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이 되고 싶은 진이
기계충 먹은 뒷머리빡 같은
유달산 자락 온금동 산비탈
대문 겸 방문을 열고
너의 토굴에 들어선다
문간에는
약도 끊은 폐병 삼촌이 팽개친 소주병
욕만 남은 아버지의 막걸리병이 나뒹군다
지린내 나는 부엌엔 이끼 낀 빨간 고무통
부스스 널브러 파란 수세미
보일러 통 옆 젖은 담배꽁초
술 안 사 온다고 부숴 버린 진이 방문 앞은
송곳 같은 유리 조각 날 세우는데
뻥 뚫린 창문에 술병 든 모델이 바람 그네를 탄다
엄마가 버리고 간 세 살 적부터
아버지가 진이를 키웠는지
진이가 아버지를 보살폈는지 분간이 없다.
구레나룻 털 속에 한때 날렵했을 콧날과
광채 나는 눈매를 숨긴 아버지는
일하는 날보다 술에 절은 날이 많고
그런 날은 으레 진이를 두들긴다.
견디다 견디다 세상 밖으로 뛰쳐나간 진이
친구를 만나 가족을 느끼고
아저씨를 만나 아버지를 느끼고
총각을 만나 오빠를 느끼고
그렇게 외로움을 견디고 사는 진이야
세상에 희망을 싹 틔울 온기 하나 없는
너의 말라빠진 현실 앞에서
모델 네 꿈이 이루어질 거라는 내 말은
너무나 공허하구나.
오늘도 고개 돌린 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