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무척 더웠다.
땀이 맺힐 무더워는 아니었지만, 땀이 흐를 일이 잦았다.
지역 봉사회에서 마련한 체육대회와 예비군 날짜가 3일 텀으로 끼어버린 탓에 몸은 녹초가 되어 흐물거렸다.
어린이날만 생각해보면 사람들에게 질러버려 그냥 집에 있었던 생각뿐이다.
10년쯤 전에는 이날만 기다린 내가 있었지만, 전국의 그 아이들과 손잡고 나올 부모님들의 고초를 생각해봄직한 나이가 되어보니 나라도 교통과 길거리의 혼잡함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에 휴일의 거의 대부분을 집에서 지냈다.
그렇게 텅 빈 집안에서 혼자 맥주를 홀짝이며 옛날 생각을 했다.
노티 나고 늙은 생각이었는데 옛날 나에게 어린이날은 그냥 학교가 쉬는 날 뿐이었다.
어디 유원지를 가고 놀이동산에 간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만큼 시골에 살았던 나에게 있어서 그저 하나의 빨간 날이 불과했다.
점심 이후 만날 수 있었던 친구들과 아침일찍부터 만날 수 있는 엄청난 날 중 하나였다.
어머니가 쥐어주신 천 원짜리 몇 장으로 핫도그 하나 물어뜯으며 골목을 활보하던 우리였다.
무어가 그리 즐거운지 흙먼지 마셔가며 우린 뛰어놀았다.
원래 사람은 현재보단 과거의 추억이 더 아름답게 보이고 그리워한다.
다신 오지 않을 시절이기에 더 간절할지도 모른다.
머릿속에 돌아가는 영사기 속의 친구들은 어렸고 그걸 보고 있는 나는 훌쩍 자랐다.
다 커서 징그러운 불알친구 놈들이 아닌 그때의 싱그럽고 순수했던 우리들이 보고 싶었다.
오랜만에 전화나 해볼까 하는 마음에 전화기를 들어봐도 들려오는 건 구수한 욕뿐인지라 그럼 그렇지 하고 다시 맥주를 홀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