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떡녀
그녀의 삶은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올곧게 한길만을 걸어왔다고 할 수 있다. 직장에서도 부당한 일이 있으면 벌떡 일어나 지적을 했다. 큰 정치적인 입장에서부터, 토종 먹거리, 우리 옷을 고집하는 것까지 늘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택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자칭 타칭 직장에서 벌떡녀로 통했고, 상사들에게 기피 대상이 되기도 했던 세월을 살아왔다. 특히 부당한 명을 받거나, 동료들이 차별당할 때, 작은 거라도 부정하다고 생각되면 벌떡 일어나 포효를 했다.
어려운 학생을 보면 내 살 뜯어 먹이고 입히고 챙겨야 적성이 풀렸다. 엄마보다 더 살뜰히 보살피다 보니 주변 선생님들이 버릇 나빠진다고 눈치를 하기도 하지만 개의치 않고 사랑을 쏟는데 거침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학부모가 누가 부모인지 혼돈했는지 졸업식날 선생님께 아들 밥을 사라고 요구하거나, 군대를 보내고도 휴가 나오면 밥을 사달라고 연락이 왔다.
솜씨가 좋아 바느질이나 요리가 일품이어서 밤새워 퀼트 작품을 만들어 주변에 민들레 홀씨처럼 나누어 퍼뜨렸다. 좋은 재료만 골라 만든 김장이며 물김치며 요리를 나누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했다. 그녀 옆에 있으면 늘 따뜻함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런 그녀에게 40대 이후 흰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키지 않아 하면서 검은색 염색을 했지만, 오십을 넘어 염색 포기 선언을 하였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나이 듦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는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다. 하얗게 백발이 된 머리에 짧은 커트를 한 그녀 뒤로 숱하게 많은 웃지 못할 이야기들이 줄을 이었다.
한 번은 초여름 해 질 녘 퇴근하여 저녁장을 봐서 검은 봉지를 줄래 줄래 들고 아파트 입구에 들어섰다. 이사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아 동네 주민들과 아직 낯이 설 때였다. 아파트 내 정자에 할머니들이 빙 둘러앉아 부채질로 석양 더위를 쫓고 있다가 백발의 그녀를 발견한 할머니들의 반응은 격했다.
“ 오메 오메 할머니가 어쩌다가 이라고 머리가 허옇게 돼 불렀다 요? 시상에 허리 아픈데 뭔 장을 이라고 많이 봐 오 시께라. 자식들도 없는갑소인. 하기사 요새 것들이 노인네랑 같이 살라고 안 하지. 이리 와서 한숨 돌리고 가시시오. 그란디 할머니가 머리는 허해도 겁나게 이쁘게 늙었구먼이라. 오메 주름도 벨라 없네. 나는 80이 낼 모렌비 그새 주름이 자글자글하단 말이요. 할머니는 몇 살이나 잡솼소?”
뭐라 변명할 새도 없이 80넘은 할머니 취급을 받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직장에 와서 할머니들한테 못한 억울함을 아침 내내 호소하고 동료들의 위로를 받고서야 백발을 유지할 힘을 얻었다.
“그래도 언니 하얀 머리가 엄청 예뻐요. 유럽인은 원래 백발도 있는데 언니 머리는 세련되고 품위 있게 보여요.”
어디 그뿐이랴, 작년 여름 동네 사거리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신호를 잠시 못 봐서 달려오는 차와 크게 부딪치는 사고였다. 쾅! 사고 후 의식을 거의 잃어버린 상태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할머니! 할머니! 정신 차려 보시오. 세상에 할머니가 집에나 계서제 뭣 하려고 차를 몰고 밖에 나와서 이런 변을 당해 불었소.”
지나가다 사고를 보고 달려와 꺼내주고 신고까지 해준 아저씨인데 정신이 오락가락하던 통에도 할머니라고 하는 소리에 화가 확 뻗쳐, ‘보호자가 누구냐?’ 묻는 말에 대답도 하기 싫었단다. 병실에 위문차 갔더니 아직도 성이 덜 풀렸는지 아픈 이야기보다 노인네 취급당한 억울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내가 정말 염색만은 절대 안 할라 그랬는데 가는데 마다 할머니 할머니 소리가 지겹여서 염색을 해야 쓸까 고민이다. 우리 신랑이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회갑이 넘었는데 나한테 할머니라 그러고 어쩔 때는 아들이냐고도 묻는다. 웃어야 쓸까 울어야 쓸까 모르겠어. 저 참에 오랜만에 관광지를 가서 표를 사는데 묻지도 않고 경로우대 표를 주더라고. 우리 신랑 당신 때문에 노인네 취급 받아부렀다고 하나도 안 좋아하더라니까.”
그렇게 병실에서 한 시간가량 할머니 타령을 하고 나서야
“사고 때 나를 구해준 그 아저씨 그때는 아픈 것보다 겁나게 성질나서 인사도 못했는데 이제 생각해 본께 참 고마운 아저씨여. 어떻게 연락처를 알면 감사하단 말이라도 전해야 쓰겠는디...”
염색은 싫고, 할머니란 말은 더 싫고, 고민하던 차에 단발을 권하며 미용실을 소개했다. 단발을 하면 좀 더 젊게 보일 것도 같아서였다. 그런데 미용실 다녀온 그녀는 다시 기운이 생생해져 있었다.
“미용실 아줌마가 내 머리가 너무 어울린다네. 머릿결도 너무 좋고, 두피도 건강해서 부럽대. 절대 염색도 하지 말고, 머리도 단발보다 커트가 어울린대. 이제야 나를 알아봐 준 사람을 제대로 발견해 불었어. 이제 할머니란 말도 무섭지 않아. 그냥 할머니 하지 뭐.”
어느 겨울 눈이 하얗게 오는 주말이었다. 오랜만에 남편과 마음을 내어 대흥사 숲길을 산책하는데 익숙지 않은 데이트여서인지 그녀는 열 걸음 앞에, 남편은 뒤에 천천히 걸으면서 눈을 느끼며 걷고 있었다. 뒤에서 서서히 내려오는 차량의 느낌이 있었으나 한편으로 걷고 있어 뒤돌아보지 않고 그냥 걷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 옆에 차가 끽 멈추더니 중년의 점잖은 사내가 내려와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어르신 눈길 위험한데 차로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타시지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당황을 하자, 얼굴을 자세히 보고 그 중년 사내는
“뒤에서 보고 어르신인 줄 알았습니다.”
하고 다시 차에 오르는 것이었다.
이렇게 숱한 흰머리 사연에도 굳세게 흰머리를 지켜내서 이제는 누가 봐도 어여쁜 할머니임을 자처한다.
지금도 동료들과 종종 같이 길을 걷다 보면 사람들이 ‘겁나게 닮았네. 엄마요?’하는 소리를 하지만 그래도 씩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내가 세상 돌아가는 것은 싹수가 없어 좀 힘들지만, 그래도 요새 벌떡녀 안 해도 되는 사무실 분위기가 너무 좋아. 나보다 서로를 더 챙기는 이 분위기를 진작진작 꿈꿨어.”
오늘도 우유에 인삼 잔뜩 갈아 주스를 가져와 아침에 출근한 동료들에게 나누어 주는 따뜻한 추억의 벌떡녀 그녀의 머리가 아침 햇살에 반짝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