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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은 안정된 질서를 거부한다

by 김인순

청소년들은 안정된 질서를 거부한다

개학 1주일째 학급 임원을 뽑는 날이었다. 계속 마음이 불안하고 편치가 않았다. 임원을 했으면 하는 아이들은 몸을 사리고 소극적인 반면, 소위 ‘일진’ 패거리들이 학급 임원과 학교 선도부를 맡으려고 기를 쓰고 있었다. 우리 반보다 이틀 먼저 임원을 뽑은 다른 반에서는 담임 선생님과 아이들이 간부 자리를 놓고 소동이 있었다.

머리는 더벅머리에 교복은 몇 번이나 줄였다가 피고, 분필로 흰 낙서가 쓰인 교복을 아무렇게나 걸친 녀석들이 복도에서 줄달음치며 찾아왔다. 그리고 자신이 간부가 되고 싶은데 담임 선생님이 허락해 주지 않는다고 울고불고 난리였다.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은 그 아이들을 붙잡고,

“너 머리나 복장을 봐라. 이래서 어떻게 학급 반장을 맡는다고 하냐? 간부 자리가 권력을 휘두르는 자리 나 자신을 과시하는 자리가 아니다. 모범을 보여도 부족할 판에 보란 듯이 교칙을 어기며 학교 질서를 어지럽히는 녀석들이 학급을 이끈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설득을 해보지만 코만 씩씩 불고 앉아 있는 것이 여간 불만스러운 것이 아니다.

중학교 고학년이 되면 기존의 상식을 깨부수고 새로운 틀을 만들고 싶은 심리가 있다. 비록 그것이 안정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모험 혹은 도전을 해 보고 싶은 것이다. 기존의 질서에 자신을 맞추기보다 자신에게 현실 세계의 질서를 맞추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일 수도 있지만, 학교로서는 안정감과 질서를 흔드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이런 부작용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선거 과정이 중요하다. 리더는 권력자가 아닌 봉사자이며, 자신보다는 학생들의 입장에서 듣고, 보고, 사고하는 사람을 뽑기 위한 경험이나 토론 등의 절차가 필요하다. 또한 자격은 성적이 아니라 인간적인 자질이 더 중요하며 선택은 학급 구성원의 권리이지만, 일단 뽑고 나면 지도력을 믿고 지지해 주고, 따라야 할 의무가 있음도 강조해야 한다. 그러면 학생들은 임원 선거에 좀 더 진지하게 임한다.

며칠 전부터 민주주의에서 선거의 중요성과 대표자의 자세에 대해 학급 회의를 하고, 반장의 역할을 설문하는 등 나름의 절차를 밟았어도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마치 내가 반장에 나올 터이니 아무도 나서지 말라고 엄포라도 놓은 듯 일진 경아가 자진 출마를 하자 출마하거나 추천하는 아이들이 아무도 없었다.

수업이 끝나면 교실을 씨름판 같은 아수라장을 만들고, 부모님이 이혼해서 어려우니 학비를 감면해 달라고 당당하게 조르던 녀석이었다. 같은 처지의 희선이와 어울리면서 애써 어두운 그늘을 지우려 하는 것이 한편 기특하기도 했다. 그런데 녀석이 반장 자리를 꿈꾸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부반장과 대의원 모두 스스로 자원을 하는 데다 유세문까지 써와서 진지함을 보여주는 점이었다.

하기야 반장감이 좀 모자라면 반장 역할을 분산하면 그만이고, 말썽을 피우는 녀석이면 자리를 이용해 오히려 녀석을 변화시킬 좋은 계기로 만들 수도 있다.

그렇게 느긋하게 마음먹었는데도 무의식 저편에서는 자꾸 불안했다. 반장이 뽑힌 다음 시간에 경아는 시작종이 울렸는데 다른 반에서 떠들다가 벌을 받고 있거나, 교실에서 레슬링을 하다가 들켜 혼나면서도 실실거리며 웃었던 대책 없는 녀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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