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적 암기를 하던 나를 되돌아보다.
실질적인 영어구사능력을 갖추기 위한 말하기 훈련을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일단 똑같이 외워라’였다. 그래서 영화, 시트콤, 연설문 등등으로 학습하면서 항상 했던 것이 무조건 외우기였다. 지금 되돌아보면 가장 시간을 낭비하게 했던 큰 실수가 무작정 외우는 것이었다.
외우라고 하니까 외우기는 했는데 일단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빨리빨리 진도는 나가고 싶은데 생각만큼 잘 외워지지 않을 때마다 답답함도 느꼈다. 효율적으로 외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고 강사에게 질문도 해보고 공부 방법을 알려 주는 책도 여러 권을 뒤져 봤다. 하지만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냥 열심히 여러 번 읽고 따라하면서 외우라는 것이었다. 독한 놈이 이기는 것이라며.
과연 이렇게 무작정 외운다고 되는 것일까? 막연한 불안감은 항상 마음속에 남아 있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외우다 보면 양이 쌓이게 될 것이니 나중에는 무언가를 얻기는 하겠지... 라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가는 수밖에.
영화 한편의 대사를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를 시작했던 초기, 막연한 불안감은 어느 정도 없어지고 있었다. 계속 반복하면서 외웠던 대사들이 자동으로 튀어 나올 때면 잘하고 있다는 안도감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편안한 기분으로 연습과 훈련을 반복하던 내게 영어 멘토는 이런 말로 강한 태클을 걸어줬다.
앞부분은 이제 완전히 익힌 거 같네? 그러면 말이야... 대사 중간 중간에 혼자 상상하면서 적당한 말을 끼워 넣어서 말을 해 보고, 그 뒤에 이어지는 원래 대사를 계속 이어서 말 해볼래? 지금 연습하는 것처럼 줄줄 나오는지 같이 한번 테스트 해 보자고.
간단한 테스트만으로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기계적인 암기를 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때까지 진행하던 영화대사 연습방법의 문제점이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대사를 외우면서 나의 말로 만들어 가는 과정 속에서 의미를 완전히 체화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진도’ 그 자체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나의 언어로 만들어 지고 있는지는 생각도 안 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부하고 외웠던 긴 대사를 반복해서 연기하면서 뱉어보다가 누군가 말을 걸거나 중간에 말을 살짝만 바꿔도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곤 했다. 기계적 암기의 전형적인 결과였다.
나름 감정을 이입해서 실제 상황처럼 말해 보면서 외웠는데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기계적인 암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법은 무엇인가? 그 당시의 지식과 나 혼자만의 힘으론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도무지 해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알게 된 해법은 내가 그동안 일종의 신앙처럼 믿어왔고 대부분의 초보학습자 역시 당연한 것이라고 알고 있는 상식을 뒤엎어 버리는, 말 그대로 ‘엉뚱함과 발상의 전환’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