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꽃에 우리를 비춰보는 순간
*이 글은 저자가 참여한 전시의 서문을 직접 사용한 글입니다.
꽃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의미를 전달해 준다. 하얀 백합이 가져다주는 순결의 의미, 하얀 국화로부터 느끼는 이별의 슬픔, 붉은 장미가 주는 열정과 사랑과 같이 꽃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의미를 말이 아닌 시각적인 이미지로 대신 전달해 준다.
여러 의미를 가진 꽃을 통해서 말이 아닌 시각적인 은유로 우리의 뜻을 상대방에게 전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말로 직접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꽃이라는 자칫 의미가 혼동될 수도 있는 대상을 통해서 이야기를 전달하는가. 그것은 바로 이미지를 통한 의미전달이 지닌 빈 공간 때문이다. 우리는 꽃을 받을 때 상대방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만을 인식하지 않는다. 꽃을 받으면서 느끼는 스스로의 감정, 상대방의 의도에 대한 예상이 함께 섞인다.
결과적으로 꽃은 두 명이 서로 다른 이야기로서 받아들이는 존재로 변화한다. 두 명의 의도와 꽃 자체가 지닌 의미가 함께 섞이며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한다. 결국 꽃은 선물한 당사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선물 받는 사람에게 다가온다. 그러나 이런 의미의 변화는 전혀 부정적으로 볼 수 없다. 꽃의 의미 변화는 곧 받는 이가 꽃을 스스로의 것으로 만들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꽃이나 식물을 선물 받을 때 일방적인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 서로 꽃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의미를 더하는 양방향의 대화로 이어진다.
이런 양방향의 소통 과정은 유미연 작가의 작품을 바라보는 과정에서도 진행된다. 유미연 작가는 스스로의 이야기를 작품에 담고는 한다. 특히 꽃, 그중에서도 연꽃의 경우 스스로의 이름에 들어가는 연꽃의 한자를 작품이라는 형태로 드러낸 것이다. 따라서 작가는 작품을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작가의 정체성이 드러난 작품을 감상하는 과정은 마치 꽃을 선물 받는 과정과 동일하게 진행된다. 우리는 작가의 꽃을 통해서 작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과 동시에 작품으로 변한 꽃에 스스로를 투영한다. 단순히 작품을 통해 작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스스로의 기억을 작품 속으로 넣어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