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0에서 나오는 창작물은 없다. 영감 없이는 그 어떤 창작물도 탄생할 수 없다는 뜻이다.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선 영감이 필요하다. 영감의 근원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나의 어린 시절, 내 주변 사람들의 행동 패턴, 길을 가다 무심코 발견한 한 편의 시, 운전 중 듣던 라디오, 친구가 추천해 준 노래 등 영감의 씨앗을 심을 수 있는 곳은 무한하다.
영감은 기존 것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새로운 독창적인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자유롭다는 것이 특징이면서 독창성이 포함되어야 한다.
하지만 때로는 이 영감을 바탕으로 고안해 낸 생각마저도 정말 ‘나의 것’인가, 나의 독창성이 포함된 것이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분명 내 머릿속에서 흘러나온 생각과 표현이지만 이것 또한 결국 누군가의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았기에 가능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것을 온전히 나의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창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복잡 미묘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것도 순수한 영감만을 좇고 싶은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2년째 팟캐스트를 제작해오고 있다. 팟캐스트를 시작해야겠다 마음먹은 것은 오랜 시간 팟캐스트를 청취해 왔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특정 주제에 대한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의견을 듣는 것은 언제나 흥미로웠다. 간혹 올라오는 주제가 내가 근래 곱씹던 생각과 겹친다면 기분이 더할 나위 없이 짜릿했다. 진행자와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유대감이 형성되는 기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제는 그저 듣는 활동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닌 내가 그 주체가 되어 타인의 공감대를 살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보자는 결심에 이르렀다. 꾸준히 들어오던 팟캐스트가 영감이 되어 팟캐스트 진행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매주 새로운 주제로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려면 내 삶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요소를 활용해야 한다. 그 요소들을 활용하되 오직 나의 이야기로 재해석시키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예를 들어 엊그제 감명 깊게 읽은 책의 어느 한 구절을 내 팟캐스트에서 언급하려 한다. 책 제목과 지은이 등 출처를 밝히고 그 구절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전달하는 건 괜찮지만 마치 내가 떠올려낸 말 인양 그대로 복사해 붙여 넣어 버리면 표절이나 다름없다. 개인의 창작물도 다른 사람의 창작물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만들어지지만 그 창작물을 내 입맛대로 살을 붙이고 깎고 다듬어야 비로소 고유한 나만의 것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창작활동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저작권이라는 것이 얼마나 민감한 부분인지 알 것이다. 동영상 크리에이터가 영상에 삽입할 배경음악을 찾으려면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는 무료 음원을 찾아 넣거나 특정 사이트에 구독권을 지불하고 사용해야 한다. 일반인도 이와 관련된 예시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포털사이트에서 마음에 드는 사진을 발견해 무심코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눌러 저장하려 해도 먹통인 경우가 있다. 스트리밍 서비스로 영화를 보다 마음에 드는 장면이나 자막을 기억하고 싶어 캡처 버튼을 눌러도 캡처가 불가능하다. 무단 복제, 배포를 막기 위함이다. 더 나아가 연설, 강연, 인터뷰 답변처럼 사람이 뱉은 말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저작권이라는 것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깊고 광범위하며 일상에 만연해 있다.
가끔 이 세상에 과연 '새로운 것'이라는 게 있을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모든 것이 한 번쯤은 누군가의 손에 거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패션쇼 런웨이 의상, 동영상 콘텐츠, 영화, 드라마, 노래, 미술품, 책 심지어 내가 속해있는 팟캐스트 시장 등 창의성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 모든 창작물이 서로 겹치는 부분 하나 없이 새롭고 독창적일 것이라 여기는 건 어쩌면 비현실적일 수 있다. 그것들 역시 어딘가에서 얻은 영감으로 만들어졌을 테니 말이다. 문제는 그 영감이 자칫 선을 넘어 표절이나 저작권 침해의 경계로 빠지기 쉽다는 점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이 모든 게 정말 한 끗 차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은 창작자와 소비자에게 달려 있다. 창작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모든 행위의 경계가 자칫 모호하게 보일 수 있으나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그 애매했던 경계 또한 점차 분명해질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은 우리의 관심과 노력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