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우정과 결혼식
'양보단 질'이라는 말처럼 난 줄곧 넓고 얕은 인간관계보단 좁고 깊은 관계를 선호해 왔다. 사실 타고난 성향 자체가 나서거나 리드하길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다. 보통 학창 시절을 보면 친구 여럿을 끌고 다니며 일명 스쿼드를 형성하는 학생이 있는 반면 그냥 마음 맞는 친구끼리 옹기종기 모여 4인 내로 짝을 지어 다니는 학생들이 있다. 난 항상 후자에 속했다.
친구관계를 떠올렸을 때 흔히 하는 질문 중 하나가 '고등학교 친구는 평생 가나?'이다. 물론 개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케이스를 빗대어 보았을 때 꼭 그렇진 않다. 다툼이 있어서 사이가 소원 해졌다기보단 성인이 되어 각자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인연을 맺다 보면 자연스레 멀어지기 마련이다. 나도 간간히 중, 고등학교 동창들이 생각난다. 뭐 하고 지내는지, 결혼은 했는지, 물론 언제든 궁금하면 언제든 sns를 통해 근황을 알 수 있지만 sns를 하지 않거나 찾는다 할지라도 거기서 그칠 뿐 굳이 먼저 연락을 건네진 않는다. 더욱이 얼굴 안 보고 살아온 세월이 길면 길어질수록 더 어려워진다.
사실 난 먼저 연락하는 것을 원체 잘하지 못한다. 그냥 마음이 없는 게 아니냐는 핑계로 들릴 수 있겠지만 항상 속으론 생각해도 직접 액션을 취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이 또한 많은 노력을 통해 이젠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들에겐 스스럼없이 언제든 먼저 연락을 하지만 멀어진 친구들에게까진 아직 힘들다.
나는 빈말을 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물론 사회생활에선 융통성을 위해 어느 정도는 사탕발린 말을 곁들여줘야 하는 상황이 생기지만 대게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저 얼굴 못 본 지 오래되었단 이유로 대뜸 연락해 "언제 만나서 밥 한번 먹자."라는 빈말을 건네기 싫어서 연락을 안 하는 이유도 있다. 진심으로 빠른 시일 내에 만날 생각이 있다면 미리 만날 날짜를 예상해 두고 연락을 취하지 그냥 '언제 한번'이라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건네자고 애써 침묵을 깨고 싶진 않다.
다이내믹한 20대를 지나 30대에 접어들기 시작하면 슬슬 대화 주제에서 결혼이 거론되거나 실제로 이곳저곳에서 결혼소식이 들려온다. 특히 인간관계가 좁은 나는 결혼식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하객이 걱정되기 마련이다. 초대할 가족, 친지들은 어느 정도 되는 반면 부를 친구가 별로 없다.
얼마 전 친구 결혼식에 다녀온 친구가 내게 전화를 걸어하는 말이
"야, 결혼식에 친구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가족이지."
결국 식장에 머릿수 채워주는 건 가족이라더라. 흔히 결혼식은 어른들의 잔치라 하지 않나. 진짜 숨겨진 주인공은 신랑신부의 가족인 셈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어느 정도는 안심이 된다.
요즘 부쩍 친구 결혼식에 가주는 게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꼭 절친까진 아니어도 어느 정도 안면을 튼 사이면 당연히 가줘야지 라는 생각이 있었지만 요즘은 직접 시간을 내서 참석하고, 부조하고 축하해 주는 게 보통사이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각별하고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마음이 있어야 가주지 애매한 사이에선 기대하기 힘든 것 같다. 그런 생각이 자리 잡히다 보면 내 결혼식에 많은 친구들이 와주길 바라는 것도 무리다.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보다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게 배로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남의 성공을 나 자신의 처지와 비교하지 않고 그 성공 그대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축하해 주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우린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살아간다. 그 비교대상의 1순위는 자연스럽게 우리 주변인이 된다. 비단 친구뿐만이 아닌 연인, 형제자매사이에서도 비교의식은 항상 존재한다. 물론 겉으론 얼마든지 축하해 주고 기뻐해줄 수 있지만 하지만 정말 내 일처럼 기쁜 마음을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돌아가서도 현타를 느끼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모르는 일이다.
비교는 때때로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지만 지나치면 자존감을 깎아내릴 수 있다. 중요한 건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루느냐다. 각자의 속도와 방향이 다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 친구의 성공과 행복을 있는 그대로 축하해 주며 배움의 기회로 삼고 나만의 길을 걸어가는 게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제 겨우 20대를 넘긴 나로서 이 질문에 100% 확신에 찬 목소리로 괜찮다, 문제없다고 단정 짓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내가 좁고 깊은 관계를 지향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권장하고 싶진 않다. 인간관계도 다 각자의 성향 따라가는 것이기에 다양성은 항상 존재한다. 10대 20대 때는 되도록 많은 경험을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 시기는 남길 사람 남기고 쳐낼 사람 쳐내는 시기가 아닌 맺어지는 인연대로 소통하고 어울리며 추억을 쌓고 교감하는 시기다. 오는 인연을 반겨보기도, 소원해지는 인연을 떠나보내기도 하며 경험을 쌓다 보면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성향을 가진 사람과 잘 맞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게 쉽지 않다. 더군다나 사회에서 맺어진 인연들은 그 관계가 피상적일 가능성이 높다. 지금 나의 절친들은 모두 10년 지기 이상이다. 인연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는 말이 딱 들어맞듯 유일한 초등학교 친구를 제외하곤 모두 성인이 돼서 만났다. 친구를 만들려고 나간 자리에서 만난 것도, 보자마자 죽이 척척 맞아서 친해진 것도 아닌 정말 우연찮게 한 두 번 놀다 보니 잘 맞아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난 개인적으로 연락이나 만남 횟수가 그 우정의 척도를 증명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관계유지를 목적으로 매일 연락할 필요도, 주기적으로 만날 필요도 없다. 언제 연락해도 스스럼없는 사이, 일 년에 한 번을 보든 열 번을 보든 언제 봐도 어색하지 사이, 만날 때마다 대화가 끊이질 않는 사이가 진짜 편한 사이라고 생각한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이런저런 불협화음을 최소화하고 싶다면 먼저 자신의 성향이 어떠한지 정리해 보는 것이 좋다. 노는 스타일은 어떤지, 여행 스타일은 어떤지, 만남 횟수는 어느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는지 등 사소한 디테일까지 미리 파악해 두면 나중에 새로운 친구를 사귈 때 중요한 나침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