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밥은 먹고 다니냐?

by Dkay

나는 대한민국의 이태리라고 불리는 전라도 출신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할머니는 하남 공단에서 반찬을 배달하는 식당을 했다. 부모님은 고향 광주에서 18년째 <황토길>이라는 식당을 하고 있다. 이 말인즉, 핏줄은 숨길 수 없다고 나는 요리 솜씨가 좋다.

솜씨가 좋다를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몇 가지 증거를 들어보자면,

첫 번째, 음식을 할 때 두려움이 없다. 두 번째, 레시피로 재료는 확인하지만, 중량을 굳이 보지 않는다. 세 번째, 간을 볼 줄 안다. 네 번째, 재료 손질법을 알고 있다. 마지막, 밥물을 기막히게 맞춘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게다가 지금 다니는 회사는 주 5일 중 3일을 상하 관계없이 조직원들이 직접 해 먹는 특이한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내 요리실력이 거의 주방장 보조 급으로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단점으로는 원래도 손이 컸는데 지금은…)

처음 밥을 하는 방법을 배운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엄마가 집을 나가겠다고 결심한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다. 엄마는 내게 쌀을 흘리지 않고 씻는 법, 물양을 조절하는 법뿐만 아니라 할머니에게 욕먹지 않는 법(?)까지 알려주고 외갓집으로 떠났다. 다행히 엄마는 이틀 만에 돌아왔다.

그 이후에도 식당일을 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들 저녁 식사는 4남매 중 1)왕 큰딸인 나의 차지였는데 동생님들 입맛에 맞춰서 김치볶음밥이며, 떡볶이며 요리라고 하고 대충 때려 넣는 것들을 해드렸더랬다. 동생들과 식사 중 웃긴 일화로는 나이차가 띠동갑인 남동생이 어렸을 때 유부초밥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과한 마음으로 밥양 조절에 실패했다. 기존의 유부초밥에 비해 밥이 2.5배가량 많은, 옆구리가 터지다 못해 사라진 유부초밥을 만들게 되었다. 남동생은 식탁에 차려진 밥 유부(?)를 보더니 “이게 유부초밥이야?”하고 한 마디 외치며 서럽게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상헌아… 누나가 그때 미안했어… 누나 마음 알지?’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2)감사정으로 집을 이사한 2018년부터는 연말이나 널뛰기 공휴일에 타향살이하는 친한 친구들을 모아 요리실력 발휘해 밥을 해 먹이는 < 독거 청년에게 따뜻한 한끼를… > 같은 웃지 못할 일도 하고는 한다. 물론 이런 준비된(?) 환경 속에서도 처음부터 밥을 잘 해 먹는 건 아니었다.

서울에 오고 한 1년간은 배달음식 먹는 행복에 젖어 살았었다. 점심을 배달음식 먹고 저녁을 배달음식으로 마무리하는 그런 돼지런한 나날들. 룸메와 함께 배달 맛집 찾고 리뷰 쓰는 재미도 쏠쏠했다. 특별한 날이면 친구들을 초대해서 거하게 배달시켜놓고 먹기도 했었다. 룸메가 캐나다로 떠나고 셋째 동생이 올라와서 살기 시작한 후에도 저녁으로 축소된 배달 생활을 착실하게 유지했다. 딱 서울살이 2년을 그렇게 살다가 결국 몸이 탈이 났다.

‘뚱뚱한 게 아니고 건장한 거다.’ 하며 건강 하나는 자부했던 내 몸은 먼지와 고양이에 노출되면 거친 기침을 하는 서울살이에 아주 부적합하고 3)불쌍한 인간이 되어버렸다.

아파서 누워있으니 제일 먼저 하는 걱정은 끼니 걱정이었다. 가장 떠올랐던 음식은 할머니가 해주는 아무 생선에 감자 4)죽대나 고구마 죽대 또는 죽순을 고춧가루에 지진 생선지짐었다. 생선 지짐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생선이 메인이 아닌 오히려 그 아래 깔린 무, 죽순, 감자 죽대를 빛내기 위해 조연이 되는 메뉴 ‘그것만 있으면 쌀밥 세 그릇은 뚝딱인데’ 하며 입맛을 다시고는 했다.

고향 집에 살 땐 ‘진짜 여긴 지짐 못 먹어 죽은 귀신이 붙었나?’ 할 정도로 늘 있는 반찬이라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그게 그렇게 먹고 싶은 거다. (심지어 이건 파는 데도 없어!) 지짐 뿐만 아니라 단무지에 고춧가루 뿌려서 만든 아삭하고 달콤하고 혼자 다 하는 5)다꽝무침에다가 푹 삶아 들깻가루 6)양신 뿌려 만든 범오님표 3종 나물! 고사리, 토란대, 죽순 삼총사, 마지막으로는 푹~익은 김치 씻어서 참기름이랑 깨, 다진 마늘 넣고 조물조물 만든 묵은지도 얼마나 먹고 싶던지 몸이 다 흔들리는 기침에 이렇게 사는 게 사는 건가 하면서 울기도 했다. ( 네가 좋다고 배달 음식 먹었잖아… )

한 번 앓고 난 후로는 ‘내 몸은 내가 지키자’하며 자신을 잘 챙겨 먹이려고 한다. 메뉴도 고민하고 재료도 직접 장 봐온 것들로 차려진 밥상. 40분 동안 차려서 10분 만에 먹어버리는 투자 대비 효율이 많이 떨어지지만 야무지게 과일까지 먹고 나면 한 끼를 때우는 게 아닌 밥 먹었다는 포만감이 몸 안에 가득해진다. 물론 2년간 몸에 밴 습관이 머리를 쳐들어 배고프면 배달 앱으로 동네 가게부터 쓱 훑게 되지만 뭐가 더 나에게 나은 선택인지는 지금의 나는 잘 알고 있다.

끝으로 아무리 내가 음식을 잘한다고 해도 할머니가 해주는, 엄마가 해주는 맛은 모양도 낼 수 없다. 내리 사랑은 솜씨가 아니라 이미 그 안에 우러나 있는 것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각주

4남매 중 맏이라는 역할뿐만 아니라, 실제 부피 면적도 왕 크기 때문에 부모님 한정으로 왕 큰딸로 불리고 있다.


배에 이름을 붙이면 사고 없이 운행한다는 이야기를 영화에서 주워듣고 서울 생활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항해하기 위해 붙인 서대문구 가재울로6길 36, 102호의 이름.


고향 집에는 내가 살 때 키우던 강아지 한 마리 외 그 강아지가 낳은 자식 한 마리와 2018년 비 오는 날 길에서 죽어 가던 것을 엄마가 데려와 자연스럽게 얹혀사는 고양이 두 마리가 있다. 고향에 갈 때마다 고양이 알레르기 때문에 우리 집에 있지 못하고 할머니 집으로 피신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 집을 집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구황작물의 줄기를 할머니가 부르는 말. 사투리로 추정.


단무지의 일본말. 시기적으로 좋지 않지만, 고향의 정취를 위해 사용했다. 양해 오네가이시마스-


전라도에서 사용되는 사투리로 [양껏]의 의미로 쓰인다. 네이버 어학 사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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