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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철호 Jun 15. 2016

아침 호수

가족 몰래 새벽을 여는 어머니의 발걸음  


아침 호수

     


가족 몰래 새벽을 여는 

어머니의 발걸음처럼

아침이 뒤꿈치를 들고 

어둠의 쪽문을 연다

     

계곡마다 자갈 씻는 소리

쌀뜨물 같은 안개가 호수를 덮고

어제의 노을을 담은 하늘이

오늘의 불씨를 밝힌다

     

부지런한 억새 부채질에

밤의 뚜껑이 걷히고

막 뜸이 든 흰쌀밥 위로

서리태 같은 

물새들이 점점이 박혀있다



 

내가 살았던 습지는 수도 없이 물안개가 자주 찾아오는 곳이었다. 그 안개는 잠을 덜 깬 호수와 주변 습지를 포근한 이불로 감싸고, 아직 더 자도 된다고 토닥이는 어머니의 손길처럼 나의 마음을 편하게 했다. 

지친 몸으로 고향에 돌아가 모처럼 늦게까지 마음 놓고 늦잠이라도 자고 싶은 날이면, 나는 아침 호수를 보려고 새벽에 일어나곤 했다. 어둠이 안개에 스며들어 밤의 기운이 다하고 뜸이 드는 시간만큼 시나브로 잠에서 깨면, 코끝에 다가오는 안개의 달콤함이 아침을 준비한 어머니의 사랑처럼 다가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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