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타고 30일, 아프리카 - 15
타자라 열차를 타면 탄자니아 수도에 있는 다르에스살람 타자라 기차역을 반드시 거치게 된다. 여기가 출발 혹은 종착역이다.
잠비아에서 탄자니아로 향하는 기차를 탈 경우 다르에스살람에는 새벽녘에 도착할 때가 많다. 전등이란 게 몇 개 없는 깜깜한 기차역 플랫폼을 보곤 놀라진 말자. 대도시 거점 기차역이린 수식어에 걸맞지 않게 ATM 기기가 없다는 걸 뒤늦게 알아도 당황하진 말자. 그저 전기가 귀하기 때문에, 도난 위험이 많기에 그러려니 짐작할 뿐이다.
역 안은 무슨 도둑놈들 소굴처럼 어두침침했다. 입구를 지나 역을 벗어나기 전, 현지인들이 역무원에게 기차표를 내고 가는 게 눈에 띄었다. 이 역은 기차역 정문 밖을 빠져나가면 다시 들어올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아마도 부정 승차를 막으려는 이유 때문이리라. 우리나라처럼 검표 시스템이 자동화되지 않아서 이곳에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무임승차가 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구하기 힘들었던 타자라 급행 기차표를 돌려주려니 아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절차대로 직원에게 표를 건네주려 했다. 그런데 난 그냥 갖고 나가라고 하는 거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표를 간직할 수 있었기에 기분은 좋았다.
열차에서 같은 침대칸을 탔던 와니타는 기차에서 내린 후에도 끝없이 도움을 주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난 이날 밤 위험한 다르에스살람 거리를 목숨 걸고 헤매었을지도 모른다.
나와 같이 타자라 기차칸에서 만나서 짧은 대화라도 했던 사람들이 역 앞에 우르르 나왔다. 자연히 모이게 되니 서로 간단히 굿바이 인사를 했다. 그런데 막상 헤어지려 하는 마당에 와니타는 나보고 자기네가 타는 택시에 같이 타라는 거다. 우선 모두 같이 ATM 기기를 찾고, 그다음엔 택시값을 나누어서 내면 되고, 그 후 자기네는 숙소를 찾을 거고 마지막으로 나를 잔지바르행 페리 터미널에 데려다줄 거라는 거다. 정말 눈물 나도록 고마웠다. 다르에스살람은 새벽에 정말 무서워 보여서였다.
도시에 가로등은 거의 안 보였다. 이들이 저렴한 숙소를 찾아 골목골목을 누비는 동안 난 좁은 길목에서 검은 피부에 흰 두 눈을 번쩍이며 모닥불을 쬐는 흑인들을 볼 수 있었다. 골목마다 드문드문, 이들은 꽤 자주 눈에 띄었다.
'마치 박쥐 같아.'
본능적으로 밤에 각성 상태인 대표 동물, 박쥐가 떠올랐다. 천천히 걸음 하는 속도로 택시가 좁은 골목을 스칠 때마다 나는 창가 너머에 두런두런 모여있는 흑인들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이들은 왜 밤에 잠을 안 잘까?'
와니타 일행들이야 이들이 별로 무섭지 않겠지만 내겐 낯설었다. 인종이 달라서 느끼는 이질감 때문일까. 힘세고 낯선 무리를 보았을 때 본능적으로 느끼는 경계심이랄까. 내가 쫄보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이 밤풍경을 오롯이 기억하고 싶었다. 택시 유리창 밖으로 두 눈에 보이는 모든 걸 선명하게 담아보느라 애써본다.
와니타 등은 새벽에도 체크인을 할 만한 숙소를 찾기까지 약 3 군데를 들렀다. 실속형 잠비아인들은 좀 더 저렴한 곳을 찾으려 했다. 나와 같은 침대칸을 썼던 와니타, 타마라. 그리고 타마라 남편까지. 다들 열차에서 알게 된 이들이다. 하지만 낯선 땅에선 같은 국적 사람들끼리 한 방을 쓸 정도로 이들은 한 푼이라도 아끼려 했다.
마침내 이들이 최종 숙소를 정한 순간, 우리는 작별 인사를 했다. 모두 택시에서 내려 서로서로 포옹을 주고받았다. 내가 너무 감사하다고, 와니타 당신 아니었으면 어둠 속에서 혼자 길을 잃었으리라고 감사를 표한 후 난 이들과 새벽녘에 헤어졌다.
이제 택시에 남은 승객은 나 혼자였다. 내 택시 요금은 와니타가 직접 기사와 협상해 주었다. 그녀가 이 정도면 "합리적이다(reasonable)"라고 말해주었고, 덕분에 요금 바가지를 피할 수 있었다. 타자라 열차 안에서 환전을 할 때도 와니타 덕에 현지인 수준으로 환율 이득을 보았기에 그저 고마웠다.
새벽이라도 아직 칡흙 같은 어둠을 헤치며 택시는 킬리만자로 페리 터미널에 오전 5시경 도착했다. 사방은 깜깜했기에 이곳도 무섭긴 마찬가지였다. 아침 5시 반부터 티켓 부스가 영업을 시작한다고 미리 인터넷에서 봐 둔 터였다. 거리엔 일찍부터 호객 행위 중인 삐끼들이 많았다. 벌써 표를 끊고 대로변에 걸터앉아 기다리는 몇몇 현지인들도 있었다.
'이제 탄자니아에 온 거다.'
밝아오는 해를 보며 마음이 놓였다. 한밤중 다르에스살람에 도착한 후 아침 첫 배를 타기까지 몸에 바짝 힘이 들어갔던 걸까. 서서히 긴장이 풀렸다. 결국 킬리만자로 페리를 무사히 타자마자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선잠을 자다가도 아름다운 해변을 보려 게슴츠레 눈꺼풀 들어 올리기를 내내 반복. 사진을 기계적으로 찍고, 또 졸고. 이렇게 1시간 반이 지나자 무사히 진자바르(Zanzibar)에 도착했다.
아직 유심을 새로 사지도 못한 상황에서 미리 구글맵으로 찾아둔 사진을 보면서 숙소를 찾아갔다. 터미널과 매우 가까운 곳이었고 구글맵 없이도 찾을 만해서, 또한 저렴하기에 예약한 곳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숙소가 허름했다. 와이파이가 잘 터지고, 방이 넓은 것까진 좋았는데 예약 사이트 화면에서 봐 뒀던 베란다가 보이질 않았다. 물어보니 이미 그 방은 예약이 찼다고 한다. 왠지 속은 느낌이었지만 어쩔 수 없다 치고, 이젠 그토록 기다리던 샤워를 하려는데 물이 나오지 않았다. 안 그래도 3일 동안 열차 안에서 더위에 시달리며 샤워를 못했기에 온몸은 찐득찐득하고 땀내가 났다. 아직 현지 유심을 사지 않아 숙소 주인과는 연락할 방도도 없었다. 게다가 내가 받은 열쇠로는 아무리 시도해도 숙소 정문이 제대로 잠기지도, 열리지도 않았다.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답답한 마음에 숙소 정문 밖에 보이는 현지 아저씨들에게 눈짓 손짓으로 도움을 구했다. 문짝에 적힌 숙소 주인 연락처로 전화 걸기, 내가 가진 열쇠로 숙소 문을 잠그고 열기. 낯짝 깔고 이 두 가지를 부탁해 보았다. 이들은 더운 날씨에 손님이 없어서 쉬고 있던 택시 기사와 그늘 아래에서 노닥이던 동네 아재들이었다. 이들은 친절하게도 내가 원하는 시도를 해 주었지만 모두 실패.
여행 중 처음으로 숙소를 잡은 걸 후회했다. 주인에게 전화도 안돼, 문 개폐도 안돼. 이렇게 약 1시간 여를 이렇게 대기한 끝에 드디어 주인이 나타났다. 원래 내가 그와 만나기로 약속했던 시간이었다. 그는 물탱크에 물이 비었다면서 물을 채워주고, 열쇠로 문을 열고 닫는 걸 시연해 주었다. 한국과는 전혀 다른 개폐 방식이었다.
옆방 여행자가
밀린 빨래를 했던 건지,
그 사람이 물을 다 쓴 것 같아요.
숙소 주인은 이렇게 말한다. 새삼 아프리카에서 물은 귀하다는 걸 실감하며 일단 하룻밤만 버티자고 결심했다. 침대 이불도 상태가 그닥이다.
'찝찝해, 이 침대 시트는 제대로 빨지 않은 게 틀림없어. 이렇게 꿉꿉한 냄새가 나니까.'
여행을 하면 할수록 내가 까다로운 한국 사람이란 걸 느낀다. 청결에 민감하지 않아야 마음 편하게 먹고 자고 할 텐데, 내가 아직 정신을 못 차렸나 보다. 그저 내일은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
잔지바르 섬에 발을 디디면 관광객들은 대개 스톤타운을 구경한다. 지명 뜻 그대로 돌로 만들어진 구시가지이다. 그런데 스톤타운 골목길은 간격이 정말로 좁다. 다녀보면 알게 되지만 골목이 좁은 데는 이유가 있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그늘이 지면 그 위에 난 길로 사람들이 지나가게끔 하기 위해서다. 즉, 스톤타운 미로는 태양을 피하기 위한 이곳 옛사람들의 지혜다. 그만큼 한낮 열기는 무서울 정도로 뜨겁다.
우선 유심을 샀다. 숙소 사장에게 유심 가게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았더니, 그는 내게 길 안내 대신 간단한 한 문장으로 설명해 주었다.
도로에 우산들이 보일 거예요.
즉, 내가 스톤타운을 쭉 걸어가다 보면 우산들이 펼쳐진 도로를 마주할 거란 뜻이다. 그 차양 넓은 우산들이 하나하나 다 유심 가게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 말은 사실이었다. 스톤타운 골목길을 누가 설명해 주더라도 관광객인 내가 제대로 알아먹기는 불가능했을 거다. 하지만 거미줄처럼 뒤엉킨 길을 벗어나면 그가 말한 대로 현지 시장과 가게들이 모여있는 대로변이 나온다. 도로가엔 차양 넓은 우산들이 펼쳐져 있다. 이 파라솔들은 다 유심 가게다.
유심 가게 직원은 내가 관광객이 분명해 보이니 현지인보다 약 다섯 배나 높은 가격을 요구한다. 또한 요금제 가격은 별도라고 하니 난 제대로 호구로 찍힌 셈이다. 조목조목 인터넷에서 사전에 살펴본 가격대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너무 비싸다고 말하자 그는 또다시 말을 바꾼다. 결국 그는 한 달짜리 5G(기가) Vodacom 회사 요금제를 유심 가격과 합쳐서 12,000실링(약 6,400원)에 개통시켜 주었다. 현지인 가격이란 설명을 덧붙이면서.
여긴 또 왜 이리 삐끼가 많은지. 아프리카 관광지에서 어딜 가나 삐끼는 득실대지만 참 새삼스럽다. 유심을 개통하자 이젠 어떤 향신료 가게 남자가 나를 붙잡는다. 씨알도 안 먹힌다는 표정으로 단박에 거절해도 그는 나를 부득부득 쫓아왔다. 여기가 저기 같은 복잡한 길을 그는 잘도 누볐다. 스톤타운에선 길을 잃어야만 제 맛이라고 말할 정도로 골목 자체가 관광객들에겐 볼거리다.
결국 그 현지인 남자는 나를 어떤 레스토랑에 안내했다.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내게 팁(Tip)을 받기 위해서, 투어를 연계시키려고, 혹은 내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리다가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로 연속 안내를 한 다음 내게 뭐라도 팔기 위해서다. 내가 모두 다 거절하자 그럼 코카콜라(Coca-Cola)라도 한 잔 사달라고 한다. 단호히 거절하면서 내가 처음부터 너보고 나를 따라오지 말아 달라고 분명히 말했다고 하자 그제야 관광객을 향한 미소를 걷고 굳은 얼굴로 바뀐 채 꽁무니를 뺀다. 표정 변화는 참으로 드라마틱하게, 순식간이다.
잔지바르에선 한낮엔 어디 그늘에 있어야 한다. 속으론 시원한 냉커피 한 잔이 간절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유명한 잔지바르 카페 입구에 들어가 보니 웬만한 음료는 7000-9000 실링이 훌쩍 넘었다. 원화로 치면 대략 5천 원 대이니 한국이라면 그냥저냥 돈 내고 먹을만하지만 여기 물가를 고려하면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다. 이런 카페는 현지인이 아닌 관광객들만이 이용 가능하다. 나란 인간은 간사해져서 많은 금액을 환전한 게 아닌 터라 이런 가게를 피해 한 푼이라도 아끼고 싶었다. 결국 살인 더위를 피해 일단 숙소에 들어갔다가 태양이 사그라들 때쯤 다시 거리로 나섰다.
해가 지기 전엔 거리에 사람이 별로 없더니 노을이 지자 슬슬 사람들이 길을 메운다. 역시, 더위엔 장사가 없다. 이곳 사람들은 저녁이 가까워질수록 활동량이 많아지는 생활 리듬에 적응했으리라.
Night Food Market에 나가서 관광객에게 많이 알려진 진자바르 피자를 먹어 보았다. 시장에선 3000실링에 파는 것도 보았는데 해변가 야시장에선 보통 5000-6000 실링이다. 먹어보니 우리나라로 치면 짭짤한 녹두전 같은 맛이랄까. 사실 내 입엔 아프리카 음식은 보통 너무 짜거나 달다. 어린아이들부터 탄산음료를 즐겨마시는 게 눈에 보이고 식습관도 꽤 서구화된 듯하다.
'남들은 저 음식 위에 파리가 앉아있는 걸 보고도 맛나게 먹었을까.'
잔지바르를 다녀온 이들은 야시장에서 이것저것 많이 주워 먹고 후기도 올리는 거 같은데 난 그 위에 파리가 앉아 있는 모습이나 요리사들이 정말 더러운 플라스틱 그릇에 담은 요리 재료를 섞으며 손가락이 재료에 닿는 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사실 이런 걸 안 보아야 그냥 음식을 먹는 건데.
실제 와보면 스톤타운은 꽤 지저분한 지역이다. 거리엔 쓰레기들이 굴러다니고 허름한, 혹은 부서진 건물 잔해가 그대로 길가에 남아있다. 하지만 사진 속 노을이나 골목은 그림처럼 예쁘다. 정말 신기하다. 해 질 녘 야시장 근처 해변에 몰려있는 청년들은 풍덩풍덩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이들은 자기 순서가 오면 “진자바르” 구호를 외치며 마치 물고기처럼 포물선을 그리며 서슴없이 바다로 몸을 던졌다. 열기를 녹이기 위해서일까, 그저 재미로 하는 걸까. 이유는 몰라도 눈이 즐겁다. 내 몸도 시원해지는 착각이 든다.
다이빙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바다에 뛰어든 젊은 남자들은 다시 뭍으로 올라와서 앞사람과는 다른 포즈로 새로운 다이빙을 한다. 자존심 대결이랄까. 이 광경을 지켜보는 관객들이 많아질수록 이들은 더욱 목청을 높여 "잔지바르"를 외친다. 다이빙 행렬은 점점 꼬리에 꼬리를 물더니 급기야 어떤 서양인 할아버지도 바다에 뛰어드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자유로워 보였다.
결국 휴양지로 유명한 능위(Nungwi), 파제(Paje) 해변은 시간이 안 되어 못 갔다. 잔지바르에선 느긋하게 바다를 즐겨야 제맛일 텐데 난 그걸 못해보고 떠나야만 했다. 어떻게든 능위라도 가보려고 숙소를 검색했지만 결국 포기했다. 능위를 들렀다가 다시 킬리만자로 등반, 세렝기티 투어까지 하루도 안 쉬고 강행군을 한다는 게 체력적으로 버거워서였다. 더군다나 물놀이를 하려면 일행이 있어야 재미도 있을 텐데 나 혼자 투어도 안 가고 뭘 즐기려나 생각하니 더더욱 내키지 않았다.
사실 풍경만 즐기는 셈 치고 당일 투어로 능위를 다녀오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내가 전날까지 타자라 열차를 타서 그랬던 걸까. 이날엔 그저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잘 먹고 쉬고만 싶었다. 이젠 이번 여행 중 하이라이트를 즐기러 떠나야지.
킬리만자로 산으로, 그리고 세렝기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