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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러브 라이즈 블리딩 (2024)」

by 전율산

「Love Lies Bleeding」 40/100


사랑에는 항상 약간의 광기가 있다. 그러나 또한 광기에는 항상 약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Es ist immer etwas Wahnsinn in der Liebe. Es ist aber immer auch etwas Vernunft im Wahnsinn.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Nietzsche, 1844-1900)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Also Sprach Zarathustra)》


루 랭스턴은 작은 마을에서 아버지의 체육관을 운영하며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을 보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라스베가스에서 열리는 보디빌딩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나온 재키 클레버가 그녀의 앞에 나타났죠. 둘은 빠르게 사랑에 빠지고, 재키는 루의 집에 머물며 뜨거운 사랑을 나눔과 동시에 보디빌딩 대회를 준비합니다.

루에게는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는 언니 베스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을 너무 사랑하기에, 남편이 그녀에게 폭력을 가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떠나지 못합니다. 그런 언니에 대한 걱정으로 인해 루는 고향을 떠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베스의 남편 JJ는 베스에게 죽을 정도로 폭력을 행사하고, 의식을 잃은 채 병상에 누워있는 베스의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얼굴을 보며, 루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낍니다.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일까요. 재키는 분노한 루를 보며 함께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근육이 불끈불끈 솟아오르고, 의자를 으스러뜨릴 정도의 괴력을 내게 됩니다. 재키는 그 길로 JJ의 집에 찾아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그를 죽여버리죠. 루는 죽은 JJ를 발견하고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일은 점점 더 꼬여가고,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으로 인한 재키의 편집증적 돌발 행동은 점점 종잡을 수 없어 제어하기 힘들어져만 갑니다.


사랑은 미친 짓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그런 사랑에 미쳤습니다. 사랑에 미쳤다. 이것보다 그들을 잘 설명해 줄 말은 없을 것입니다. 순간적으로 사랑에 휩쓸린 그들은 뜨겁게 섹스하고, 감정의 공명을 느끼며 서로를 위무합니다. 나를 위해서 무엇까지 할 수 있는지 연인 사이에서는 종종 묻고는 합니다만, 이들은 사람도 죽일 수 있습니다. 그들의 들끓는 욕망은 파괴적인 폭력으로 이어져 욕정으로부터 비롯되는 이 영화의 누아르적 서사와 잘 융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폭력적인 누아르 장르는 모든 등장인물들이 선하다고 할 수 없는, 피카레스크적인 캐릭터성과 잘 맞물려 돌아갑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살인을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재키, 재키의 살인을 숨기려 하며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르는 루, 베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JJ, 그런 JJ를 감싸려는 베스, 적, 심지어는 자신의 아내까지 거침없이 살해했으면서도 JJ에 대해서는 베스의 판단에 맡기자고 말하는 루의 아버지, 심지어는 경찰들까지 모두가 자신의 욕망에 거리낌이 없고 폭력적인 이빨을 드러냅니다.

정욕과 신체적 강함, 총기, 폭발, 살인 등 강렬한 욕구와 충동으로부터 비롯되는 씬들의 병치는 호흡이 느슨해지지 않도록 러닝 타임 동안 영화에 팽팽한 장력을 전달합니다. 전통적인 강한 여성상, 팜므 파탈이라고 불리워져 온, 으로부터 벗어나 기존 전통적이었던 강하고 폭력적인 남성상과 별반 다르지 않은 재키의 모습은 영화의 주인공들이 모두 여성이며 퀴어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조합을 시도해온 여타의 영화들과는 다른 강렬하고 폭발적인 에너지의 수위를 보여주며 누아르 영화로서 부족함이 없도록 만듭니다.


그러나 사랑한다고 해서 늘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목줄 잡혀 끌려다니는 것은 연인보다는 반려동물에 가깝죠. 정말로 사랑한다면 가끔은 잘못을 꾸짖고, 떠나야 할 때를 알아야 하는 법입니다. 그러나 감독은 욕망의 폭력성을 보여주면서도, 루가 아직 숨이 붙은 데이지의 목을 졸라 죽고 그녀의 시체를 유기하는 장면을 통해 그러한 것이 진정한 사랑인 양 묘사한 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맹종이며 예속이고 복종에 가까운 것입니다. 절제되지 않는 사랑은 정욕에 불과합니다.

이외에도 영화는 과장된 장면들, 주로 의문의 스테로이드로 인해 재키에게 발생하는 변화들을 보여주며 사랑의 힘과 가능성을 부풀려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장면이 주제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과는 별개로, 진지하고 폭력적으로 그려내 온 누아르를 일순간에 무너뜨리기에 제법 뜬금없고 유치하게 보여 몰입에 방해가 되는 요소로 작용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전반적으로 욕정의 폭력적인 발현을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며 진지한 누아르로 표현해 내었기에 장르적으로는 좋은 영화였으나, 단 하나의 몰입을 방해하는 장면과 동의하기 힘든 메시지로 인해 높은 평가를 주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사실 이러한 영화는 그저 즐기는 것이 방법이겠지만 저는 실패하고 말았네요.


관람 일자


2024/07/04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천시청 어울마당 G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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