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된 금지

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욕망을 통과하며 떠오른다.

by 인레트르

세 살 반쯤 되었을 때, 한스는 자신의 고추를 만지다가 엄마에게 들킵니다.
엄마는 한스에게 겁을 주면서 말합니다.

엄마: 너 또 고추 만지면, A 박사님을 부를 거야. 박사님께 네 고추를 잘라달라고 할 거니까. 그럼 오줌은 어떻게 쌀래?


한스: 내 엉덩이로 누면 돼.


엄마의 거세 위협은 당시 세 살이었던 한스에게 전혀 효과가 없었습니다.
엄마가 자기보다 더 권위 있는 인물인 A박사(프로이트)를 들먹였지만,

아무 소용없었죠.

그런데 이 위협은 한참이 지난 뒤,
한스에게 실질적인 불안으로 되돌아옵니다.


4살 9개월쯤, 엄마가 다시 묻습니다.


엄마: 한스 너, 손으로 고추 만지는 거 아니지?


한스: 날마다 밤에 잠들려고 할 때 고추 만져.


다음 날 낮잠에서 깬 한스에게 부모가 다시 같은 걸 묻습니다.


한스: 잠깐 거기에 손을 댔어.


두어 달 뒤, 아빠는 말 공포증(말에 대한 두려움)을 연결 지으며 말합니다.


아빠: 네가 앞으로 고추를 만지지 않으면, 그 바보 같은 것(말 공포)이 널 괴롭히지 않을 거야.


한스: 하지만 난 손으로 고추를 만지지 않는데?


아빠: 그래도 자꾸 만지고 싶지?


한스: 응. 하지만 ‘만지고 싶다’와 진짜 ‘만지는 것’은 달라. 그리고 ‘하고 싶다’는 ‘한다’와 같은 게 아니야.”


이후 아빠와 함께 라인츠에 간 한스는,
동물의 고추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이렇게 말합니다.


한스: 사람은 누구나 고추를 가지고 있어. 그리고 내가 자라면 내 고추도 커질 거야. 그래, 내 고추는 내 몸에 확실히 붙어 있는 거야.”


1년 전, 거세 위협은 아무런 효과도 없었지만,
1년 후, 한스는 거세의 가능성 앞에서 불안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프로이트는 이런 현상을 '사후 효과 '또는 '지연된 금지(복종)'이라 불렀습니다.
당시에는 아무런 의미 없었던 것이,
훗날 어떤 맥락 속에서 뒤늦게 의미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 정신이 시간을 직선적으로 경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지금 이 순간의 욕망이,
과거의 사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때로는 그 과거를 다시 써버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정신세계에서는 자연과학과는 달리
결과가 원인이 되기도 하고,
원인이 결과가 되기도 합니다.

과거는 그 ‘사실 여부’보다
어떻게 기억되느냐,
그리고 그 기억을 통해 어떤 욕망이 드러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

과거에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그 과거를 욕망을 통과해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어릴 적 들었던 말이,
그때는 아무렇지 않게 들렸지만
시간이 흐른 후 문득 마음을 건드리고,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후 효과란 이런 것이며,
이것은 무의식의 무시간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무의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과거에서 현재로 하나의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습니다.
무의식을 반영하는 현재의 욕망이, 과거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재구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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