둠 스크롤링(doom-scrolling)의 늪
근래 생긴 나쁜 습관 중 한 가지, 바로 눈 뜨자마자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자기 전에 폰을 보다 잔 적도, 낮 시간 내내 폰에 방해받은 적도 있지만 아침만큼은 한 번도 양보해 본 적이 없는데 끝내 무릎을 꿇고 말았다. 참 무서운 게, "한 번쯤은 괜찮아, 한 번인데 뭐 어때." 라는 생각에 무심코 하는 행동이 이틀이 되고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어 만성으로 굳어버린다.
결국 폰 사용시간을 컨트롤하기 위해선 단 한 번도 양보해선 안된다는 얘기다.
요즘 인터넷에서 심심찮게 자주 목격하는 단어가 바로 둠 스크롤링(doom-scrolling)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사용해 부정적이거나 우울한 뉴스, 정보 등을 끝없이 스크롤하며 소비하는 행위를 뜻한다.
말 그대로 블랙홀이다. 하루에 한 번도 안 할 순 있지만 한 번만 할 순 없다. 하루하루가 무한 스크롤링과의 전쟁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왜 뚜렷한 목적이 없어도 계속 폰을 들여다볼까?
우선 할 일이 없을 때 혹은 뭘 해야 할지 모를 때 우린 자연스럽게 폰에 손이 간다. 심지어 할 일이 있어도 5분 만이란 핑계로 폰을 집는다. 일상에서 발생하는 자투리시간을 대처하는 수단은 핸드폰이 되어버렸다. 마트 계산대 줄을 설 때도,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길을 거니는 중에도 폰은 이미 일상 깊은 곳까지 세밀하게 침투해 버렸다.
핸드폰을 확인하지 않으면 무언가 놓치는 것만 같은 심리, FOMO(fear of missing out)에 의해 폰을 끊임없이 확인하기도 한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가 잠든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소셜미디어에 무언가 포스팅하진 않았는지, 관심 있던 해외 코스메틱 브랜드의 신제품 론칭 소식이 올라왔는지, 딱히 올 때도 없지만 혹여나 중요한 이메일을 놓치진 않았는지, 어젯밤 마지막으로 보낸 내 카톡에 답장이 와 있는지 등 전혀 급한 것이 없음에도 당장 확인하지 않으면 중요한 것을 놓쳐 버릴까 눈 뜨자마자 당장 찾는 게 핸드폰이다.
따라서 제대로 각성하고 습관을 고쳐보고자 나만의 screen free activities 리스트를 만들어 보았다. 핸드폰 대신 시도해 보면 좋은 취미생활이나 tv, 태블릿, 컴퓨터 없이 즐길만한 소소하면서 접근성이 쉬운 활동들엔 무엇이 있는지 정리해 보았다.
1. 수첩 들고 다니기
무의식적으로 손이 핸드폰으로 향할 때마다 수첩 혹은 다이어리로 노선을 변경해 보자. 무언가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폰에 있는 메모앱을 켜기보단 가방 속에 있는 수첩을 꺼내 직접 적어보자. 여태까지 실용성과 효율성을 이유로 손으로 적는 메모장보단 모바일 메모장을 선호해 왔다. 물론 펜이 없어도 어디서나 쉽고 빠르게 사용할 수 있단 점이 큰 장점이지만 반대로 쉽게 딴 길로 샐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큰 단점이다. 더군다나 적어놓고 까먹어 나중에 한 번도 들여다본 적 없이 방치된 메모들만 가득 쌓였던 경험을 한 적도 있다.
이 습관을 길들이기 위해선 의식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수첩을 눈에 보이는 곳에 놓는 연습부터 집안에서 이동할 때도 항상 손에 끼고 다니고 외출을 할 때도 가방에 챙겨 다녀 다니자. 그렇다고 굳이 문구점으로 달려가 새 다이어리를 사거나 예쁜 디자인의 제품만을 찾을 필요는 없다. 당장 집에 굴러다니는 작은 메모장부터 사놓고 방치해 둔 오래된 수첩이나 심지어 이면지라도 좋으니 굳이 돈 들이지 말고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것부터 찾아보자.
2. 운동 가기
근래 유산소 운동을 목적으로 헬스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하루 걸음 수가 안습일 정도로 바닥을 치는 데다 하루종일 의자에서 엉덩이가 떨어질 일이 없으니 둔근이 하루가 다르게 굳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운동 가는 시간을 중간휴식처럼 사용한다. 꼭 일 다 끝내면 가야지 라는 마인드보단 두 시간 정도 내리 책상에 앉아 있었다고 하면 집중력도 떨어지고 몸도 뻣뻣해지는 타이밍이니 그 틈을 이용해 헬스장에 가 한 시간 정도 러닝머신을 타고 온다.
그래도 오늘 하루 무언가를 성취했다는 성취감과 더불어 운동하는 시간만큼을 핸드폰을 들여다볼 수 없으니 자연스레 전자기기와 멀어지게 된다. 무엇보다 장시간 폰을 들여다보다 뇌가 온통 스크린에서 본 내용들로 짬뽕이 집중력을 저하시키는 현상을 막아주기도 한다.
3. 전자기기 없는 활동은 뭐든 ok
한 마디로 스크린 없는 취미생활을 만들어보는 것이다. 하지만 꼭 취미라는 카테고리에 어울린만한 대단한 활동을 찾을 필요는 없다. 집 청소가 자신에게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준다면 당장 청소를 시작해도 좋고 평소 패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옷장으로 달려가 이것저것 코디해 보며 버릴 옷들을 정리해 주던가 요리에 관심이 많다면 평소 밀키트로만 구매했던 음식을 직접 재료를 사서 만들어봐도 좋다.
나는 앞서 말한 수첩 습관을 길들이기 시작하면서 오랜 시간 간직해 온 유일한 다이어리 하나를 장롱 구석에서 발견했다. 평소 일기 쓰기와 거리가 멀던 내가 유일하게 20년 넘게 간직해 온 일기장이었다. 대부분 무슨 일이 있을 때만 꺼냈던 터라 일 년에 몇 번 쓰진 못했지만 그때그때의 생각과 감정의 깊은 골을 가감 없이 그대로 털어놓을 수 있었던 유일한 소통창구였다. 첫 장부터 한 챕터씩 읽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엄마한테 혼난 후 분노에 가득 차 펜을 휘갈겼던 날, 학원에 좋아하는 아이가 생겨 센티해지는 밤에 끄적였던 시와 노래가사 등 이불 킥하게 만드는 흔적들을 보며 깔깔 웃기도, 살면서 겪어온 가슴 아픈 순간들에 맞서던 나의 감정상태를 들여다보며 눈물을 찔끔 흘리기도 했다.
이렇듯 별로 대단하지도 크게 의미 있지도 않은 작은 행동 하나가 새로운 발견을 낳을 수도 있다. 꼭 취미활동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것을 찾기보단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소소한 행동 하나부터 떠올려보자.
4. 청소하기
방정리, 옷정리 등 집안 청소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입이 닳도록 강조하는 부분이라 굳이 또 언급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여기서 추천하고 싶은 것은 바로 디지털 스페이스 청소이다. 물론 어쩔 수 없이 전자기기를 사용해야 하기에 완벽한 스크린프리 활동은 아니지만 적어도 스크롤링에선 멀어질 수 있으니 나름 유용하다.
구글 캘린더나 노션, 굿노트 등 앱을 이용하여 필기를 하는 사람이라면 틈이 날 때마다 들어가서 한 번씩 정리해 주는 것도 시간 때우기에 도움이 된다. 난 주로 브런치스토리 주제나 팟캐스트 아이디어 혹은 영어공부 내용을 필기하는데 적어놓고 들여다보지 않은 탓에 방치된 페이지들이 꽤나 있었다. 매번 어플을 켤 때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 몰라 방황하지 않도록 필요 없는 자잘 자잘한 기록들을 다 비워주었다. 간결하고 깔끔해진 섹션을 보다 보면 꽤나 큰 마음의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5. 가만히 있기
우리가 하루 중 몇 분이나 고요 속에 있는 시간을 가지는가? 음악, 유튜브, sns, 팟캐스트 등 거의 제로에 가까울 정도로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소음을 만들어낸다. 이런 환경에 오랜 시간 노출되다 보면 갑자기 찾아오는 정적을 견디기 힘들어하곤 다시 애써 소음을 만들어내기 일쑤이다.
하루에 단 1분이라도 의식적으로 침묵 속에 있는 시간을 가져보자. 진정 나 자신과 대화하는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갖가지 생각들에 고민해 보고 답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지다 보면 그동안 내가 잊고 있었던 일들, 해결해야 할 일들, 복잡한 감정들 마저 엉킨 실타래가 풀리는 정리되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