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 죽음의 바다」 50/100
순신이 말하기를, 적과 맞서고 있으니 삼가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 하여, 그의 아들 이예는 이를 알리지 않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전투를 독려하였습니다.
舜臣曰, 與賊對陣, 愼勿發喪云云, 則䓲, 故不發喪, 擊督戰如常矣。
이원익 (李元翼, 1547-1934) - 《승정원일기 32책》 인조 9년 4월 5일
선조가 즉위한지 31년이 되는 해이자, 임진왜란이 발발한지 어언 6년이 되던 해인 1598년의 9월 18일, 일본국의 태합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1598)는 당초 조선 침략의 목적이었던 명 정벌은커녕 조선도 채 정복하지 못한 채 눈을 감고 만다. 오닌의 난과 함께 시작된 센코쿠 시대(戦国時代, 1467-1590), 일본은 66개의 크고 작은 나라로 나뉘어 이합집산하던 혼란의 시대였다. 이를 평정한 이가 바로 오와리의 얼간이(尾張の大うつけ),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1534-1582)다.
가이국 다케다 당주 다케다 신겐(武田信玄, 1521-1573)이 갑자기 죽어버리자 오다 노부나가를 막을 도리가 없던 무로마치 막부 최후의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 1537-1597)는 1573년 7월 18일 마키시마성(槇島城)이 그에 의해 포위당하자 자신의 두 살배기 아들 아시카가 요시히로(足利義尋, 1572-1605)를 인질로 내어주고 항복한다. 그렇게 마키시마성 전투(槇島城の戦い, 1573)에서 오다 노부나가가 승리하며 200년에 걸친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 1336-1573)는 막을 내린다. 뒤이어 나가시노 전투(長篠の戦い, 1575)에서 승리하며 다케다 가문을 몰아내고, 뒤이어 우에스기 겐신(上杉謙信, 1530-1578)마저 뇌출혈로 급사하자, 그를 막을 이는 없을 듯했다.
그러나 일본 열도를 손에 넣기 직전이었던 1582년 6월 21일의 이른 아침, 그의 가신이었던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 1516?-1582)가 혼노지의 변(本能寺の変, 1582)을 일으키며 오다 노부나가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태합의 자리에 오른 것이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다.
1590년 7월 오다와라 전투(小田原城の戦い, 1590)에서 승리하며 사실상 일본 통일을 완수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는 야망과 걱정이 혼재했다. 그는 무기를 녹여 농기구를 만들겠다는 명분으로 칼 사냥(刀狩り)을 실시, 무기를 몰수하였다. 사실 이는 농민들의 봉기와 여전히 건재한 지방 토후들의 쿠데타를 방지하기 위한 성격이 더 짙었다. 그럼에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안심할 수 없었다. 오다 노부나가 시절부터 품고 있었던 대륙 진출의 열망을 실현할 때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내적으로는 지방 토후들의 세력 약화를 통한 치세의 안정과 외적으로는 명 정벌을 통한 대륙 진출을 목표로 1591년 3월 쓰시마의 다이묘 소 요시토시(宗義智, 1568-1615)에게 조선에 정명향도(征明嚮導), 즉 명을 정벌할 테니 도우라는 말을 전달하도록 했고, 소 요시토시는 이를 가도입명(假途入明)을 요구한다는 내용으로 바꾸어 전달한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조선이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 리가 없었고, 1592년 5월 23일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1558-1600)을 필두로 일본은 조선을 침략한다.
폭풍처럼 몰아치던 초반의 기세도 잠시, 이순신의 활약으로 인해 일본군은 보급로가 끊기고, 조선을 돕기 위해 명군 또한 파병되며 일본군은 후퇴하게 된다. 그렇게 조선을 점령하지 못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철군의 명령을 내리며 급사하고, 영화는 시작된다.
명량에서의 패배로 인해 예교성(曳橋城)에서 조명연합군의 사로병진 작전에 의해 고립된 채 항전하던 고니시 유키나가는 퇴각하기 위해 명의 도독 진린(陳璘)에게 자신의 부하 아리마 하루노부(有馬晴信)를 보내 화친을 제안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러자 고니시는 진린에게 수급을 선물하겠다며 약속하고, 진린은 이를 받아들여 아리마 하루노부를 포위망 바깥으로 보내준다. 이를 본 등자룡(鄧子龍)은 크게 노해 아리마 하루노부를 추격하지만 실패하고, 아리마 하루노부는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를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수급을 받은 진린은 이순신을 불러 더 이상 불필요한 희생은 필요 없다며 이순신을 설득하려 하나 이순신은 지금 적을 막지 않으면 더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며 진린의 제안을 거절하고, 진린이 출정하지 않겠다면 조명연합군을 해체하고 단독으로 행동하겠다며 떠난다. 이에 진린은 이순신을 설득하기 위해 그의 아들 이면을 살해한 일본군 셋을 잡아 이순신에게 보여주지만 이순신은 저들은 자신의 아들을 죽인 이들이 아니라며 그들의 목숨을 받아 가기를 거부하고, 진린은 분노해 일본군들을 모두 베어 죽인다.
결국 진린은 다시금 이순신을 찾아가 아직 조명연합군은 해체되지 않았다며 그의 작전 설명을 듣지만, 명의 함대는 직접적으로 전투에 참여하지는 않을 것이며 그저 수적 우위를 통한 억지력만을 제공해 피해를 줄일 것이라고 말한다.
안개가 짙게 깔린 밤, 예교성을 포위하고 있는 것처럼 위장하고, 준사(俊沙)에게 고니시 유키나가가 위장을 눈치챈다면 자신에게 보고하라고 명령한 뒤, 이순신은 함대를 이끌고 노량으로 출전한다. 시마즈 토요히사(島津豊久)를 중심으로 데라자와 히로타카(寺沢広高)를 선봉에 세운 시마즈군 또한 노량으로 접근하고, 수많은 포화가 쏟아지며 전투가 시작된다.
선봉의 데라자와 히로타카는 이순신에게 상대가 되지 못하고, 시마즈 토요히사는 이를 보고는 자신들도 대담하게 나서겠다는 말을 하며 아군을 포격하게 된다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포격을 감행한다. 이에 데라자와의 함대는 괴멸되고, 이를 지켜보면 진린은 그저 무력시위일 뿐이라고 말했던 전투가 너무나도 치열하다는 말을 반복해 중얼거리다가 결국 전투에 합류한다. 명군이 전투에 합류하는 것을 보고 분노한 시마즈는 아리마 하루노부의 혀를 자르고 돛대에 묶어두라 명한다.
시마즈 함대 역시 이순신의 상대로는 고전을 면키 어려웠고, 빈 바다를 통해 퇴각하고자 하였지만 관음포라는 만(灣) 지형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고, 시마즈 함대는 포위당하고 만다. 당황한 시마즈의 병사들은 뭍으로 달아나려 하지만 쵸주인 모리아츠(長寿院盛淳)는 그들을 쏘라고 명령하며 도망가는 자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며 협박한다. 겁에 질려 사기가 떨어진 병사들을 보며 시마즈는 말한다. 살아남고 싶다면 저 마귀들을 뚫고 가야만 한다고, 이순신을 쓰러뜨려야만 이 전쟁은 끝이 난다고, 그렇게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한다.
그렇게 시마즈의 함대는 마치 삼단철포전법이 생각나게 하는, 1열의 함대가 사격한 뒤 빠지고 2열에 있던 함대가 전진해 사격하고 후퇴하면 다시금 1열의 함대가 전진해 사격하는 전법으로 명의 함대를 상대한다. 그러나 이순신의 함대에 의해 전열의 허리 부분이 단절되고, 일본군이 배에 갈고리를 걸며 백병전이 시작된다. 이 과정에서 등자룡이 쵸주인 모리아츠를 상대하던 중 시마즈의 칼에 당하고, 준사마저 그의 칼에 의해 최후를 맞이한다.
아수라장이 된 배 위에 펼쳐진 지옥 같은 난전을 바라보던 이순신의 눈앞에 정운, 어영담, 이억기, 그리고 살해당한 아들 이면이 자신과 함께 싸우는 듯한 환각이 차례대로 나타난다. 바닥에 떨어진 북채를 잡아들어 북을 치기 시작한다. 이순신이 북채를 크게 휘두를 때마다 북소리는 웅대하게 울려 퍼지고, 이런 모습을 보며 조선 수군의 사기는 창천을 꿰뚫을 듯 드높아진다. 북을 치는 이순신을 일본군이 저격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총알은 북채에 맞고, 송희립은 그를 만류하지만 이순신은 북채를 새로 가져오도록 명한 뒤, 다시 북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그것도 잠시, 다시금 한 발의 총성이 울리고, 북소리가 멎는다. 이에 진린은 의아하게 생각하지만 이내 이순신처럼 보이는 이가 일어나 북을 치는 것을 본다.
북소리를 들으며 시마즈 요시히로는 셸 쇼크를 일으키며 귀를 막고 토하거나 하는 등 충격을 받은듯한 모습을 보이고, 참혹한 죽음을 맞은 채 떠밀려온 아리마 하루노부의 모습을 본 고니시 유키나가는 결국 시마즈 함대를 돕지 않고 퇴각해버린다.
그렇게 전투가 끝나고 진린은 기쁜 마음으로 이순신을 찾지만, 어쩐지 배 위의 분위기가 이상하다. 북을 치던 이는 이순신이 아닌 그의 아들 이회였다. 진린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지휘대를 둘러싼 방패를 헤집고 들어간다. 그곳에는 전사한 이순신이 있고, 진린은 오열하고, 장면은 그의 장례식으로 넘어간다.
별은 어둠이 짙을수록 밝아진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파훼하지 못할 것 같은 상황, 너무나도 강력해서 이기지 못할 것 같은 적. 그런 이들에 맞서 싸워야만 하는 비극 앞에서 카타르시스는 극대화되고, 또 그러한 고난에 맞서 싸워 헤쳐나가는 히어로를 보며 우리는 쾌감과 전율을 느낀다. 그렇기에 우리는 뻔한 악역보다 강력하고 매력적인 악역이 등장하는 서사에 더 강한 끌림을 얻는다. 그러한 면에서 김한민이 그려낸 왜장들은 기존 임진왜란을 다룬 영화들에서 묘사되는 어리숙하고 멍청한 적들이 아닌, 잔인하고 강력하며, 매력이 살아 숨 쉬는 적들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왜군 전체를 놓고 보자면 그들은 여전히 너무나도 약한 적으로 묘사되어, 조선의 수군이 언제든 이길 것 같이 보여 위기 상황에서 느낄 수 있는 긴장감을 잘 살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다. 물론 이러한 묘사는 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해전 파트의 웅장함을 강조하고, 화포와 신기전 등을 비롯한 다양한 무기의 사용을 통해 적을 시원하게 박살 냄으로 관객들이 이를 보며 느끼는 쾌감을 극대화해준다. 살을 내어주고 뼈를 취하는, 육참골단의 선택은 어쩌면 영화가 가진 매력을 충분하게 살려내는 현명한 결정처럼 보인다.
이순신의 최후는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다.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라는 그의 숭고한 유언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며, 이미 많은 미디어들을 통해 재현되고는 하였다. 그렇기에 감독은 이순신의 최후를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한 발의 총성과 잠시 끊어지는 북소리, 그리고 다시금 누군가 일어나 그 북을 이어 치게 함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자연스레 그의 유언을 떠올리도록 만들어 그의 죽음을 인식시켰다. 그렇게 이순신은 죽었지만 여전히 울려 퍼지는 북소리를 들으며, 그가 남긴 말이 진정으로 무슨 뜻이었는지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다시 한번 반추하게 하는 그의 시도는 그의 죽음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신선하고 좋은 방식이었다 말할 수 있겠다. 그의 아들에게 북을 치게 하는 것, 그것으로 미처 끝마치지 못한 사명을 다함에 유명을 달리하는 비장한 숭고의 미를 말이다.
관람 일자
2024/01/12 - 메가박스 영종 6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