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gal」 69/100
제가 죄를 지은 걸까요?
Apa dosa sama saya?
안와르 콩고 (Anwar Congo, 1937-2019) - 인도네시아의 학살자
1965년 9월 30일, 운퉁 빈 샴수리(Untung bin Syamsuri, 1926-1967)의 주도 하에 당시 대통령 경호부대였던 차크라비라와 연대(Resimen Tjakrabirawa)를 필두로 중부 자바의 디포네고로 제4 군사지역사령부(Komando Daerah Militer IV/Diponegoro), 동부 자바의 브라위자야 제5 군사지역사령부(Komando Daerah Militer V/Brawijaya)를 비롯해 여러 좌익 민병대들로 구성된 군사들이 할림 페르다나쿠수마 국제공항에서 집결한다. 다음날인 10월 1일 새벽 3시 15분, 그들은 공항을 떠나 작전을 개시한다. 그들의 목표는 인도네시아 육군 참모 전원의 납치와 살해였다.
이 과정에서 당시 국방부 장관이자 참모총장이었던 아흐마드 야니 중장(Ahmad Yani, 1922-1965), 마스 티르토다르모 하르요노 소장(Mas Tirtodarmo Haryono, 1924-1965), 도널드 아이작 판자이탄 준장(Donald Isaac Pandjaitan, 1925-1965)이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으며, 소에프라프토 소장(Soeprapto, 1920-1965), 시스원도 파르만 소장(Siswondo Parman, 1918-1965), 그리고 수토요 시스워미하르조 준장(Sutoyo Siswomiharjo, 1922-1965)이 생포되어 루방 부아야(Lubang Buaya)라는 마을로 옮겨진 뒤, 고문 끝에 총살당한다. 7명의 육군 참모 중 이라크 대사관으로 피신한 압둘 해리스 나수티온(Abdoel Haris Nasution, 1918-2000)을 제외한 모두가 사망하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암살에 성공한 운퉁 일당은 자카르타의 정치, 문화적 요충지인 메단 메르데카 광장과 그 일대를 점거한다. 그곳에 위치한 인도네시아 공화국 라디오(Radio Republik Indonesia, RRI)의 점거에 성공한 그들은 RRI를 통해 오전 7시경 공식 성명을 발표한다. 성명의 골자는 10월 5일 국군의 날에 계획되어 있던 수카르노의 암살을 비롯한 쿠데타 음모를 막기 위해 자신들이 자카르타의 전략적 거점을 점거했다는 것이었다.
이 소식은 오전 5시 30분 당시 육군 전략예비군 사령관이었던 수하르토(Soeharto, 1921-2008)에게 전해진다. 즉시 군대 지휘권을 얻은 수하르토는 디포네고로와 브라위자야 대대를 설득하여 철수시킨 뒤, 마지막으로 RRI 내부에 남아있던 운퉁의 군사들까지 철수시키며 오후 7시경, 메단 메르데카의 통제권을 다시 확보한다. 훗날 이 사건에는 9월 30일 운동(Gerakan 30 September, G30S/PKI)이라는 이름이 붙여진다.
수하르토는 이 사건의 배후에 인도네시아 공산당(Partai Komunis Indonesia, PKI)가 있었다며 비난한다. 이에 아체주(Aceh)에서 반공 시위와 함께 유혈 소요사태가 촉발되어 곧 자바섬 전역으로 확산된다. 1965년 10월부터 1966년 3월까지 반년 남짓한 기간동안 자행된 이 대학살에서 PKI 당원들을 비롯해 노동조합원, 중국인, 자바족, 무신론자, 그리고 인도네시아 국민당원을 포함하는 일반적인 좌파로 분류된 사람들까지 모두 살해당한다. 희생자의 추정치는 적게는 50만명에서 최대 300만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러한 학살을 주도한 것은 인도네시아 최대의 이슬람 조직인 나들라툴 울라마(Nahdlatul Ulama)의 청년부 안소르 청년운동(Ansor Youth Movement)를 비롯해 프리먼(Preman, Free man)들로, 준군사조직적인 성격을 띠며 정치와 깊게 얽혀있는 갱단들이다.
영화는 그런 프리먼 단체 중 하나인 판차실라 청년단(Pemuda Pancasila)의 일원으로서 학살에 참여한 이들을 다룬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시선으로 학살을 바라보는 것에서 모잘라, 감독은 그들에게 한가지 제안을 한다. 당신이 저지른 학살을, 당신이 재현해보지 않겠냐는 제안.
인도네시아에서 1965년의 대학살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수하르토는 1998년 실각했지만, 2008년 그의 사망 당시 인도네시아의 대통령이었던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Susilo Bambang Yudhoyono, 1949-)가 그를 인도네시아 '최고의 아들'이라 칭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장례식을 국장으로 치루었으며, 7일간 애도 기간을 선포하였을 정도로, 그는 아직 인도네시아 집권세력과 긴밀히 유착되어있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교과서에서는 이 학살을 다루지 않으며, 희생자들은 보복이 두려워 쉬이 증언할 수 없다.
그러나 희생자들이 그 일에 대해 쉽게 증언하지 못하는 반면, 학살을 주도한 인물들은 자신의 살인을 무용담처럼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녔다. 그렇기에 감독은 생각을 바꾼다. 학살의 주도자들에게, 자신의 학살을 재현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사건을 고발하기로 한 것이다.
안와르 콩고(Anwar Congo, 1937-2019)는 자신의 업적을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한다. 젊은 시절 극장을 운영했던 그는 영화광이자, 학살의 주도자이다. 그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촬영진들을 자신이 학살을 자행했던 신문사의 건물 옥상으로 데려가 자신의 살인 행위를 자랑스럽게 재연한다. 철사로 목을 조르고, 책상 다리 밑에 목을 집어넣게 하고는 그 위에서 노래를 부른다거나, 마을을 불태우는 장면들을 말이다. 비단 그만이 자랑스럽게 범죄 행각을 떠벌리는 이는 아니다. 판차실라 청년단원 사피트 파르데데(Safit Pardede)는 중국인 상인들에게 수금하는 모습을 자랑스레 보여주는가 하면 자신의 강간을, 그것도 14살 정도의 여자가 가장 좋다는 식으로 자랑한다. 다른 단원들 또한 그 시절이 그립다고 맞장구친다. 또 아디 줄카드리(Adi Zulkadry)는 자신의 행위가 국제법에 저촉된다면 어디 한 번 법정에 세워보라며, 자신은 승자이기 때문에, 정의는 자신이 정의하겠다고 말한다. 심지어는 영화를 촬영하던 도중 TV쇼에 출연해 자신들의 행위를 자랑하기도 하며, 진행자는 공산당을 몰살하기 위해 새롭고도 효율적인 방법을 만들었다며 그들을 칭찬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업적을 기록하고, 반공주의 프로파간다를 선전하기 위한 영화를 만든다. 공산주의자들을 척결하고, 죽은 공산주의자들이 나와 자신을 죽여줘서 고맙다고 안와르 콩고에게 말한다는 내용의 영화를 말이다. 그들에게 영화는 자위의 수단일 뿐이다.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으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자위의 수단.
그렇게 촬영을 진행하며 안와르 콩고에게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자신의 악몽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신이 죽인 사람의 눈을 감겨주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가 하면, 공산주의자들의 후손이 자신을 저주할 것이라는 말을 아디에게 꺼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럴때마다 주위 인물들은 그의 마음이 약해서 그런 것이라 말하고 안와르 또한 그런 말들을 들으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곤 한다.
그러나 철사로 목을 졸라 죽이는 고문 장면을 재연하던 때 그는 갑자기 축 늘어지며 공황 증세를 보인다. 자신이 정말 죽은 것 같았다는 말과 함께. 그리고 영화의 끝, 안와르는 희생자들이 그에게 자신들을 천국으로 보내주어 감사하다고 말하는 장면을 보고, 그는 감독 요슈아에게 자신이 이렇게 굉장한 작품을 만들 수 있을지 몰랐다면서 감사를 표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철사에 목졸리는 장면을 다시 보고 싶다고 말한다. 자신의 손자들을 불러오는 안와르. 손자들을 껴안고 미소를 짓는 그는 평범한 할아버지처럼 보인다. 그러나 손자들이 다시 돌아가자, 영화를 보는 내내 그는 인상을 찌푸린다. 침묵과 그 속에서 피어오르는 담배연기. 침묵을 깨고 안와르는 요슈아에게 묻는다.
안와르
내가 고문했던 사람들도 지금 나와 같은 느낌일까요? 고문당한 사람들의 기분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존엄성과 자존감 그 모든게 파괴되는 느낌이잖아요. 그리고 공포가 찾아왔죠. 저곳의 그 두려움, 그게 나한테 덮쳐드는 것 같았어요. 펑하고. 갑자기 공포가 내 몸을 지배했죠.
Apakah orang yang kusiksa dulu itu rasanya seperti aku begini? Tapi aku dapat merasakan, perasaan mereka yang disiksa karena jelas, di sini nih, apa namanya, marwah habis harga diri ya kehabisan semua. Rasa takut itu datang. Pas waktu begini. Nimbrung dia sekalian memasuki dalam tubuh itu. Beng! Nimbrung, sekalian masuk dalam tubuh.
요슈아
당신이 고문했던 사람들의 기분은 훨씬, 훨씬, 훨씬 더 끔찍했을 거예요. 왜냐하면 당신은 이게 영화라는걸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곧 죽을것이라는걸 알았을 테니까요.
Jelas apa yang dirasakan orang yang disiksa Bang Nuar jauh jauh jauh lebih buruk dari ini. Karena Bang Nuar tahu ini hanya film, mereka tahu mereka akan dibunuh.
안와르
하지만 조쉬, 나는 느낄 수 있어요. 정말로요. 정말 그런… 제가… 제가 죄를 지은 걸까요? 맞아요 조쉬, 이런 짓을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했어요. 이 모든게 내게 되돌아오는 걸까요?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아냐.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조쉬.
Tapi saya merasakan, Josh. Benar-benar saya rasakan. Apa itu saya mungkin… Saya tuh be… Apa dosa sama saya? Banyak, ya, Josh, manusia yang pernah saya bikin gitu, Josh. Apakah dia ini kembali dia kepada saya? Mudah-mudahan jangan sampe… Jangan. Nggak mau saya, Josh, yang beginian, Josh.
그는 눈물을 보이며 격양된 목소리로 말한다. 평생 눈 돌리고 살아오던 진실. 그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죽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씻을 수 없는 과오라는 것. 화면에서는 그가 계속해서 고문받고 있다. 그는 눈물을 훔치고 화면을 마저 본다. 안와르는 촬영팀을 한 건물 옥상으로 데려간다. 영화를 찍기 시작했을 때, 그가 자랑스레 철사로 사람을 목졸라 죽이는 모습을 재연한 곳. 잘못된 일임을 알았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는 변명을 말하고, 그는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토해내지 못하는 구역질을 멈춘 그는, 당시 자신의 양심이 그들을 죽여야 한다고 믿었기에 학살을 자행했다고("Kami harus mematikan hati nurani saya yang mengatakan, "Harus dihabiskan.") 말한다. 그렇게 마지막 변명을 마친 그는 잠시 그의 주위에 놓인 학살에 사용되었던 도구들을 설명하는가 싶더니 다시금 구역질을 시작한다. 마치 그에게 씌인 악마를 토해내고 싶었지만, 악마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이었고, 스스로가 스스로를 토해내려 하는 사람처럼 아무것도 토해내지 못할 구역질을 한다.
「컴 앤 씨 (Иди и смотри, 1985)」를 리뷰하며 인용했던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이 있다. '이성은 개인이 지니고 있는 도덕적 충동을 억제시키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대체하기 때문에 이성 자체가 비도덕적일 수 있다'는 말. 안와르는 평생 자신이 저지른 학살이 양심적인 것이라고 믿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성적인 사고의 산물이었고, 그렇기에 그를 비롯한 그의 동료들은 학살에 대해 무감각했다. 그들의 행위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정당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영화를 찍으며, 고문하는 사람이었던 안와르의 역할은 고문 당하는 사람으로도, 고문을 지켜보는 제3자로도 변화하고는 한다. 역할의 변화를 통해 그는 '만약 아버지가 공산주의자로 몰려 살해당했다면 어땠을까?'와 같이 피상적인 생각으로만 존재하던 상황 속에 들어가 당사자가 되어 몰입하며 그들이 되어보는 경험을 한다. 그러한 경험 속에서 그는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의 행위를 바라봤을 때 그것이 어떻게 비추어지고 있는 것인지를 목격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죽인 사람들이 그저 공산주의자이기 전에 자신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인간임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미국 시카고대 교수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 1947-)은 1995년 《철학과 공사 (Philosophy & Public Affairs)》에 「대상화 (Objectification)」라는 이름의 글을 투고한다. 이 글에서 그녀는 대상화를 "대상이 아닌 것, 실은 사람인 것을 대상처럼 대하는 것("treating as an object what is really not an object, what is, in fact, a human being")"으로 정의하며, 대상화가 일어났을 때 벌어지는 일곱 가지 현상에 대해 설명했다. 도구로의 전락(instrumentality), 자율성 부정(denial of autonomy), 활동성 부정(inertness), 교환 가능성(fungibility), 침범의 자유(violability), 소유권 주장(ownership)과 주관성에 대한 부정(denial of subjectivity)이 이에 해당한다.
안와르 콩고는 물었다. 자신이 정말 잘못한 것인지 말이다. 그는 자신이 죄를 지었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3자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야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는 죄인 것이 당연하니까. 그러나 안와르와 제3자인 우리의 시선에는 대상화라는 차이가 있었다. 우리는 학살당한 존재들을 사람으로 인식하지만, 학살을 주도한 당사자들에게 그들은 사람이 아닌 공산주의자라는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잔인하게 고문하고 생명을 빼앗았으며(violability) 그들이 고통스러울 것임을 느끼지 못했고(denial of subjectivity), 안와르는 자신이 고문했던 사람들이 지금의 자신과 같은 감정을 느꼈는지 수십년이 지나서 물어보아야만 했다. 이데올로기가 해체되고, 그에게 씌워진 색안경이 벗겨지며, 그는 자신이 피바다를 딛고 서있음을 알아챈다.
우리는 사람의 탈을 쓴 악마가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실은, 대부분의 경우에서, 사람이 악마의 탈을 쓴다. 학살로부터 수십년이 지난 지금, 해맑게 자신들의 학살을 자랑하는 그들은 그저 할아버지처럼 보인다. 노래하기 좋아하고, 영화를 좋아하는 할아버지 말이다. 그들은 사람이었다.
우리는 악마가 아니기에, 이 모든 것을 그저 타인의 이야기로 생각한다. 그것은 안와르도 마찬가지였다. 악마가 인간의 모습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악마의 모습을 하는 것이다.
관람 일자
2024/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