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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2017)」

by 전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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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夜は短し歩けよ乙女」 65/100


징그러운 일상은 멈춰 세우고 어디론가 도망갈까

Cherry Filter - 「Happy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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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모리미 토모히코(森見登美彦, 1979-)의 원작 소설만큼이나 종잡을 수 없다. 어느 봄날, 술을 마시던 주인공 검은 머리 아가씨, 그녀를 바라보는 것 이상 하지 못하는 찌질한 선배. 아가씨는 한 선배의 결혼식 파티에서 눈치 보지 않고 술을 마시고 싶다고 생각하며, 한 칵테일 바에 간다. 그곳에서 그녀는 도도를 만난다. 그는 원래 비단잉어를 키워 팔았지만, 어느 날 그의 모든 것이 바람에 날아가고, 딸과도 만나지 못하게 되어 술이나 마시는 신세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지켜보던 하누키와 텐구인 히구치는 폰토초에서 노는 법을 알려주겠다며 그녀를 이끈다. 그렇게 그들은 궤변 토론장으로 향했다가, 노인의 환갑연으로 향하고, 느리게 흐르는 자신의 시계에 비해 노인들의 시계는 쏜살같이 흐른다.

술을 잘 마시는 그녀에게 사람들은 이백과의 술 대결을 권하고, 그녀는 사람들을 이끌고 이백을 찾아 돌아다닌다. 그렇게 시작된 이백과의 술대결. 모조 전기 브랜디를 마시며 이백은 그것이 인생무상의 맛이라 말하지만 아가씨는 인생을 바닥부터 데워주는 풍윤한 맛이라고 말한다. 이에 인생은 덧없는 것이라 말하는 이백. 아가씨는 풍요로운 것이라 말한다. 빼앗는 것과 나누는 것, 괴로운 것과 즐거운 것, 서로 술을 들이켜며 정반대의 인생관을 드러내 보이고, 사람은 이어져 있지 않고 고독하며 모든 것은 술의 농간일 뿐이라 말하며 이백은 더는 마시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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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백은 떠나고, 계절은 여름, 장소는 우리에게 정지용 시인의 「압천」으로 유명한 카모가와 강가로 바뀐다. 그곳에서 아가씨는 헌책 도깨비시장의 전단지를 보게 되고, 어린 시절 읽었던 책 '라타타탐'을 떠올린다. 그렇게 그녀는 도깨비시장으로 향하고, 그곳에는 코타츠를 깔아둔 하누키와 히구치, 그리고 선배의 친구 '빤스 총반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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빤스 총반장이 벤치에 앉아 있던 어느 날, 마주 보고 있는 벤치에 한 사람이 앉는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사과의 비가 내리고, 둘의 머리에 동시에 사과가 떨어진다. 그 순간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는 빤스 총반장은,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소원을 이루기 위해 팬티를 갈아입지 않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날의 이야기를 보면 그녀가 다시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그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게릴라 연극을 집필, 공연하고 있다.

한편 선배는 친구인 사무국장으로부터 아가씨가 라타타탐이라는 책을 찾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된다. 도깨비시장으로 향한 선배. 도도에게 이런저런 은혜를 입은 선배는 도도로부터 카츠시카 호쿠사이의 춘화집을 구해달라는 부탁을 받아 이백의 비밀 매각회에 참석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아가씨가 어릴 적 읽었던 라타타탐. 이백은 매운 훠궈를 준비하고 마지막까지 훠궈를 먹으며 버티는 사람에게 원하는 책을 주겠다 말하고, 선배는 그것을 구하기 위해 끝까지 버텨 결국 책을 손에 넣는다.

그러나 이백이 책을 수집하고 있고, 책가게 사장과 헌책 시장의 신은 그러한 책들은 고여 있는 것이라며, 책들은 바다로 보내져 다시금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아가 인연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헌책 시장의 신의 부탁으로 아가씨는 이백이 지어둔 천막의 매듭을 풀어버리고, 천막이 무너지며 책들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돌아가기 위해 날아가려 하나, 선배는 끝까지 책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무너지는 천막, 그리고 시작되는 게릴라 연극. 그것을 보며 아가씨는 공연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학교 축제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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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보니 계절은 가을. 시월의 대학 축제. 아가씨는 사격 게임 1등 상인 재킷 겸 백팩 잉어를 받으며 적당주의 전개 만세라며 메타픽션적 발언을 하고, 대학 축제야말로 청춘의 극장이라고 생각한다. 히구치와 하누키, 그리고 빤스 총반장은 움직이는 코타츠를 만들어 사무국으로부터 도망 다니고 있다. 그들이 도망간 자리에 가설무대가 오르나, 사무국에 의해 공주 역의 배우가 잡혀가버렸고, 노리코라는 연극의 보조 담당의 제안으로 아가씨는 무대에 오른다.

선배는 그곳에 아가씨의 라타타탐을 진열해두고 그것을 보고 행복해할 아가씨를 상상하며 기다리지만, 인기가 없는 부스의 자재를 모아 게릴라 연극 무대를 설치한다는 연극부원들이 그의 부스를 철거해버린다. 이에 선배는 사무국장을 찾아가 문제의 해결을 요청한다. 그렇게 알게 된 사실은 움직이는 코타츠에 들어앉은 빤스 총반장이 실시간으로 극을 집필하고 있다는 정보와, 코타츠가 있던 자리에 게릴라 연극이 들어선다는 정보, 그리고 곧 막을 올릴 극의 종반부에는 러브 신이 있으며, 빤스 총반장이 상대역으로 등장한다는 것. 그것을 듣고 연극을 막기 위해 선배는 필사적으로 가설무대를 추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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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막이 오른 마지막 공연. 아가씨와 빤스 총반장이 차례대로 노래를 부르고 이어지는 키스신의 직전, 선배가 무대에 난입해 빤스 총반장을 몰아낸다. 그리고 공연되는 것은 아가씨와 선배의 이야기. 그러나 또다시 키스신까지는 진행되지 못하고 무대에 설치된 함정에 선배는 걸려든다. 다시 노래하는 빤스 총반장, 그리고 그것을 본 사무국장은 곧 그것이 자신의 이야기임을 깨닫는다. 사무국장은 그날의 모습 그대로 여장을 한 채로 무대에 오르고, 자신이 사무국장임을 밝힌다. 빤스 총반장은 좌절하고, 이를 지켜보던 노리코는 빤스 총반장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노래를 부르지만, 빤스 총반장은 자신이 반한 것은 상대가 그 사람이어서가 아닌 사과가 동시에 떨어지는 우연 때문이었기에, 상대가 남자여도 좋다고 말한다. 사무국장도 이에 응해 둘의 키스신이 이어지려 하고, 둘 모두 무언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다행스럽게도 선배가 함정을 다시 열어젖혀 사무국장이 떨어지게 된다.

그때 하늘에서 도도의 잉어가 떨어지고, 그것이 빤스 총반장과 노리코의 머리에 동시에 맞아 튀어 오르며, 둘은 사랑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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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기다리는 몸은 괴로운 것

기다리고 있는 꽃은 애절하지만

하지만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고

홀로 있는 몸은 어찌해야 하느뇨

人をまつ身はつらいもの

またれてあるはなほつらし

されどまたれもまちもせず

ひとりある身はなんとせう

타케히사 유메지 (竹久夢二, 1884-1934) - 「혼자 (ひとり)」 《꿈의 고향 (夢のふるさと)》中


이윽고 마지막 계절인 겨울이 찾아오고, 선배는 감기에 걸렸다. 궁상맞게 아프다는 글을 써보아도 아무런 답이 돌아오지 않고, 하룻밤 만에 몇 개인가의 계절을 겪은 것처럼 녹초가 되어버린 그는 타케히사 유메지의 「혼자」를 읽으며 고독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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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는 감기에 걸린 하누키에게 달걀술을 끓여준다. 잠시 들린 편의점. 그곳에는 심한 감기에 걸린 빤스 총반장이 있다. 그는 감기에 걸린 노리코에게 생강 콜라를 끓여주기 위해 콜라를 사들고 있다. 그는 이제 팬티를 갈아입었다고 말했다. 그들에게도 달걀술을 끓여주고, 역시 같은 감기에 걸린 사무국장과 도도의 병문안을 들린다. 도도는 선배가 라타타탐이라는 별 볼일 없는 책을 왜인지 선배가 필사적으로 가지려고 했다 말한다. 마지막

으로 병문안을 간 곳은 이백의 집. 도도는 감기의 근원지가 그곳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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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문안을 온 아가씨를 보며 이백은 우리가 술을 마신 것이 몇십 년 전의 일인지 묻는다. 그의 방에는 괘종시계가 빼곡히 들어찼고, 시곗바늘은 미친 듯 돌아간다. 아가씨는 술을 마신 것은 불과 몇 시간 전의 이야기라고 답한다. 이백은 여자도 힘도 돈으로 살 수 있었지만 아무리 모아도 마음은 모이

지 않았다고 쓸쓸하게 말한다. 그런 그에게 아가씨는 이백 씨는 혼자가 아니라며, 당신이 빌려준 돈이 누군가에게는 힘이 되었으며, 지금도 이백이 옮긴 감기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옮으며 온 마을에 퍼지고 있고, 그렇기에 당신은 모두와 이어져 있어 고독하지 않다고, 오늘 밤은 그가 선사한 길고 근사한 밤이라고 말해준다. 그렇게 이백이 눈물을 흘리고, 시계들은 거꾸로 돌아가며, 이백은 활기를 되찾는다. 그러나 아직도 마을에는 바람이 분다. 저게 무엇이냐고 아가씨가 물어보자 이백은 자신보다 고독이 심해져 가는 젊은이가 있다 말한다.

선배는 성을 쌓아두고 있다. 선배의 집으로 가는 길에는 한 발자국 떼기도 힘들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고, 선배의 내면에서는 그녀를 좋아하는 마음과 왜소한 자존심이 자꾸만 부딪힌다. 그런 그의 성 속으로 아가씨는 걸어들어가고,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라타타탐. 선배는 함께 헌책방에 가자고 제안한다. 둘은 그날 밤 폰토초에서 서로가 어떠한 밤을 보냈는지 궁금해하고, 그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선배를 비롯해 도도, 노인들, 이백, 빤스 총반장 등등 극중 많은 인물들이 정도는 다르지만 저마다의 서로 다른 고독에 잠겨있다. 자신 주위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과 인연이 이어져 있었지만 자신은 혼자라고 믿는 이백. 사랑에 빠진 상대를 찾아 헤매는 빤스 총반장. 시간이 화살과도 같이 빠르게 지나가버려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는 노인들. 그리고 상대의 마음을 열어보기에는 너무나도 소심해서 온갖 핑계를 대며 자신의 성으로 숨어버리는 선배.

그러나 주인공만큼은 다르다. 그녀는 강하고 긍정적이다. 노인들의 앞에서 괴변 춤을 추며 그들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해 고독하던 그들의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고, 이백에게 그의 주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지 일깨워 주었으며, 감기에 걸린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가 달걀술을 끓여주며 안부를 걱정해 주는 것은 물론이요, 성 속에 숨어버린 선배의 마음속으로 먼저 찾아가 문을 두드릴 용기까지 갖추고 있다. 그런 그녀의 긍정적이고 밝은 모습은 주위 사람들에게 행복한 기운을 전파하는 것은 물론이요 화면 너머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도 따듯함을 전염시켜 그저 보는 것만으로 그녀가 끓여주는 달걀술을 마신 것처럼 마음이 포근해진다.


일본 소설들을 읽다 보면 추리소설의 그것과 흡사한 작법이 사용되었다는 느낌을 종종 받고는 한다. 사건의 결말을 정해두고, 그 위에 짜 맞추듯 끼워 넣어지는 이야기들. 이 영화에서도 그러한 느낌을 받았다.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진행이 산만함에도 불구하고, 필연적인 우연들에 의해 각 이야기들은 연결되고 통일감을 가진다.

영화 초반부 칵테일바에서 도도는 그의 잉어(鯉, 코이)들이 바람에 전부 날아가 버렸다고 말한다. 그 잉어들은 빤스 총반장과 노리코의 머리 위에 떨어져 사랑(恋, 코이)을 시작하게 한다. 빤스 총반장과 사무국장 머리 위로 떨어졌던 사과의 비(りんごの雨, 링고노 아메)는 극 중 자주 등장하는 사과사탕(りんご飴, 링고아메)의 말장난이다. 이백으로부터 시작된 감기(風邪, 카제)는 바람(風, 카제)으로 묘사되며, 이 바람으로 인해 잉어들이 날아가게 된 것이다. 그렇게 바람처럼 온 마을을 돌며 사람들을 감염시키고, 또 연결시킨 감기. 아가씨는 이백에게 말했다. 당신이 설령 고독하기를 원한다 하더라도 당신은 모두와 이어져 있고, 당신이 모두를 이어주고 있다고. 당신은 고독하지 않다고.

폰토초의 하룻밤, 그들은 무엇을 보고 어떻게 걸었는가. 술기운과 말장난과 조금은 유치한 해학을 빌려 풀어낸 인연과 인생에 대한 잡다하지만 나름대로 정돈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재치 넘치는 생각들. 그것은 마치, 1년과도 같은 하룻밤의 신비한 이야기. 각각을 떨어뜨려두고 본다면 기이하고 산만한 장면들의 연속일 따름이지만, 그것이 한곳에 모여 이루어낸 이야기는 아름답고, 설명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해준다. 괴상한 조합으로부터 탄생하는 색다른 느낌. 이러한 신비감은 작품을 직접 본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리라.


개인적으로 아가씨 역할을 맡은 성우 하나자와 카나(花澤香菜)의 이러한 연기를 참 좋아한다. 「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 (イエスタデイをうたって, 2020)」의 모리노메 시나코처럼, 어쩜 그렇게 딱 맞아떨어질까 싶을 정도로 그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매칭이 잘 되는 캐릭터들이 있다. 그녀가 맡은 캐릭터들은 정신적으로 어딘가 유약한 경우가 많았는데, 검은 머리 아가씨는 그와 정반대로 극 중에서 가장 정신적으로 강하고 건강한 캐릭터라는 점이 정말 마음에 든다.


관람 일자


2024/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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