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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색광선 Jun 11. 2024

잔지바르에서 아루샤로, 비행기를 탈 땐 이렇게

나 혼자 잠보! 아프리카 배낭여행-17


잔지바르를 떠나는 날.

어김없이 새벽에 잠이 깼다. 여행에 맞춰 신체 리듬도 바뀌는 걸까. 이젠 기상 알람은 필요가 없다.


그나저나 금방 차가운 물속에 첨벙 빠지고 싶을 만큼 이른 아침부터 습도가 높다. 잔지바르는 섬이라서 그런지 한국 여름처럼 매우 습하다. 그런데 어떻게 무슬림 여인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저리도 감싸고 다닐 수 있을까.  




잔지바르

스톤타운을

떠나다


Lukmann Restaurant에서 한 끼를.


원래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간다는 레스토랑에서 아침을 먹으려 했다. 그런데 구글맵에 의지해 거미줄 같은 골목을 걷다가 현지 음식을 파는 모퉁이 가게를 발견. 역시. 이슬람식 빵을 파는 곳이었다. 두꺼운 빵과 또르티아 처럼 얇은 빵 두 가지였는데 개당 500실링이었다.


주인에게 먹는 방법을 물어보았다. 얇은 빵 안에는 과일 등 좋아하는 것들을 끼워서 먹으면 된다고 한다. 그런데 갓 구운 빵을 싸주는 종이가 한국 신문이다. 내가 놀라워하며 어떻게 얻었냐고 물어보자 여기로 수입이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북한 사람이라고, 언젠가 한국에 가보고 싶다고 웃으며 농담을 건넨다. 배가 고팠기에 빵을 사자마자 그 자리에서 맛있게 먹어버렸다. 이런 내 모습을 보자 그는 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숙소 위치를 묻더니 다시 와주길 바란다는 인사를 전하며.


결국 점심을 이슬람 음식 전문점 Lukmann Restaurant에서 해결했다. 이 레스토랑에서는 줄을 서서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접시째로 선택하거나 즉석요리를 요청하면 된다. 메뉴를 다 선택한 후엔 식사 전 카운터에서 음식값을 계산한다. 관광객에게는 가게 직원이 레스토랑 이용 방법을 친절히 설명해 주니 안심하고 방문해 봐도 좋다.




현지 버스(달라달라)로

잔지바르 공항 가기


히잡을 쓴 여인들은 어디서나 신비롭다.



스톤타운에서 달라달라(Dala-dala) 505번을 타면 잔지바르 공항에 간다(23년 8월 기준). '달라달라'는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미니 버스다. 우리나라로 치면 봉고차를 개조한 크기인데 20명쯤 앉을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구글 맵과 현지 도로를 비교해 가며 살펴봐도 정확한 버스 승차 위치가 어디인지를 찾지 못했다. 처음엔 구글맵에서 검색한 달라달라 터미널을 찾기 위해 무거운 백팩을 멘 채 열심히 도로를 누볐다. 그러던 중 도로 위에 갑자기 달라달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걸 발견.


'저 줄줄이 소시지 줄 꼬랑지쯤 터미널이 있겠지?'


요런 생각에 긴긴 버스 줄을 따라 체감상 10분쯤 걸어갔다. 추측대로 꽤 많은 달라 달라들이 길가에 정차한 게 눈에 띄었다. 히잡을 쓴 어떤 소녀에게 물어보니 여기가 분명 터미널이 맞단다. 하지만 구글맵엔 그 소녀가 말한 위치는 나오지 않았다.


현지인 아저씨를 붙잡고 정류장 위치를 물어보기도 했다. 그는 로컬 마켓(local market)에 있는 스파이시(spicy) 가게를 몇 개 지나면 공항 가는 달라달라 정류장이 있다고 말해 주었다. 하지만 난 도저히 그곳을 찾을 수 없었다. 여긴 무슨 정류장 표시도 하나도 없다. 하지만 현지인들은 대강 버스 노선을 다 아는 터라 불편한 게 없어 보인다. 이들은 자기가 타고 싶은 달라달라가 길 위를 지나가면 바로 손을 들어 잡아서 타곤 했다.


결국 달라달라를 타긴 탔다. 길 찾기는 포기하고 그냥 확실한 방법, 현지인식 손들기를 택했다. 뭘 모를 땐 관찰이 제일이다. 다들 이렇게 하니 나도 손을 번쩍 들 수밖에. 대로에서 505번이 보이자마자 팔을 뻗으니 버스는 바로 멈췄다. 이때 그냥 걸어가서 달라달라를 타면 된다. 현지인들도 이렇게 손을 흔들면 일단 달라달라는 멈춘다. 요금을 걷는 안내원들이 기사에게 속도를 늦추게끔 곧바로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에게는 달라달라가 먼저 신호를 보내기도 한다. 어떤 505번 달라달라에서는 나를 먼저 부르기도 했다. 도로 한가운데를 달리던 그 버스는 나를 가리키며 공항에 가냐고 외치며 바로 타라고 했었다. 하지만 공항에 가기엔 너무 이른 시간대라 내 쪽에서 거절한다는 손짓을 했다. 그런데 막상 달라달라 터미널을 직접 찾아가려다 길을 헤맨 것이다.




잔지바르 공항에서는

짐 분실 & 연착 조심



잔지바르 공항에서 체크인을 하면서 속으로 빌었다. 제발 연착이 되거나 내 짐이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그런 일이 다반사라고 들어서였다. 내가 탈 비행기도 30분쯤 연착이 되었다. 그런데 이 정도는 애교다. 보안 검색을 마친 후 활주로로 향하는 탑승 게이트까지 왔더니 내 차례 이전에 출발해야 할 편명들도 줄줄이 연착 안내가 되어 있었다. 역시 아프리카 타임은 이런 건가.


출발 시간을 훌쩍 넘긴 항공편들은 줄줄이 이륙을 기다리고 있었고 좁은 대기실에서는 피곤에 찌든 관광객들이 한가득이었다.


'여기가 공항 맞아..? 시골 버스 대합실 아냐?'


벽은 더러웠고, 의자도 부족했다. 크기는 한 20여 평쯤? 우리나라로 치면 지방에 있는 옛 버스터미널 분위기다. 작은 공간에 작은 스낵 코너와 의자들, 관광객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에어컨 같은 건 기대하면 안 된다.


기다림에 지친 이들은 탑승 시간에 대한 확답을 받으려고 항공사 직원에게 질문을 해대곤 했다. 나 역시 겨우 잡은 의자에 더위에 찌든 몸을 걸터앉았다. 항공사 직원이 정신줄을 놓지 않고 내 짐은 제대로 분류했을 거라는 희망 회로를 돌리며.


참고로 잔지바르와 킬리만자로 혹은 세렝기티를 오가는 탄자니아 국내 항공편은 연착과 짐 분실이 잦기로 유명하다. 비행기가 제시간에 뜨는 게 이상할 정도다. 자유여행을 할 땐 이점을 고려하자.


[ 탄자니아 국내 항공편(잔지바르 섬 ↔ 세렝기티& 킬리만자로 경로)을 이용할 땐 ]

1) 연착이 잦다 - 이동 시간을 여유 있게 확보하자
2) 짐 분실을 대비하자 - 기내에 갈아입을 옷(잠옷 & 속옷 포함), 세면도구 정도는 미리 분리해서 갖고 타자.


특히 2) 번은 강조하고 싶다. 이렇게 짐을 분리해 두면 돌발 상황이 벌어져도 관광을 위한 소중한 시간을 벌 수 있다. 큰 짐은 수하물로 부치고, 작은 짐은 따로 들고 탑승하면 혹시라도 내 짐이 다른 데 가 버렸을 때 되찾을 때까지 원래 일정을 소화할 수 있으니까.


실제로 아프리카에 와보니 비행기든 기차든 연착이 일상이다. 예정 시간보다 늦게 출·도착하는 경우가 과장을 좀 보태서 100 프로다. 예를 들어 내가 나미비아 투어를 갔을 땐 짐을 전혀 못 갖고 온 유럽 가족도 보았다. 이들은 며칠간 떡진 머리와 입은 옷을 유지한 채 투어가 끝날 때까지 대자연에서 버텨야만 했다.




오른쪽

창가 자리의

행운


흰 구름 위로 보이는 삼각형, 저게 킬리만자로 산이다


잔지바르에서 아루샤 공항(Arusha Airport)으로 향하는 비행기가 이륙하자 기내 창가엔 미처 둘러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잔지바르 해변이 보였다. 가보면 지저분하지만 멀리서 보면 그림 같은 곳. 내겐 잔지바르가 이렇게 기억되리라.


30분쯤 흘렀을까. 아루샤 공항에 착륙하기 전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킬리만자로 산이 보인다. 승객들은 슬슬 웅성이기 시작했다.


'저게 돈을 부르는 산이구나.'


역시  세속적인 사람인가 보다. 대자연을 영접할  느낄법한 경외감 따윈 들지 않았다.


킬리만자로 산을 실제로 보니 현생을 포기하고 고생고생하며 여태껏 지나쳐  길과 써버린 돈부터 머릿속으로 자동 계산이 되었다. 이렇게 속세에 찌든  눈으로 보아도 산은 신비로웠다. 사진으로  모양과 산은 똑같다는  신기했다. 구름에 가려 꼭대기 부분이 보이지 않는 모양새를 보면  아무리 나무늘보처럼 움직이는  싫어해도 정상을 찍고 싶은 욕구가 솟아오르지 않을까.


항공편으로 잔지바르 → 아루샤까지 상행할 경우 기내에서 오른쪽 창가 자리를 잡으면 이 풍경을 볼 수 있다. 탄자니아 국내선 비행경로가 돌발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하는 말이다. 창가 자리를 얻는다면  비행기가 착륙할 땐 마치 사파리에서 열기구 투어를 하는 듯한 쾌감을 맛볼지도 모른다. 날씨가 좋으면 기체가 땅에 가까워질수록 광활한 탄자니아 자연이 두 눈에 쏙 들어온다.




아루샤 공항에서

시내로 이동하기


아루샤 공항도 조그많다


무사히 짐을 찾은 후, 택시 삐끼들을 물리치고 아루샤 공항을 벗어났다. 이젠 공항에서 아루샤 시내로 가야 한다. 구글맵에선 아루샤 공항에서 시내 숙소까지는 6킬로 정도였다. 많은 관광객들은 아루샤 공항에서 택시를 잡거나 투어 업체에서 준비해 준 픽업 차량을 탄다.


인터넷에서 본 대로 아루샤 공항 근처에 있다는 달라달라 정류장을 찾아 걷기 시작했다. 아직 이른 오후여서 시내에 서둘러 갈 필요는 없어 보였다. 아낄 수 있는 건 다 아껴보고, 웬만하면 사서 개고생해보자는 배짱을 키웠다. 최악의 경우 버스 정류장을 못 찾는다 해도 6킬로? 그 쯤이야 못 걸을까 싶었다. 당시엔 왜 이런 장밋빛 상상을 했을까? 돌이켜보면 당시 체력으론 이건 미친 짓이었다.


열심히 땡볕을 걷는 중 길 건너편에 서 있는 봉고차 한 대가 저절로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엔 담배를 피우며 쉬고 있는 인도 아저씨들이..?! 이들은 딱 봐도 부자 티가 났다.


'나랑 같이 탔던 아재들인데..?'


이 남자들을 보자 금세 기억이 났다. 이 무리 중 몇몇과는 비행기 탑승 전 연이은 순서로 대기하며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기에 그들도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이들은 날 보자 특유의 아재 스타일로 거침없이 손을 저었다. 이 쪽으로 길을 건너오라는 듯이.


'자기네 차량으로 오라는 거구나.?!'


내가 힘들어 보였던 건가. 내가 여행자란걸 알고, 마침 남는 자리도 있으니 같이 봉고차를 타자는 거다.


'이게 웬 떡이냐..!!'


속으론 넙죽 타고 싶었지만 내 짐이 부피가 커서 민폐일 거 같다고 예의 상 거절을 해 보았다. 그러니 인도 아재들은 한사코 타라고 강권했다. 이 백팩을 메고 시내까지 걷는 건 미친 짓이라고 하면서. 결국 난 이들과 함께 초호화 프라이빗 그룹 투어 차량으로 아루샤 시내에 입성했다.


꼭 이런 행운을 누리기 위해서는 아니지만, 같은 여정을 가는 여행자끼리 스몰 토크(small talk)를 나눠두면 예기치 못하게 도움을 받을 때가 있다. 인간적인 대화를 몇 마디라도 나눠보면 나중에 우연찮게 마주칠 땐 서로 아는 사이지?라는 묘한 친근감이 든다. 이렇게 말을 트고 상대가 편해지면 사소한 거라도 서로 보탬이 되기도 쉽다. 한국에선 친구 한 명 제대로 못 사귀는 아싸 유전자를 타고난 팔자이지만 이번 아프리카 여행 중엔 서툰 영어로나마 친해진 사람들에게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나저나 돈 많은 만수르 분위기가 뿜뿜 나는 이 아재들은 넉살도 좋았다. 당신네들 여정이 어떠냐고 물어보니 세렝기티 - 킬리만자로 - 마사이마라까지, 그다음엔 고 홈(go home)이라고 한다. 호화로운 사파리 투어를 두 군데나 가다니. 속으론 부러웠지만 겉으론 안 그런 척 표정 관리를 했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니 한 아재가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라며, 자신은 강남 스타일과 부산을 너무 사랑한다고 과거 한국 여행담을 말해주었다.




백팩 메고

아슬아슬

오토바이 타기


오토바이를 탄 채 찍은 사진은 다 흔들렸다


이날 해본 경험 중 절정은 무거운 백팩을 멘 채 어떤 아프리카 남자애가 모는 오토바이를 탄 거다. 짐 무게가 최소 10kg는 넘은 상태로 말이다. 인도 아재들이 아루샤 시내에 대충 나를 떨궈 준 다음부턴 숙소로 향하는 길을 찾기 시작했다.


아루샤(Arusha)는 말이 도시지 한국으로 치자면 시골 읍 수준이다. 하지만 이 작은 동네도 길은 복잡했다. 숙소를 구글맵에서 GPS 좌표로 찍고 걷는 도중 왠지 길을 잘못 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공항 셔틀 서비스를 미리 요청할걸..'


늦게나마 후회했다. 점점 배낭 무게를 견디기 힘들었지만 오로지 내 힘으로 숙소를 찾아야만 했다. 예약한 숙소에 전화나 왓츠앱을 할 수도 있었지만 아프리카는 현지 통신망 상태가 대개 안 좋다. 언제 연락이 되리라는 기약도 없었고, 설사 통신망 연결이 된다 해도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설명할 방도도 없었다. 이정표 삼을 만한 지명이나 건물도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런 비포장 진흙길을 구글맵에 의지하며 터벅터벅 걷는 중이었다.


동네서 틀림없이 바이크로 일을 하는 듯한 남자애들 무리를 길가에서 발견했다. 잘 되었다 싶어 숙소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보여주며 여기를 아냐고 물어보았다. 한 10명쯤 소년들이 우르르 폰 가까이 모여들었다. 곧 어떤 남자애 한 명이 이곳을 안다고 말했다.


이때부터는 가격 흥정이고 할 거 없이 이 청년에게 길 찾기를 의지했다. 이 앳된 소년은 나보고 2000 실링에 자기 바이크를 타라는데, 일단 수락은 했지만 속으론 덜컥 겁이 났다. 오토바이에서 짐 무게를 못 이기고 자빠질까 봐 걱정이 되어서였다. 당시엔 백팩을 등 앞뒤로 메고 1.5리터짜리 생수 2병이 든 시장바구니까지 한쪽 어깨에 든 상태였다.


결국 바이크 소년이 생수병 2개를 들고 난 백팩 2개를 맨 채 바이크를 타기로 했다. 단 내가 안전하다고 느낄 만큼 덩치가 좀 더 큰 바이크를 그 소년이 다른 사람에게 빌리는 조건으로. 그렇게 비포장 시골길을 한 5분쯤 달렸다.


'아.. 웃음거리가 된 건가.'


이때부터 부끄러움은 내 몫이었다. 꾸역꾸역 온갖 짐을 욹어매고 바이크를 탄 꼴이 신기해 보였던 걸까. 탑승한 건 몇 분 되지 않았건만 길가 사람들 모두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다. 낯선 흙길을 내달리니 길가에 있는 애들은 날 가리키며 깔깔대고 웃고 시작했다. 꼬마들은 대놓고 박장대소하며 내가 탄 바이크를 쫓아왔다. 안 그래도 짐 무게 때문에 몸뚱이를 균형 잡느라 정신이 없었건만 내 뒤를 신나게 달려오는 무리를 보니 정신줄이 나가기 시작했다. 바이크 소년은 내 속도 모르고 이 꼬마들과 자기네들 말로 뭐라고 흥겹게 떠들어댔지만.


결국 숙소에 도착. 여긴 일단 여행자가 원하는 걸 확실히 제공해 주는 곳이었다. 뜨거운 물이 이제야 확실히 나오는 곳을 찾았다. 감격의 눈물 흑흑. 게다가 12.5 달러에 화장실 겸 샤워 시설이 갖추어진 독방을 쓰고 이 가격에 조식을 준다. 중식과 석식도 단돈 3-5달러. 또한 단돈 3000실링에 맥주를 먹을 수 있다. 이젠 이 낯선 동네에서 liquor shop을 헤맬 일도 없다. 진짜 세렝기티 일정을 준비하기 위한 베이스캠프 느낌이다.


또한 주인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어 보니 특유의 느긋한 아프리카 스타일이 아니라 바로바로 문제를 해결해 주려는 부지런한 스타일이라 제일 마음에 든다. 사파리 투어 문의도 가능하다고 한다. 이 숙소 평점이 높은 데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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