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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업무 매뉴얼 만들기>에 관하여

일 잘하기 위한 일과 삶의 균형점 찾기

by 이철재

일 잘하기 위한 일과 삶의 균형점 찾기. 다섯 번째 이야기는 <업무 매뉴얼 만들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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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전자제품을 사면, 제품 사용 설명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어폰같이 간단한 제품은 사용 설명도 간단하여 읽어볼 필요가 없기도 하지만, 스마트폰이나, 오디오, 자동차를 사면 사용 설명서의 내용도 많아지고, 사용에 앞서 설명서를 꼼꼼하게 읽어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직장에서 일을 할 때는 어떨까요? 회사 시스템을 사용하거나, 출근해서 사무실이나 매장을 청소하는 것은 어떨까요? 매번 하는 일이라 특별한 지침이 없어도 일을 하는데 특별히 고민하지는 않겠죠.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일을 처음 시작할 때로 돌아가 보면 어떨까요? 매장 청소를 할 때도, 먼저 창문을 열어 환기하고, 휴지통을 비우고, 바닥을 쓸고 닦고, 테이블과 의자를 닦는 순서와 방법을 누군가로부터 배우지 않았나요? 혹은 선배로부터 아침에 해야 할 일들을 지시받거나, 전산 사용법을 배우지는 않았나요?


업무를 하는 데 있어, 누군가에게 배우거나 가르치는 일을 떠나, 과연 그 ‘업무’에 관해 어떻게 정의하거나 설명할 수 있을까요? 새로운 일을 배울 때면 저는 그 일을 체계적으로 배울지를 생각하는데요. 특히 업무를 배울 때, 정확하게 배우려고 노력합니다. 그럴 때 사용하는 저의 방식이 업무 매뉴얼을 만드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다이어리나 노트에 적어 가며 업무를 배우고, 어떤 이는 기억에 의존하고, 많이 해보면서 자연스럽게 익히기도 합니다. 저는 기억력을 신뢰하지 않고, 메모도 불확실성이 높다고 생각하기에 화면 캡처처럼 정확한 이미지와 타이핑한 기록을 신뢰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늘 새로운 일을 배울 때면(대부분 노트북 등 컴퓨터 화면에서 제공하는) 엑셀로 화면 캡처와 필요한 메모를 입력해 놓는 습관이 있습니다.


2019년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 서점 지원사업’에서 ‘거점문학서점’에 선정되어 e나라도움 시스템을 처음 사용할 때였습니다. e나라도움 시스템은 기획재정부에서 만들었는데, 일정한 규모 이상의 다양한 지원사업에서 사용하는 시스템입니다.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시스템이라, 다소 복잡한 시스템입니다. 그러나 작은 서점 지원사업에서 사용하는 시스템은 아주 복잡한 것은 아니지만, 가상계좌, 전자세금계산서나, 신용/체크카드에 연결된 시스템 사용은 처음 해보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어려울 수 있습니다. 특히 작은 서점은 회계나 시스템 전담자가 없으면 책방지기나 대표자가 이를 사용해야 합니다.


저 또한 일인 책방지기로서 지원사업에 관한 것은 모두 직접 해야 하므로 ‘e나라도움’ 시스템을 빠르게 사용법을 익히려고 노력했습니다. 7개월간 매월 상주 작가의 월급, 4대 보험, 원천세를 비롯한 작은 서점 2곳의 대관료와 파견 작가의 사례비를 지급하면서, 원천세와 견적서 등 다양한 증빙자료를 시스템에서 연계 및 첨부해야 했습니다. 주관사에서는 나와 같이 선정된 거점문학서점 담당자에게 e나라도움 사용 교육을 하고, 매뉴얼을 제공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원사업에 바로 선정된 것이 아니라 추가 선정되어 사용 교육을 받지 못했는데요(기존 선정 책방 중 한 곳이 사업 포기를 하면서, 내가 추가됨). 제공받은 ‘e나라도움 세부 매뉴얼’은 전체 시스템에 관한 사용법으로 300페이지 이상의 많은 분량으로 인해 배우기가 어려웠습니다. 작은 서점 지원사업에서 필요한 매뉴얼은 중요사항만 요약되어 있는데, 실제 화면을 따라가면서 사용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첫 달에 e나라도움 시스템을 사용하면서 화면 하나하나를 캡처한 나만의 사용 매뉴얼을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지원사업에서 상주 작가에게 4대 보험과 원천세를 제외한 임금을 지급할 때, 열어야 할 화면과 클릭할 버튼 위치를 화면 캡처 이미지에서 위치와 표시하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첨부할 서식 파일(급여대장, 4대 보험 납부 확인서 등)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사실 시스템은 반복해서 사용하면 익숙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어쩌다 한 번 사용하는 사업에서 시스템을 처음부터 제대로 사용하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익숙하지 않은 시스템을 사용하거나, 기억에 의존해 사용하다 보면 실수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첫 달에 힘들게 배워서 시스템을 사용했는데, 다음 달에 머리가 리셋되어 다시 생각나지 않거나, 혹은 아는 것 같아서 쉽게 생각하다가 실수라도 하면, 실수를 바로잡는 데 몇 배의 노력이 들기도 합니다.

저는 첫 달에 e나라도움 정산을 진행하면서 화면 캡처를 활용한 나만의 매뉴얼 세세한 클릭 위치와 첨부할 내용을 메모하는 방식으로 매뉴얼을 만들었습니다. 클릭을 한 번 할 때마다 화면 바뀌는 것을 기록하고, 잘 모르면 담당자나 e나라도움 상담실에 전화해서 확인 후 다듬었습니다. 첫 달에 7~8시간 걸려서 초안 매뉴얼을 만들고, 두 번째 달에 보완하는 데 2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이후 세 번째 달부터는 30분에서 한 시간이면 e나라도움으로 6~7개 절차, 약 10건의 시스템 사용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견적서 및 서류 작성과 4대 보험 납부 등은 준비 단계에서 했습니다).


2021년에도 거점문학서점에 재차 선정되었는데, e나라도움 사용은 이미 만든 매뉴얼로 인해 사용에 전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서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e나라도움으로 정산할 때마다 너무 힘들어하거나, 오류 사용이나, 누락된 된 사용으로 인해 사업을 종료할 때 이를 몇 개월에 걸려 보완한 곳도 있었습니다.


05-02.jpg <작은 서점 지원사업에서 사용한 예산 테이블>
05-03.jpg <작은 서점 지원사업에서 사용한 e나라도움 나만의 매뉴얼 예>




회사나 사업에서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업무를 할 때면 ‘해야 할 일’과 ‘일하는 방법’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어느 정도 규모가 큰 회사는 ‘직무전결규정’과 ‘업무분장’이라는 것을 만들어 관리합니다. 직무전결규정에서는 팀, 부서에서 하는 업무에 관한 권한을 정의하고, 승인권자를 정하는 것입니다. 업무분장은 팀, 부서에서 하는 업무의 담당자를 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직무전결과 업무분장은 세부적인 업무 방법을 담지는 않습니다. 일을 하는 방법에 관한 세부적인 내용은 과업 지시서 혹은 담당자가 만들어 놓은 업무 매뉴얼이 있지만, 이를 회사에서 전체적으로 관리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이는 부문, 팀, 부서마다 다르기도 한데요. 과업 지시서가 잘 갖춰진 곳은 비교적 업무 지시가 명확한 곳도 있지만 이는 부문마다 차이가 있죠. 생산 부서는 과업 지시가 명확하지만, 영업이나 관리 부문에서는 시장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업무를 명확히 정의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갖추고 있는 곳은 드뭅니다.


회사에서 신입사원이 업무를 맡거나, 기존 직원도 팀, 부서를 이동하게 되면 새로운 업무를 배우게 되죠. 이때 어떻게 새로운 업무를 배우나요? 사무직에서 ‘파일’만 넘겨주는 경우가 많지 않나요? 제가 영업사원일 때는 업무 인수인계는 주먹구구식인 예가 많았습니다. 전임자와 거래처에 가서 저를 소개만 하고, 회사 시스템 있는 매출채권 현황을 프린트하여 간단하게 메모를 보태는 것으로 끝내곤 했습니다. 팀을 옮길 때 혹은 팀 내 다른 직원이 그만둘 때는 업무 인수인계가 그저 컴퓨터에 있는 파일을 넘겨주는 것으로 그치기도 했습니다. 그나마 전임자가 관리하는 폴더를 분류하고 정리해 주면 감사할 정도였죠.


담당 거래처에 관한 정보는 사내 시스템을 통해 매출, 채권 등을 자세하게 알 수 있었고, 수치를 보면서 월별 매출 분석은 할 수 있지만 거래처 정보와 특이 사항, 이전에 관리하며 약속한 사항들도 있을 것인데, 그런 이야기는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로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담당 거래처의 관리 카드를 엑셀로 만들었습니다. 하나의 엑셀 시트에 거래처의 기본 정보, 대표자, 직원 수, 요약 매출채권 정보, 시설 현황, 거래처 특이 사항 그리고 방문할 때 전달한 내용이나, 요구 사항 등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1~2개월 방문하면서 거래처별로 작성한 엑셀 시트에는 그 거래처에 관한 내용이 차곡차곡 쌓여갔습니다. 엑셀은 페이지에 상관없이 작성할 수 있지만, 다음 사람을 위해 페이지별로 인쇄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컴퓨터에 저장된 관련 자료는 거래처별 혹은 주요 프로젝트별로 폴더 이름을 부여하여 정리하고, 이를 인수인계할 때 폴더 분류된 파일을 요약해서 전달했습니다.


여러분이 새로운 업무를 맡을 때 어떻게 하나요? 비교적 큰 회사에서 입사하면 일정 기간 회사에 관한 종합적인 교육을 받습니다. 교육을 수료하고 나면 팀에 배정받아서 팀 업무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대체로 신입 사원은 한동안 특정 업무를 맡지 않고, 여러 선배 업무를 보조하면서 일을 배우기도 하고, 혹은 간단한 업무를 담당하다가 차츰 업무량을 늘리기도 합니다. 작은 규모 회사라면 신입 사원이 바로 업무를 담당하기도 합니다.

요즘은 대기업에서도 인력에 여유가 없기 때문에 예전처럼 사수-부사수 식의 도제식 인력 관리는 드물어지고 있습니다. 신입사원도 자신의 업무를 바로 맡으면서 일을 배워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일을 빨리 배워서 담당 업무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신입 사원 교육 과정에 있어 번듯한 업무 매뉴얼을 갖고 있지 않는 예도 많습니다. 회사의 부서, 팀마다 업무분장이나 직무전결규정이 있어서 전체적인 업무 범위는 정의하고 있지만, 실제로 업무를 실행하는 담당자의 입장에서는 참고할 만한 업무 매뉴얼이 제대로 갖추어진 예가 많지 않습니다.


제 회사 시절, 회사에서는 근간이 되는 시스템에 ERP를 도입했습니다. 시스템을 개발하고, 회사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이를 먼저 사용해서 테스트하는 TF(태스크포스)팀에 차출되었을 때입니다.

테스트 과정에서 주문하고, 재고를 확인하고, 배송 과정 진행을 확인하고, 매출/채권 반영 등을 점검하고 그런 과정을 실제 담당자들이 사용할 매뉴얼을 만드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매뉴얼은 화면을 캡처해서 파워포인트에 붙여 넣고, 텍스트와 화살표 등을 활용해서 설명하는 방식으로 만들었습니다. 나중에 이를 PDF 파일로 만들어서 직원들에게 배포하고, 회사 전산 시스템 교육자료로 등록했습니다.


전산시스템을 매뉴얼로 만드는 것은 비교적 명확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무 업무에서 매뉴얼은 어떨까요? 저는 ERP 사용매뉴얼을 만든 경험을 살려서 제가 하는 업무를 모두 엑셀 매뉴얼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PPT로 만들면 한 페이지 안에서 설명하고, 순차적으로 만들어야 하지만, 엑셀로 만들면 시트별로 만들 수 있고, 각 시트에서 페이지 폭에 상관없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확장해서 만들 수도 있고, 페이지 단위로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엑셀’을 무척이나 잘 사용하는 사람이라 엑셀로 만드는 것이 가장 편리했기 때문입니다.


회사 시절 엑셀로 매뉴얼 만들기 습관은 책방 창업과 운영에도 이어졌습니다. 책방 오픈을 준비하면서 필요한 일들을 엑셀로 정리하고, 예상 매출을 시뮬레이션해 보고, 필요한 물품이나 절차를 모두 엑셀에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정리한 매뉴얼은 저의 첫 책 <책방 운영을 중심으로 1인 가게 운영의 모든 것>(2019년)을 만드는데 기본 자료가 되기도 했습니다. 2022년에는 개정판으로 나온 <동네책방 운영의 모든 것>을 만드는 것에도 도움이 됐고, 2025년 1월에 출간한 <지원사업에서 알아야 할 모든 지식>이란 책에도 기초 자료가 됐습니다.

앞으로도 <독립 출판으로 배우는 1인 출판 과정> <회사 일 잘하기 위한 엑셀 에세이> 등의 책을 만드는 데에도 저의 업무/일 엑셀로 작성한 매뉴얼과 자료가 도움이 될 것입니다.


05-05.jpg <출간책 : 1인 가게 운영의 모든 것, 동네책방 운영의 모든 것, 지원사업에사 얼아야 할 모든 지식>


저에게는 어떤 일을 하든지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정의하고, 이를 어떻게 할지를 정리하는 것이 저의 매뉴얼입니다. 특히 새로운 일을 해야 할 때, 혹은 배워야 할 일이 생길 때, 그 일이 한 번이 아닌 반복할 일이라면 꼭 매뉴얼로 만들려고 합니다. 회사 시절에는 전임자에게 업무를 배울 때 한 번 배우고 나면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도 기록을 남기려 노력했습니다. 기억에 의존하는 것은 잊거나, 편향될 가능성이 크고, 메모도 다시 볼 때 제대로 생각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꼭 업무 방법을 화면 캡처와 메모로 남기려 노력합니다. 매뉴얼로 만들어 일을 체계화하면 업무를 개선하는 데에도 인사이트를 줄 수 있습니다.


저에게 업무 매뉴얼을 만드는 것은 ‘내가 하고 있는 업무를 잘 정리하는 것’이기도 하고, ‘나의 후임자에게 업무를 잘 넘겨주기 위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자신이 하는 일을 정의하고, 분류하고, 매뉴얼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자신만의 업무 레시피는 자산이자 역량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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