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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윤맘 Dec 13. 2021

대학병원을 간다는 건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

오늘도 엄마는 기도를 한다

"음.. 이마도 오른쪽이 더 나와있고 귀 위치도 다르네요. 소견서 써드릴 테니 대학병원 가서 검사받아보세요."


달 전

둘째 예방접종을 위해 소아과를 갔다. 친절한 의사 선생님은 예방접종만 해주지 않고 이곳저곳을 봐주고 질문도 하라고 하신다. 그러더니 둘째가 사두증이 좀 심하다며 대학병원 진료를 받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두증:아기 머리 뒷부분의 좌측이나 우측의 한쪽이 평평하거나, 납작하게 들어간 증상을 말한다. 이는 '자세성 사두증'과 '두개골 유합증에 의한 사두증'으로 구분된다.>


100일 즈음부터 둘째 머리가 비대칭이라는 건 알았다. 내가 수유를 한쪽만 주로 하고, 그쪽으로 보는 일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 하고 크게 신경을 쓰진 않았다. 그런데 소아과 선생님은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한 것.


이때만 해도 크게 걱정 안 했다. 사두증이라면 셀프 교정이나 심하면 헬멧 착용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료 예약하기 위해 A대학병원에 전화했는데 제일 빠른 진료가 한 달이나 지나야 한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예약이 가능한 날 중 가장 빠른 날로 예약을 잡아두었다. 그 기간 동안 나와 남편은 왼쪽으로만 고개를 두는 둘째를 오른쪽으로 더 보게끔 노력했다.


드디어 진료 보는 날. 코로나 시기에 대학병원을 간다는 건 여러모로 정말 정말 힘들다. 일단 환자 1명에 보호자 1명만 입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나 혼자서 병원을 가야 한다는 게 부담이다.


2시간을 아이를 안고 본관에 갔다가 별관에 갔다가 1층에 갔다가 3층에 갔다가.. 대학병원은 왜 그리 가야 하는 곳이 많고 받아야 하는 서류가 많고 들려야 하는 진료과가 많은지.. 가방 속엔 기저귀와 분유, 따뜻한 물, 물티슈, 각종 장난감 등등 무거운 거 한가득이다.


이런 건 문제도 되지 않는다. 가장 힘든 건 아이의 상태를 들을 때 오롯이 나 혼자 들어야 한다는 것.


둘째와 함께 힘겹게 대학병원에 들어와서(코로나로 거쳐야 하는 관문이 수십 개) 진료실 앞으로 갔다. 왜 이리 대기시간은 긴 건지... 예약시간에 맞춰 갔음에도 한 시간 넘게 기다렸다.


드디어 우리 둘째가 진료볼 시간. 떨리는 마음으로 교수를 만났다. 머리통을 이리저리 보고 자로 재어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고개를 돌려보고 몇 가지를 질문한다.

-뒤집기 하나요.

-언제부터 한쪽으로 봤나요.

-흠. 좀 많이 비대칭이네요.

-사두증은 11부터 심하다고 보는데 00 이는 14에요. 그런데 사두 증보다 두개골 유합증이 의심이 되네요. 그거 먼저 확인하고 그거에 따라 치료 방법을 달리해야겠어요. 밖에 나가서 안내받고 바로 엑스레이 찍고 가세요.


네? 두개골 유합증이요?

네. 두개골유합증일 수 있으니 검사받으세요.

그건 뭔가요? 어떻게 치료가 달라지는데요?

나가시면 간호사가 알려줄 거예요

네...


그때부터 멘탈이 흔들렸다. 생각지도 못한 병명과 바로 엑스레이를 찍어봐야 한다니,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듯했다.


어떤 정신으로 간호사에게 설명을 들었는지 모르겠다. 설명이 너무 길었기도 했고 갑자기 새로운 질환이 의심된다는 것과 대기를 한 시간 넘게 하는 바람에 녹초가 됐다. 둘째는 배가 고파서 울고불고 난리였고 나는 얼른 수유실을 찾아 젖병을 물렸다. 그 가운데 계속 되새긴 건 일단 1층 가서 엑스레이를 찍으면 된다. 오늘은 그거 하면 된다.라는 생각이었다. 엑스레이는 금방 찍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두개골 유합증 여부를 문자로 전송해주겠다는 안내를 받았다.


집에 돌아와서부터 두개골 유합증을 검색.

그때부터 지옥 같은 일주일을 보냈다. 정식 질환 이름은 두개골 조기 유합증. 원발성 두개골 조기 유합증이라고도 불리며, 두개골을 이루는 뼈들의 유합하는 과정이 너무 일찍, 불완전하게 일어나서 비정상적인 모양의 머리를 야기하는 희귀 질환. 


사진을 보니 둘째의 머리통과 비슷하다. 증상을 보니 또 비슷하다. 자주 토하고 한쪽이 들어가 있어 귀 위치가 다르다. 둘째에게 모두 해당되는 내용이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두개골 조기 유합증은 수술을 해야 하는 중한 질환이고, 시기를 놓치면 뇌압이 높아져 뇌 손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글을 봤다.


하느님께 기도하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아닐 거야라고 생각하다가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어 일주일을 새벽마다 두개골 조기 유합증에 대한 정보를 찾는데 열중했다.


생각보다 많은 수술 케이스를 봤고, 그 작은 머리에 나사를 박아야 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어떡하지. 우리 둘째 어떡하지. 내가 유도분만을 해서 그런가. 태교를 못해서 그런가. 아기 낳을 때 간호사가 알려준 대로 호흡을 잘못해서 그랬을까. 등등


모든 게 내 탓 같고 내 책임 같아서 가슴을 쳤다. 남편에게도 말 못 하고 끙끙 속앓이를 하며 이불속에서 울었다. 수술을 하게 되면 무조건 서울대를 가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일주일이 왜 이리 안 가는지, 아니 일주일 후에 문자를 받는 것도 두려웁기도 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그날이 왔다.

다행히 문자는 아침 일찍 왔다.

"000 병원 재활의학과입니다. 000님이 촬영하긴 두개골 X-ray 검사상 정상 소견을 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눈물이 핑 돌았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걱정하고 있을 가족들에게 곧바로 이 소식을 알렸다. 그리고 잠들어있는 둘째를 바라보며 고마워 정말 정말 고마워라고 수십 번 말했다. 건강하게만 커줘 그거면 된다라며..


둘째는 사실 태어나고 얼마 안돼 너무 구토를 많이 해서 유문협착증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받아 대학병원에서 진찰을 받았다. 유문협착증도 결국엔 정상이라는 판정을 받았지만 그 당시도 정말 며칠을 가슴앓이했었는데 이번에도 또 그런 시간을 보낸 것.


부모들은 다 알 거다. 이런 시간을 보내면 정말 남는 건 건강만 해다오라는 바람밖에 없다. 무조건 건강만 해라. 나머진 다 엄마 아빠가 책임질게. 건강하게만 자라줘. 그거면 돼...


이젠 정말 대학병원 갈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더 이상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우리 아이들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게만 자라나기를. 오늘도 나를 기도한다.



21. 12. 13.

다시 생각해도 가슴이 미어지는 그날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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