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무게를 버틸 수 있게 해준 건

by 민유

다시 내가 헬스를 하게 될 줄 몰랐다. 내가 내 돈을 내고 헬스를 등록하기까지 참 많은 고민을 했다. 분명 한 달도 못 채우고 나오게 될 텐데 또 헬스장의 기부천사가 될 것인가. 그래서 큰맘 먹고 PT를 끊어서 절대 나오지 못하게 내가 나를 그곳에 가두어두었다. 헬스에서 가장 큰 매력을 빠지게 된 것은 스쿼트였다. 처음에는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해 자기 전 허벅지를 붙잡으며 울곤 했었다. 바벨을 어깨에 이고 스쿼트를 할 때 원판 올리고 그 무게를 계속 올려서 하다보면 내 다리가 내 다리 같지 않고 답답해 미치는 순간이 올 때가 있다. 그런데 이 정도의 느낌은 충분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라는 걸 알았다. 정말 무겁고 힘들면 그런 느낌마저 느껴지지 않는다. 발이 붕 뜨면서 내 몸이 같이 뜨는 것 같아 원판 무게에 내 무게를 더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느낌이 바로 지금 내 마음과 같았다. 내 마음에는 수많은 덤벨과 원판들이 쌓여있다. 쌓이다 못해 하나씩 떨어지며 발에 찍히고, 어깨에 부딪히고 몸에 상처가 나기 시작했다. 겨우 버티고 있지만 점점 내 무게까지 실려 주저앉기 일보 직전까지 왔다. 일 년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공황장애의 무게가 내 무게 위에 실리고 있었다. 한 동안은 바람처럼 자연스럽게 지나갔었는데 이번에 태풍인지 좀처럼 지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고 나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어떻게 해서든 나 스스로 이겨 내보려고 애썼지만 그럴수록 더 나를 낭떠러지 끝으로 몰아세우고 있었다. 유난히 그날따라 헬스장에 사람이 많았던 날, 주차장에 차 세울 곳이 없는 걸 보고 난 후부터 패닉 상태가 오고 말았다. 티를 안 내려고 정신을 붙잡으려 노력했지만 결국 버틸 힘이 없었다. 내 스스로 한계에 부딪히니 도저히 나를 감당하기 힘들다 생각하여 몇 년 만에 다시 병원에 찾아갔다. 약을 다시 먹는 것이 두려웠고 스스로 이겨내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내 상태를 냉정하게 봤을 때 너무 위태로웠다. 진료실에 들어가자 휴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저 휴지를 내가 쓰는 일은 없겠지 싶었는데 결국 그 휴지를 뽑을 수밖에 없었다. 담담하게 이야기 잘 했던 내가 선생님이 노력을 많이 했다는 말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인지도 모른다. 난 내 노력에 대한 인정을 받고 싶었다. 그것이 일이든 병이든 운동이든 그게 뭐가 되었든 간에 내 노력에 대한 성과를 보답 받고 싶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정작 나조차 나를 인정을 하지 않았다. 선생님과 상담은 편하게 진행 되었다.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속을 다 꺼내가면서 하는 건 처음인 거 같다. 가장 무거운 덤벨 하나를 내려놓은 거 같았다.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감정과 상태를 말로 표현하는 것은 병을 낫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고 하셨다. 단, 들어줄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 말하라고 하셨다. 되돌아오는 말에 상처받지 말라면서 말이다. 그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이 내 담당 트레이너 선생님이었다. 내가 공황장애가 있어 좀 쉬어야겠다는 말에 침묵으로 옆에 있어주는 것으로 큰 위로를 주었고, 고민이 있으면 이야기 하라는 말로 나를 놀라게 했다. 어설픈 위로로 해주던 말들에 대한 상처로 더 입을 열지 않았던 내가 침묵이 이제까지 받은 위로 중 얼마나 큰 위로였는지 깨닫게 되었다. 항상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주기만 했었는데 언젠가 ‘내가 이렇게 고민을 잘 들어주는데 정작 내 고민은 누가 들어주지?’ 이런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정말 내 고민을 들어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물론 내 고민을 털어놓지는 않겠지만 의사 선생님께서 약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해질 거라는 그 말처럼 고민을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무거웠던 또 하나의 덤벨을 내려놓게 되어 이제는 내가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기 싫고, 짐이 되기 싫어 나에게 더 엄격하고 채찍질을 했었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는 기회를 줄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나에게는 의사 선생님처럼 트레이너 선생님이 마음으로 절실히 필요하다. 가장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의사 선생님과 의지할 수 있게 옆에서 나 혼자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해주는 트레이너 선생님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 어쩌면 익숙한 사람에게도 응원과 격려를 받기도 하지만 새로운 사람에게 새로운 힘을 얻기도 한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알리는 것 또한 용기가 필요하다.


동네에 어디든 지나가면 운동기구들이 곳곳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무심코 지나쳤던 그 기구들이 점점 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좋아지면 사람들이 하나 둘 기구마다 앉아 운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나도 다른 한 편에 앉아 운동을 해본다. 내가 흘린 땀과 눈물이 나의 힘든 마음도 같이 씻겨 내려가 줄 거라 믿는다. 선생님의 말씀처럼 나는 나약한 것이 아니라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날이 따뜻할 때도 있고, 비가 올 때도 있고, 눈이 내려 추울 때도 있으니 내 마음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니 오늘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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