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Man」 30/100
개들은 말한다, 듣는 법을 아는 사람에게만.
Köpekler konuşur, ama dinlemesini bilene.
오르한 파묵 (Orhan Pamuk, 1952-) - 《내 이름은 빨강 (Benim Adım Kırmızı)》
뉴저지에서 수상한 남자 하나가 체포된다. 이름은 더글라스 먼로, 여장을 한 채로 붙잡힌 그는 트럭에 개들을 잔뜩 싣고 있었다. 그는 도그맨이라고 불리는 남자로, 한 폐교에 개들과 함께 살고 있다. 그런 그의 정신 감정을 위해 경찰은 에블린을 부른다. 에블린의 앞에서, 더글라스는 자신의 지난날들을 천천히 반추하기 시작한다.
어느 날, 그에게 후안이라는 한 청년이 유기견을 데리고 오고, 그런 그에게 더글라스는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없느냐고 물어본다. 후안은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최근 엘 베르두고라는 이름의 갱이 보호비를 요구해와 세탁소를 운영하기 힘들어졌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이에 더글라스는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을지 알아보겠다고 한다.
엘 베르두고의 소굴로 개 한 마리가 들어간다. 입에 전화기를 물고 있는 개. 엘 베르두고는 전화기를 건네받는다. 전화기 건너편의 음성은 더글라스다. 뒤이어 또 다른 개가 들어가고, 엘 베르두고의 고간을 문다. 도그맨은 엘 베르두고에게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고 싶지 않으면 보호비를 뜯는 것을 그만두라고 협박한다. 어쩐지 「허드슨 호크 (1991)」가 생각난다.
그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투견으로 돈을 벌던 아버지는 폭력을 휘두르기 일쑤였고, 더글라스는 그런 아버지의 눈을 피해 개들에게 몰래 밥을 주곤 했다. 그러나 그 장면을 목격한 그의 형이 이를 아버지에게 고자질하고, 화난 아버지는 그를 개 우리에 가두어버린다.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다 못한 어머니는 셋째만큼은 좋은 환경에서 키워야겠다는 생각이었는지 더글라스에게 통조림 캔 몇 개를 건네주고 도망친다. 어머니가 집을 나가자, 형과 아버지는 이를 더글라스의 탓으로 돌리며, 아버지의 행동이 신의 뜻이라며 그가 지내는 개장 위에 신의 뜻대로라는 문구가 적힌 걸개를 걸어둔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더글라스는 창고에 난 틈 사이로 잡지들을 발견하고 세상을 배운다.
그러던 어느 날, 더글라스와 같이 지내던 개 한 마리가 새끼를 낳고, 그 모습을 형이 목격하게 된다. 형은 더글라스에게 아버지가 그 모습을 보면 전부 갈아서 개 밥으로 줄 것이라는 말을 하고, 더글라스는 제발 비밀로 해달라고 애원하지만 형은 능글맞게 웃으며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샷건을 들고 와 개장 문을 열려고 하고, 더글라스는 이를 막아서며 개처럼 포효한다. 아버지는 겁에 질려 더글라스를 향해 총을 쏘고, 이로 인해 그의 새끼손가락이 잘려나가게 된다.
형이 아버지를 집 안으로 데려간 사이, 더글라스는 자신의 손가락을 지퍼백에 담아, 자신과 함께 지내던 개에게 잡지 속 차의 모습을 보여주며, 경찰차를 찾아 그것을 건네달라고 말한다. 그러자 놀랍게도 개는 경찰차를 찾아가 앞 유리에 그것을 내려놓고, 이를 본 경찰은 더글라스의 집에 들이닥친다. 그렇게 자유를 찾았지만, 척수에 총알이 박혀 제대로 걸을 수 없게 되었고, 그는 얼굴에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에블린에게 신이 자신에게 자유를 준 대신 자신의 두 다리를 가져갔노라 말한다. 이후 아버지는 20년형을 선고받고 이틀 만에 자살, 출소한 형은 자신이 개들을 시켜 죽여버렸다고 더글라스는 담담하게 고백한다.
더글라스는 보호시설로 옮겨지지만, 그곳에서도 친구를 만들지 못한다. 그런 그에게 인생의 첫사랑이 찾아온다. 상대는 보호소의 연극 선생님이었던 샐마. 그녀는 더글라스에게 찾아와 책을 좋아하냐고 묻고, 더글라스가 셰익스피어를 읽어본 적이 없다고 하자, 신이 나서 셰익스피어에 대한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쏟아낸다. 그녀는 더글라스에게 분장을 하고 무대에 오르면 자신이 누구든지 될 수 있다고 말하며, 더글라스를 공연과 극의 세계로 이끈다. 그녀는 더글라스와 수많은 셰익스피어의 극을 연기하였지만, 이내 보스턴의 극단에 합격하여 보호소를 떠나게 된다. 그녀는 떠났지만 그녀를 잊지 못한 더글라스는 그녀의 족적을 스크랩해두며 따라가고, 어느 날 브로드웨이의 한 극장에서 공연하는 그녀를 찾아간다.
그녀 또한 더글라스를 잊지 않고 있었고, 그가 선물해 준 스크랩북을 보며 감격해 그에게 키스해 주지만, 그녀는 결혼해 아이가 있었고, 더글라스는 자괴감에 휩싸여 자신이 일하는 유기견 보호소로 돌아와 광인처럼 울부짖는다. 그녀가 자신에게 동정심 이외의 감정을 품을 것이라고 망상 한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했기에.
그의 비극은 멈추지 않고, 주 정부에서는 그가 일하고 있는 유기견 보호소를 철거하겠다고 고지한다. 그는 이해한다고 말하며, 철거가 예정된 월요일에 다시 보자고 말하지만, 월요일에 정부 관계자들이 다시금 찾아오자, 그의 모습도, 개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개들과 함께 버려진 고등학교에 들어가 생활하기 시작했다. 돈을 벌기 위해 이곳저곳에 이력서를 내보았으나 생물학 학사 학위가 있음에도 장애인인 그를 고용해 주려는 곳은 없었고, 어렵게 드랙바에서 공연할 기회를 얻게 된다. 그렇게 오르게 된 첫 무대. 그는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를 완벽하게 불렀고, 매주 금요일 밤마다의 공연을 따낸다.
허나 그것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그는 그의 개들을 시켜 부유한 사람들의 집에서 귀중품들을 털어오도록 시킨다. 그의 절도 행각은 곧 보험사 직원에 의해 발각되고, 팬으로 위장해 그의 집까지 찾아온 보험사 직원을 그는 개들을 시켜 죽여버린다.
그가 체포되던 당일, 엘 베르두고가 그의 부하들을 이끌고 그의 집으로 찾아온다. 더글라스는 개들을 부려 엘 베르두고의 부하들을 미리 준비해둔 함정으로 하나하나 유인하여 죽이고, 엘 베르두고까지 죽여버린 뒤 그는 도망치려 했고, 그 과정에서 체포되어 유치장에 구금된 것이었다.
심문을 마치고 나가려는 에블린에게 감사를 표하며 그는 면도를 하고, 옷을 갖추어 입는다. 창밖에서는 개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개들은 경찰서의 경비원을 죽이고, 열쇠를 훔쳐 더글라스에게 건넨다. 더글라스는 휠체어에서 일어선다. 경찰서를 빠져나와 바로 앞 교회, 십자가의 그림자 밑에 서서 그는 울부짖고, 그대로 쓰러진 그의 주위로 개들이 몰려든다.
전체적으로 「조커 (2019)」와 「나 홀로 집에 (1990)」 시리즈가 많이 연상되는 영화였다. 그러나 조커만큼 어둡지 못하며, 나 홀로 집에만큼 통쾌하고 재밌지 못한, 어느 면에서나 어중간한 느낌이었다.
우선 절망에 빠져 사회로부터 고립된 주인공이 안티 히어로 느낌의 존재가 된다는 점에서 조커와 비슷하지만, 조커의 분노와 복수의 초점이 몇몇 대상들에 한정되어 집중되어 있던 반면, 더글라스의 분노는 우발적이고 분산되어 있으며 때로는 자신과 전혀 무관한 이들을 향하기도 한다. 이렇게 집중되지 못한 그의 분노는 관객들이 그에게 이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낮추었으며, 그의 행위를 정당화해줄 명분을 희석시켜버린다. 또한, 조커는 그의 오랜 꿈이었던 스탠드 업 코미디에 놀라울 정도로 재능이 없었고, 그의 공연 장면을 보며 관객들은 참을 수 없는 불쾌감을 느꼈다. 그러나 더글라스는 좋은 가수였고, 배우였다. 분명 재능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개들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은 덤이다. 그러한 재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은 채 부의 재분배라는 명분 하에 악행을 저지르는 것은 핑계와 자기연민으로만 보여 그저 추하게 비추어질 뿐이다. 그가 적극적으로 재능을 살려보려고 노력했다면 분명 더 나은 인생이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조커의 행위가 이해할 수는 있지만 용납되기 어려운 행위였다면 더글라스는 이해해 주기조차 어려운 인물이다.
개들을 활용하기는 했지만 여러 함정들을 이용해 집에 들어온 침입자들을 쫓아낸다는 점, 그리고 미묘하게 성장한 맥컬리 컬킨을 닮은 더글라스의 얼굴에서 나 홀로 집에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도그맨에는 나 홀로 집에의 코믹함과 통쾌함 둘 모두 없다. 전반적으로 우울한 플롯 속에서 잠시나마의 웃음을 주려고 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중간중간 삽입된 코믹 요소들은 그저 이입을 방해할 뿐 전혀 웃기지 않았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없었다면 적어도 한 마리라도 잡는 게 낫지 않겠는가.
게다가 그의 대의명분이라는 것조차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그가 계속해서 말하던 부의 재분배. 과연 그는 누구와 부를 재분배했는가. 귀중품들은 분명 모두 그의 금고 속에 있었다. 공익을 위해서 사용한 것이 아닌 그저 그의 무대 치장을 위한 것이었을 뿐. 결국 자신의 필요를 위해 저지른 범죄일 뿐인데 그것이 어디를 봐서 부의 재분배인지.
뤽 베송씨. 안타깝게도 사람이 궁지에 몰렸다고 무엇을 해도 좋은 것은 아닙니다.
관람 일자
2024/01/26 - 메가박스 영종 2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