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근사한 그릇

by Dkay

그릇을 본다. 모노톤의 주방 기구 사이에서 혼자만 레드와 그린이 엮인 체크무늬에 모양도

비틀려 있다. 오므라들었다고 해야 하나, 휘었다고 해야 하나 타원에 가까운 입구와 자기주

장이 강한 큼직한 굽까지 일반적인 형태는 아니다.

이 특별한 형태의 도자기는 가족보다 가족 같은 친구 채린이의 이사를 기념하기 위해 직접

만들어 선물했다. 익숙하지 않은 석고틀로 작업해서인지 초벌 후 형태가 뒤틀려 나와 굉장

히 난감했다. 집들이와 가마 일정 등을 고려 했을 때 다시 만드는 건 불가능했고, 대체할 그

릇도 없었다. 혹시 펴질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재벌 가마에 들어간 그릇은 놀랍게도, 완

벽하게 틀어져 나왔다. 쓸 수는 있었지만 보기 좋은 모양은 아니었다.

선물을 받은 채린이는 그릇을 보더니 가볍게 즐거워했다. 사족을 덧붙이는 내 말은 듣지도

않고 바로 그릇을 헹구고 어묵국을 담았다.

잘 차려진 식탁 위의 그릇을 보니 형태가 더 뒤틀려 보였다. 상당히 민망했다. 3년 가까이

공방을 다녔으니 남들한테 자랑할 만한 보기 좋은 작품을 선물하고 싶었다.

식사하면서도 나의 온 신경은 그릇이었다. 물이 부족했느니, 물레로 만들 걸 그랬다느니 계

속해서 덧붙였다. 뱉어낼수록 채린이의 눈은 물음표가 되고 있었다.

“엥? 이거 완전 너답고 귀여운 디? 됐고, 밥이나 먹어.”

선물하고 나쁜 점만 말한 것 같아 순간 아차 했다. 그리곤 의아해졌다.

‘얘는 이게 별로 안 이상한가?’

살을 좀 빼서 몸이 가벼웠던 2021년 7월, 분명 빼는 중이었는데 나는 당장이라도 날씬해지

길 바라며 조급했다. 당연히 여전한 목덜미가 그날의 타깃이었다.

“여기 봐봐. 꼴 보기 싫냐?”

“야. 누가 너 뒷목을 볼 수 있는데. 대부분 사람은 안 보일 걸?” (나는 키도 172cm로 큰

편이다)

물어놓고 듣지도 않으며 거울로 목덜미를 보려고 들썩거렸다.

“진짜 싫다...살 언제 다 빠지는데...이 옷 너무 목이 보이지?”

계속되는 질문에 채린이는 결국 한숨을 한번 쉬더니 핸드폰에서 눈을 떼고 말했다.

“도경아, 나는 너랑 너무 오래돼서 너가 목에 살이 어쨌다느니 하는 게 무슨 말인지 모르

겠어. 살에 대해 한 번도 의식해 본 적이 없어. 나한테 넌 그냥 너야.”

대답이 됐냐는 듯 고개를 까닥거린 그녀는 다시 핸드폰으로 눈을 돌렸다.

‘넌 그냥 너야.’

‘맞아. 난 나지. 참내! 너보다 내가 나랑 더 오래됐거든? 넌 이런 내가 안 이상하니? 어떻

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대꾸하려다 다 잊은 사람처럼 멍해졌다.

‘아. 너한텐 이 모습이 그냥 나구나. 싫을 게 없는 거구나. 그래서 넌 너라고 말할 수 있구

나.’

물 묻은 손에 엉긴 흙이 조금씩 풀리듯, 불 꺼진 방안에 딸깍하고 빛이 든다.

‘내가 뚱뚱한 게 나쁘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평생 내가 이상하고, 미웠던 거야.’

친구의 입을 통해 자신에게 해야 할 말을 듣는다. 매일 거울 앞에서 되뇌던 질문이 그녀의

한마디에 가벼워진다. 꼬여 있던 자신을 본다. 쓸모와 외향에 대한 고민이 가벼워지고, 자책

이 우스꽝스러워진다. 나를 설명하고, 납득시키지 않아도 이미 나라는 사람으로 받아들여 주

는 네가 있어 지금의 나도 충분하게 느껴진다.

2024년 11월, 오랜만에 채린이 집에 왔다. 맛깔스럽게 차려진 반찬과 채린이 표 콩불이 테이

블에 놓여 있다. 오늘도 내가 만든 그릇엔 어묵국이 담겼다.

그릇을 본다. 여전히 모양은 틀어졌다. 그래도, 이제는 이 모양이 특별해 보인다.

나와 채린이의 관계 같아서 뭉클한 기분까지 든다. 처음 시도한 방법으로 만들어 나에게는

미완성이었지만 그녀에게는 그저 재밌는 선물이었던 이 그릇이 나처럼 느껴진다.

바라보기에 따라 달렸다. 마음 두기에 따라 달렸다.

이 그릇도, 나도 분명 충분히 근사한 그릇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우리의 보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