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는 게 좋아
나도 한 때는 집에만 있으면 몸에 가시가 돋던 시절이 있었다. 친구들과 놀기 위해 돈을 번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평일 내내 오직 불금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또 진짜 놀 줄 아는 사람은 금, 토가 아닌 진또배기들만 모이는 목, 일요일을 택한다. 때론 술이 덜 깬 채로 좀비처럼 출근한 적도, 숙취를 질병으로 둔갑시켜 결근을 한 적도 있다. 그런 격동의 20대 초반을 지나 2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전환점은 코로나 시기였다. 때마침 좁디좁은 6평 원룸에서 벗어나 좀 더 넓어진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강제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면서 온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하게 되었다.
내 취향대로 집을 꾸미며 자취 생활의 진가를 서서히 알아가다 보니 이젠 목적 없이 넷플릭스나 두리번거리는 습관을 접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보자는 취지로 취미생활을 다지게 되었다. 그렇게 첫 취미생활로 영어공부를 시작한 게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이제는 일을 벌여 남는 시간엔 팟캐스트와 글쓰기까지 병행하다 보니 집에서도 바쁜 사람이 되고야 말았다.
결론적으로 굉장히 만족한다.
개인적으로 돈보다 시간을 중요시하는 사람으로서 맨날 "뭐 하지?"라는 고민보다 "뭐부터 해야 하지?"라는 고민이 훨씬 만족스러웠다.
가끔 가족이 우리 집에 놀러 오면 그런 질문을 한다. "안 심심해?" "뭐 해, 집에서?"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콧방귀를 뀌며 "단 한 번도 심심했던 적이 없어."라고 받아친다. 오히려 할 일을 다 못해서 망정이지 할 게 없어서 심심하다고 느껴본 적은 없다.
가끔 집순이 친구들을 만나면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다. "아니, 이렇게 집에만 있어도 괜찮나몰라, 이렇게 밖에 안 나가도 돼?" 그러면 항상 답변은 "그런데 너무 행복한 걸 어떡해."로 마무리된다. 물론 사람이기에 너무 집에만 칩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도 뭔가 비정상인 것 같지만 이게 곧 행복이라는 결론을 내리면 딱히 문제로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절대 혼자서만 살아갈 수 없다. 사람들과의 교류, 소통 없는 삶은 무미건조하다.
진정한 사랑을 한 번이라도 해봤다면 그 감정이 어떤지 잘 알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행복하다. 누군가 나를 챙겨준다는 느낌을 받을 땐 행복하다. 나 또한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다. 시답잖은 대화를 나눠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너무 오래 붙어 있으면 귀찮고 또 곁에 없으면 그리운 게 사랑인 듯하다.
생활패턴, 성격, 라이프스타일 등 안 맞는 부분이 더 많고 그 모든 걸 이해하고 감내하고 희생할 생각을 하면 결혼은 꿈도 꾸지 싫지만 막상 그 어려움을 함께 맞추고 헤쳐나가는 데에서 뿌듯함과 성취감, 알게 모르게 더 두터워지는 두 사람의 관계를 생각하면 결혼이 마냥 미친 짓을 아니란 생각이 든다.
내가 좋아하던 것을 포기해도 괜찮을 만큼 그 사람과의 미래를 그리고 싶다면 그때는 결혼해도 된다는 얘기를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다. 결국은 희생이고 그 희생도 사랑 없이는 안된다는 얘기다.
이쯤 되면 나 자신에게 묻고 싶어 진다. 그럴 준비가 되었는지. 지금은 되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그려볼 만한 미래인지.
때론 이런 생각도 든다. "둘 다 가질 순 없을까?" "사랑도 쟁취하며 육체적 편안함도 함께 누릴 순 없을까?" "혼자 있고 싶을 땐 혼자 있고, 혼자 자고 싶을 땐 혼자 자고, 둘 다 하면 안 되나?"
하지만 곧 "그럴 거면 안 하고 말지, 뭐 하러 결혼해서 고민거리를 만드나?"란 생각으로 마무리된다.
나처럼 집순이의 성향이 강한 사람은 원체 지니고 있는 에너지, 즉 소셜배터리의 수명이 빠른 경우가 많다. 한 번만 외출해도 최소 한 달간은 아무 약속 잡기가 싫어진다. 외출 한 번에도 꽤나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심지어 새로운 사람, 친하지도 않은 사람을 만난 날에는 배터리가 두 배는 빨리 닳는다.
외부에 있는 시간이 길면 길어질수록 집이 그리워진다. 연인을 집에 초대해도 하루이틀만 지나면 혼자 있고 싶어 진다. 뭔가 불편하다. 불편하다는 표현이 가장 잘 들어맞는다. 같은 공간에 오래 있는 것 자체가 불편하다.
뭐 한 50평 되는 집에 산다면 얘기가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선 그런 상황을 그려보았을 때 반가움보단 불편함에서 오는 걱정이 더 많다.
내가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청소를 하던, 밥상 차리기 귀찮아서 그릇에 냉장고에 남은 재료 다 때려 넣고 쓱쓱 비벼 먹던, 잠이 안 와서 새벽 2시에 유튜브 틀어놓고 근력운동을 하던 혼자 있으면 무슨 상관인가? 아무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는데, 간섭뿐만 아니라 "지금 뭐 해?"라는 질문조차 받을 일이 없다.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살기 되면 아무리 서로 협의하에 각자 알아서 생활해도 상대방의 패턴이 고스란히 시야에 들어오게 되는데 어떻게 신경 끄고 살 수 있는가?
결국 같이 사는 것이 두렵기에 결혼 자체가 망설여지는 이유가 가장 크다.
모르겠다. 아마 직접 겪어보기 전까진 평생 모를 순 있다. 하지만 또 겪고 나서 후회하긴 싫기에 신중해지는 게 결혼생활인 듯하다.
과연 내게 답을 내리게 되는 순간이 찾아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