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보통

by Dkay

오후 12시 57분, 넓은 회의실은 삼삼오오 모여 나누는 대화를 시작으로 식사 준비 소리가 맛있게 소란하다. 나무 테이블 위로는 수저와 함께 팀원들의 일상이 오간다. 몇몇은 도시락, 몇몇은 배달 음식으로 빈 속과 소셜 에너지를 채우며 (누군가는 에너지를 쓰고 있었겠지만) CFO님이 주간 회의에서 추천한 영화 후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도경님은 최근 재밌게 본 영화 있으세요?”

“영화? 잘 안 보긴 하는데, <괴물> 좋았어요”

“아 한강? 봉준호?”

“뭐요?? 아니~ 그 일본 감독이 만든 영화 있잖아요.”

“아~ 그! 애들 나오는 영화”

“네 그 영화요. 저기요. 저도 최근 영화 보기는 하거든요?”

팀원들이 와하하 웃었다. 그 후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영화 스토리와 CFO님의 영화 추천 이유, 영화의 메시지로 알아본 그의 중압감 같은 대화 소스가 우리의 입에 담기고 소화됐다.

1년에 영화를 몇 편 안보는 나조차도 직접 찾아보게 만든 고레에다 히로카츠 감독의 <괴물>은 관객마다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맛이 풍부한 작품이다.
자극적인 맛이 익숙한 나는 영화가 차려낸 이야기를 전부 이해하지는 못했다. 다만, 중반부터 시작된 ‘우리는 서로의 찰나를 본다’라는 깨달음을 한동안 되뇌었다. 그 깨달음은 머리에서부터 가슴까지 잔잔하게 흘러 가장 깊은 곳에 닿았다.

그 곳엔 가깝지만 낯설고, 오래됐지만 불편한 나의 가족이 있다.

우리는 일반적인 가족은 아니다. 우선 구성원 숫자부터 그렇다. 부모님부터 형제를 더하면 6명이 된다. 승합차가 아니면 한 차로 움직일 수 없다.

두 번째 대화가 많지 않다. 친구 생일 에는 척척 쓰는 편지도 동생들 생일에는 한참이 걸린다. 원하는 선물도 모르겠다. 그냥 돈을 보낸다.

마지막으로 1년에 다같이 모여하는 식사가 다섯 번이 채 되지 않는다. 덕분에 몇 달이 지나 마주 보는 얼굴이 낯설다. 근육이 빠져 얇아진 아빠의 허벅지, 뿌리부터 흰머리가 난 엄마의 정수리, 둥글게 색칠해진 동생의 손톱까지 바깥으로 뱉은 적은 없지만, 내 앞에 앉은 가족들을 보며 종종 ‘내가 보는 이 사람이 정말 이 사람일까’ 생각했다.

가장 찰나를 보는 사이. 내가 우리 가족의 찰나에 집착하기 시작한 건 자신을 직접 대면하기 시작한 2017년이었다. 다니고 싶던 회사에 입사했고, 일상을 잘 꾸려가고 싶었던 사회 초년생이었다.

‘집이 화목한 사람들이 건강하게 사는구나.’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일부를 보고 화목한 가정이 저 사람을 만들었다는 이상한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여태까지 화목하지 못했으니 지금부터라도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상경하여 독거 청년 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나의 귀향 일정에 맞춰 다 같이 식사를 했기 때문에 나는 이 기회를 잘 활용해보려고 했다.

잘 될 리가 없었다. 엄마와 아빠는 서로가 자리에 없으면 못 마땅하기 바빴다. 서로에 대해 아는 게 얼마 없으니 이야기는 겉돌았다.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아빠에게는 동생 말을, 동생에게는 아빠의 말을 부드럽게 만들고자 정신없었다. 해석을 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혼자 분주했다.

더 나가서 내 일상과 성과를 부풀리고, 포장했다. 그렇게 해야 내 일상, 아니 내가 좀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러길 몇 년, 광주에 다녀오면 꼭 몸과 마음이 아팠다. 올라오는 용산행 KTX는 자꾸 훌쩍이는 사연 있는 여자가 등장했고, 돌아온 며칠은 사회적으로 거리를 두어야 또 다음날들을 살 수 있었다. 점점 고향에 내려가기를 불편해 하기 시작했다. 공공연하게 광주에 가면 힘들다고, 기운이 맞지 않는다고 떠들었다.

2024년 8월, 여느 때와 같이 기차역으로 데리러 온 엄마와 동생 이야기를 하다가 별안간 울컥해 말했다.
“정말 답답해 미치겠어. 남들처럼 살 수는 없는 거야?”

엄마는 얘가 왜 이래라는 표정으로 나를 살짝 봤다가 말했다.

“으이그. 너가 바라는 게 많아서 그래.”

차가 신호에 걸려 멈췄다. 한 번 터진 마음은 쉽게 갈무리되지 않았다. 계속해서 화를 냈다가, 울었다가, 짜증을 냈다.

파란 불이 켜지고 익숙하게 차선 끼어들기를 마무리한 엄마는 사거리에서 좌회전 깜빡이를 켜며 갑자기 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했다.

“엄마가 너를 키울 때 하나만 해도 열개를 했으면 했거든? 너가 곧잘 하니까. 그래서 하나를 하면 잘했다고 안 하고 더 잘하기를 바랬어. 그렇게 키워서 너가 바라는 게 많나봐.”

모양만 질문인 나의 한탄에 대한 답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날 이후로 화목한 가족 이야기에 마음이 비교를 시작할 때 이 대화가 떠오른다. 딸깍딸깍 거리던 좌회전 깜빡이 소리도.

가족이라는 건 이래야 한다는 틀로 종종거리며 그들을 불편하게 한건 나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애써서 뭔가를 하고 기대할수록 같이 만나 식사하는 일이 더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불편함은 바라는 내 욕심에서 온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저 받아들이게 됐다. 원한다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정도만 하면 된다. 가족들에게 바랄 필요가 없다.

우리는 1년에 4번 마주 앉아 식구가 된다. 이 횟수가 가족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그냥 이게 우리 가족이다. 이한웅 씨와 김연희 씨가 35년간 어떻게든 꾸리고, 장자울 사 남매가 엉망진창으로 덧대가는 현재이다. 우리만의 보통인 것이다.

오후 12시 50분, 목요일은 다른 날 보다 이르게 식사를 나간다. 팀 내에서 정한 외식 데이이다. 모두 잘 먹는 쭈꾸미집에 가기로 했다.

“아 역시 이 집 맛있다.”

쭈꾸미를 한입 먹고 오피스 식구인 팀원이 말했다.

“인정이긴 해. 아 우리 엄마가 볶음은 진짜 잘하는데.”

“역시 전라도. 아 부럽다! 도경님 어머니 음식 진짜 정말 궁금해. 한번 먹으러 가요. 진짜.”

“나한텐 그 맛이 보통이어서 몰랐어. 나와살아보기 전까지는”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 귀에 들어온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