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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윤맘 Dec 22. 2021

배숙을 만들다

내가 대신 아플 수만 있다면

콜록콜록


둘째 기침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7개월짜리 아기가 감당하기엔 버거운 기침과 가래다. 기침 소리를 듣는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아이고 어쩌나" 말이 절로 나온다.


일주일 전 첫째가 감기에 걸렸다. 둘째가 옮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심하게 올지는 몰랐다. 첫째는 3살까지 감기 한번 앓아본 적이 없었다. 그저 콧물 며칠 흘리다 이내 나았다. 그래서 지금껏 약이라곤 돌치레 때 열이 올라 해열제를 먹인 게 다였다. 둘째도 감기 안 걸리고 클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첫째의 감기는 고스란히 둘째인 7개월 아이에게도 이어졌다. 경험해보지 못한 어린아이의 기침소리와 가래 끓는 소리, 그리고 컹컹 소리까지. 걱정되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 겁이 났다.


폐렴으로 가면 어쩌나, 파라 바이러스인가, 혹시 코로나라면..? 또다시 불안감이 확 올라왔다. 병원에 서둘러 갔다. 소아과 약이 잘 안 듣는 것 같아 이비인후과로 갔다. 의사는 콧속과 귀, 입안, 심장소리를 듣고 보더니 심한 건 아니라고 한다. 안도의 한숨은 쉬었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항생제와 항히스타민제, 코막힘 개선제, 진해거담제 등을 처방받고 약을 먹이면서 "이거 먹고 얼른 낫자. 아프지 말아. 엄마한테 감기 다 줘"라며 애원 아닌 애원을 한다.


약을 먹었음에도 증상엔 차도가 없다. 인터넷을 검색했다. 그때 '배숙'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배숙. 어렸을 때 엄마가 만들어 줬던 그 달큰한 맛의 배숙 말이다.


"아픈 자식을 위해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 바로 배숙이 된거구나" 눈시울이 조금 붉어진 채로 배를 깨끗하게 씻고 얇게 썰어 대추와 함께 압력 밥솥에 넣고 20분간 끓였다.


배숙 만드는 내내 나의 바람은 하나. 제발 이거 먹고 감기야 싹 나아라. 이런 마음으로 배숙을 만드니 배 껍질을 깎으며 대추를 씻으며 압력밥솥에 배를 넣으며 그 무엇 하나 대충 할 수가 없다. 온 정성을 다게된다.


나의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엄마로서의 인생 4년 만에 처음으로 배숙을 완성했다. 살짝 맛보니 달짝지근한 것이 아이도 잘 먹을 맛이었다. 우러나온 배 물을 흘릴까 조심조심, 그릇에 옮겨 담은 후 둘째에게 먹였다. 잘 먹는다. 기특하고 안쓰럽고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에게도 배숙을 줬다. "으~ 맛없을 거 같아"라며 거부했지만 '먹으면 감기 다 나을 거야'라는 말에 꿀꺽꿀꺽 잘도 먹는다. 첫째도 아픈 게 싫은 거겠지. 그리고 남편에게도 배숙을 조금 줬다. 남편도 감기에 걸려 일주일째 고생 중인 상태. (사실 남편은 배숙 주기가 조금 아까웠다. 미안 여보^^;;) 남편도 예전에 엄마가 해주던 배숙이 생각난다며 잘 먹는다.


배숙을 만들고 배숙을 먹는 가족을 보니 정말 엄마가 된 듯한 느낌이다. 아이들은 아프고 나면 쑥 큰다더니, 아이가 아프면 엄마도 크나보다.


이제 나의 삶, 나의 건강보다 아이들의 삶과 건강이 더 중요하다. 그러니 내가 대신 아플게, 엄마한테 감기 옮겨줘라는 말이 나오는 거겠지.


아프지 말

건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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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록거리며 괴로워하는 둘째를 아기띠로 안고 재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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