈해 줄 수 있는 커피 한잔이 옆에 놓여있어야 제대로 마음잡고 일에 몰두할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젠 내 곁에 수혈음료라곤 물 밖에 없으니 친한 동료를 잃은 듯 그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누군가와 카페를 갈 때도 선택의 폭이 확 좁아졌다. 원체 주스나 탄산수등 음료자체를 좋아하지 않다 보니 어딜 가도 커피를 주문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는데 이젠 키오스크 앞에서도 무엇을 시켜야 할지 망설여지기 시작했다. 특히 디카페인 옵션이 없는 곳에서는 더더욱.
그래도 커피와 멀어지니 자연스레 다른 음료에 눈길이 갔다. 작두콩차, 레몬차 등 평생 눈길조차 안 주던 차에 손이 가기 시작했다. 아침식사땐 아쉬운 대로 우유로 대체했다. 물론 커피만큼의 행복을 가져다 주진 않지만 차선책으로선 나쁘지 않은 옵션이었다.
어느덧 챌린지가 한 달을 넘어 두 달 차에 접어들었다. 과정을 떠올리면서 느낀 점은 생각보다 할 만하다는 것이다. 매번 실패할 때마다 나 자신이 그저 의지박약이라고만 치부했는데 한번 굳게 마음먹고 성공해 보니 이젠 무엇이라고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얻었다. 무엇보다 이 챌린지를 통해 얻은 값진 경험은 바로 '자율성 회복'이다. "꼭 카페인이 있어야만 일을 할 수 있어.", "카페인 없이는 집중이 안돼.", "카페인 없는 삶은 지루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손에서 놓질 못했는데 이젠 그런 의존증에서 벗어나 꼭 무언가에 의지하지 않아도 내 몸이 가진 본체의 에너지와 능력만으로 일을 해낼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요즘은 커피를 안 마시는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로 모두가 즐기는 음료 중 하나다. 나도 끊기 전 커피를 안 마신다는 사람을 만나면 "뭐?", "왜?"라는 말이 자동반사적으로 튀어나왔는데 이젠 내가 그 사람 중 한 명이 되어버렸다. 그만큼 커피는 내 삶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존재였다. 없어선 안될 존재 중 하나였으며 커피 없는 아침은 상상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카페인을 매일 섭취하던 시절보다 끊었을 때 몸소 느끼는 장점들이 더욱 많았기에 그 전의 삶으로 돌아가진 않을 것 같다. 물론 1분 1초가 유혹과의 싸움이지만 그 찰나의 순간만 참으면 남은 하루는 수월하게 보낼 수 있고 그 하루하루가 보여 6개월이 되고 1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