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타고 30일, 아프리카 - 14
타자라 열차를 탄 후 2일 차 저녁 6-8시 사이에 잠비아와 탄자니아 간 국경을 넘었다. 이를 위해 우선 모든 외국인 승객은 열차에서 내려야 했다(23년 8월 기준). 나는 잠비아에서 탄자니아로 넘어가는 경로였기에 잠비아 쪽 구경 검문소를 먼저 통과했다.
자, 내리자.
여기가 잠비아 쪽 국경이라며 같은 침대칸 승객이 나를 챙긴다. 잠비아 여인 타마라와 와니타. 그들은 내겐 친절한 열차 안내원처럼 눈이 부시게 보인다. 이들이 한꺼번에 소지품 짐을 챙기고 나가길래 나도 눈치껏 따라 나갔다. 내가 어리바리해 보이니 이젠 와니타가 나를 먼저 챙긴다. 그리고 대기줄 마지막에서 2번째 순서로 출국 도장을 매우 쉽게 받았다.
우선 비자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잠비아 쪽 국경 근처 기차역 옆에 자리한 검문소 건물까지 걸어가서 차례로 줄을 섰다. 내 차례가 되자 검문소 직원은 나를 보며 잠비아 관광은 잘했냐고 웃으며 묻더니 카메라로 내내 얼굴 사진을 한 방 찍고 신속히 출국 도장을 찍어주었다. 그저 대기줄을 기다리는 시간이 좀 길 뿐이었다.
그 후 30분-1시간쯤 지나서 탄자니아 국경에 이르자 입국 비자를 받는 순서가 남아있었다. 이때가 참 아수라장이었다. 특히 탄자니아 공무원들의 꼬락서니가 가관이었다. 우선 처음에 '황열병 접종 증명서' 검사를 하는데 나를 비롯한 흰 피부빛 서양인들은 겉으로만 서류를 보는 척하더니 제대로 펼쳐보지도 않고 다 되었다고, 대기하란다. 하지만 다른 잠비아인들은 기나긴 시간을 기다리며 까다로운 검사를 받아야만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타마라는 검문소 직원에게 100콰차를 더 내야만 했다고 한다. 잠비아인들은 코로나 접종 증명서가 없는 경우 뇌물을 찔러주는 식으로 서류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이게 부정적인 방법이라는 생각 이전에 현지인들에게 예방 접종 기회가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는 듯한 아프리카 현실이 안타깝게만 보였다.
이런 식으로 얼렁뚱땅 검역 절차가 끝나면 비자 발급 순서가 남아 있었다. 너무나 황량한, 전쟁 영화 속 포로수용소 비슷한 건물 안에서 여권 심사와 비자 발급이 진행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게다가 건물에 매달려 있는 전등은 단 하나. 하지만 어두침침해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 옹기종기 모인 관광객들, 현지인들, 국경 공무원들은 모두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서 서류들을 들여다봐야만 했다.
보통 국경 검문소에서 서류 심사를 받을 땐 매우 엄격한 분위기에서 유리 부스 안에 자리 잡은 공무원들이 처리한다는 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로 치면 새마을운동 시절쯤에나 썼을 거 같은 낡은 책상 하나만 덩그러니 있을 뿐, 그 앞에 자리 잡은 직원 2명이 한 명씩 차례로 대기자를 받아 처리를 해주려 하는 거다.
무엇보다도 입국 신고서를 미리 쓰도록 종이를 나누어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 공무원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사람들 앞에서 갑자기 흰 종이를 공중에 흩뿌리듯 진짜로 입국 신고서 서류를 한꺼번에 뿌렸다. 그리곤 이걸 다 쓰는 순서대로 비자를 받으면 된다고 외쳤다. 미리 나눠 주고 쓰게끔 해 주었다면 오죽 좋았을까. 이미 추운 날씨 속에서 검문을 받아야 하는 모든 사람들은 30분 이상 오들오들 추위에 떨면서 창문 유리도 없이 거의 골조만 남은 건물 안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게다가 여긴 펜이라곤 없었다. 이곳에서 볼펜은 소중한 제품인 듯하다. 천만다행으로 내 소지품 배낭엔 볼펜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누군가에게 펜을 빌릴 때까지 한참 기다려야 했을 거다. 같은 침대칸 승객인 타마라는 내게 펜을 또다시 빌려갔다. 그녀는 이미 열차 여행 중 여러 번 내게 볼펜을 빌려간 차였다. 또한 나보다 나이가 많은 중년 여성 와니타는 눈이 침침해서 종이 위 글자가 안 보인다고 황당해한다. 건물 안에 유일하게 매달려 있는 흐릿한 전등을 의지해서 복사도 흐릿하게 된 입국 신고서에 찬 손을 녹이며 필기를 하느라 다들 난리였다.
Where is the money?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행히 비자 발급 줄을 빨리 서서 내 순서가 다가왔다. 검문소 직원은 내가 쓴 서류는 제대로 읽지도 않더니 돈을 내놓으라고 한다. 입국 후 묵을 숙소 같은 건 서류에 대충 가짜로 써도 아무도 모르는 분위기였다. 내가 100달러를 내밀고 50달러를 달라고 하니 그는 짜증을 냈다. 내 앞 순서인 서양인도 100달러, 내가 100달러, 내 뒤 서양인이 50달러, 그 뒤 서양인이 또 100달러.
줄을 선 사람들은 다들 난감해했다. 탄자니아 공무원들은 자기네는 잔돈이 없다고 말한다. 그저 막무가내로 누군가 50달러를 바꿔줄 인간이 나타나길 바라는 수 밖엔 없었다.
이리 와.
그때 나의 구원자, 와니타가 또 등장했다. 나를 슬쩍 부르더니 내가 가진 100달러를 50달러 2장으로 바꾸어준 것이다. 내가 그녀에게 볼펜을 빌려주었기에 아마도 그녀가 이런 특별한 친절을 베풀었으리라.
잔돈을 받자 난 이제 비자 발급비 영수증과 비자를 달라고 했다. 그 사무원이 할 일은 날짜 도장을 찍는 것 밖엔 없어 보였다. 그러니 또 공무원 행세인지 자신은 내게 아직 비자를 돌려주지 않았다고, 뭐 이렇게 급하냐고 말한다. 급한 한국인 티가 이럴 때 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말 그는 하는 일이 없어 보였다.
국경 검문소에서 다들 심사를 받는 동안 열차는 단전이 되었다. 하지만 모두가 다시 열차에 탔음에도 전기는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도시 저녁과는 다르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난 어쩌다 3등석 칸에 올라타버렸다. 이젠 2등석 칸을 지나 1등석 구역까지 건너가야 하는데 발을 디디기 어두울 정도로 열차 안은 암흑이었다.
다급히 헤드랜턴을 켰다. 내 앞 뒤로 열차에 올라탄 사람들이 나보고 "땡큐"라고 인사를 한다. 여긴 3등석 칸인데 이루 말할 수 없는 악취가 코를 찔렀다. 아마도 화장실과 객실에서 나는 냄새가 섞였으리라.
사실 타자라 열차 겉모습을 보면 1,2,3등석이라는 표시가 굳이 없어도 한눈에 구별할 수 있다. 3등석으로 갈수록 열차 외벽은 새까만 재가 뒤덮은 듯한 색깔이다. 또한 악취가 진동한다.
'도대체 어떻게 이 열차를 탈 수 있을까.'
내 기준으론 감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감히 이들의 궁핍한 삶을 헤아릴 수 있을까.
무사히 비자를 받은 후 열차로 돌아와서 와니타에게 달러를 바꿔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사실 현지인 승객인 와니타와 타마라에겐 내가 이보다 더 많은 도움을 받았다. 국경에서 검문을 받을 땐 짐 도난 가능성을 까맣게 잊은 채 기차에서 내렸는데 알고 보니 그녀들은 열차 직원에게 침대 칸 출입문을 다 잠가달라고 이미 부탁을 해 놓았었다.
도움받은 건 이뿐만이 아니다. 잠비아 인들과 같은 칸에 있으니 국경 환전상이 내게도 환율 후려치기를 하지 못했다. 원래 국경을 넘는 열차 안에선 다른 선택지가 없으니 관광객은 울며 겨자 먹기로 환전할 수 밖엔 없다고 들은 터였다. 그런데 오히려 잠비아 시내에서 내가 환전할 때보다도 환율을 매우 잘 쳐 주어서 정말 놀랐다. 그 덕에 난 밥 한 끼를 열차에서 더 사 먹을 수 있었다. 특히나 장사꾼인 와니타가 뭐라고 말하니 환전상이 비율을 속이지 못한 듯하다. 땡큐 와니타.
와니타와 식당에서 노닥이던 중 열차는 국경 인근에서 자꾸 멈췄다. 내려가서 좀 걷자고 그녀가 말한다. 이렇게 열차가 멈출 때마다 기차역 플랫폼 앞으로 나온 탄자니아 상인들이 엄청 많았다. 그들은 기차에서 내린 승객들에게 다양한 먹거리들을 팔았다. 튀긴 바나나, 건조한 검은빛 생선, 무슨 뿌리 식물을 쪄 놓은 것.
이 모든 품목들을 와니타가 현지 가이드 노릇을 해가며 다 설명해 주었다. 이곳에선 흔하디 흔한 망고 나무 아래에서 그녀가 내 개인 사진도 한 방 찍어 주고, 나도 그녀 사진을 열차 배경으로 찍고. 참고로 와니타는 아까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내가 먹었던 쌀은 탄자니아 쌀이며 잠비아 쌀이 아니라고 말했다. 잠비아보다 탄자니아 쌀 품질이 최고라고 한다. 그녀는 기차 플랫폼에 장사터를 잡은 상인들 중 탄자니아 쌀을 들고 나온 여인과 가격을 흥정하며 쌀 한 자루를 사보려고 시도했지만 과연 비싸다며 그냥 포기했다.
열차는 꽤 오래 국경 근처 어떤 기차역애 머물렀다. 아직 10시간 이상은 더 가야 한다고 와니타가 말한다. 우리 둘이선 계속 기차 연착을 욕하고 있다. 이와 곁들여서 잠비아 버스 연착도 함께 같이 욕하던 중, 그녀는 'UVisit'라는 잠비아 버스 회사는 연착을 안 해서 좋다고 내게 말했다.
기차역 휴식을 마친 후 열차 칸으로 돌아와 와니타에게 그동안 친절을 베풀어준 답례로 한국에서 가져온 파스 두 개를 건넸다. 그녀는 이걸 처음 본다고, 안 그래도 다르에스살람에선 아주 많이 걸어 다니며 일해야 하는데 고맙다고 말한다. 사실 그녀가 열차 안에서 내 윗 칸에 오르락내리락할 때 무릎을 계속 써야 하니 통증 때문에 고생하는 거 같아서 지금 바로 쓰라고 건네준 거였다.
그런데 그녀는 내 바람과는 다르게 파스를 아껴두었다가 다르에스살람에서 쓰겠다고 한다. 그래서 이걸 밀폐할 수 있는 지퍼 비닐팩에 넣어서 보관하라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와니타는 그런 게 전혀 없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내 황열병 예방접종 증명서를 넣어둔 지퍼백을 벗겨서 건네주었다. 이건 여분으로 쟁여둔 다른 비닐 포장지에 넣으면 되니까. 이렇게 해야 무조건 친절을 받기만 한 내 마음도 좀 편해질 거 같았다.
그나저나 탄자니아로 넘어오니 본격적인 초원과 그 너머 울창한 산과 숲이 보인다. 안쪽 칸 창문엔 초원과 밭이, 반대편 창문엔 울창한 열대나무가 자리한 숲과 산이 보인다. 이 열차 창문만 먼지가 없다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아도 충분히 경치 구경을 할 수 있지만 덕지덕지 때가 낀 창문 위 틈으로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있다. 왠지 동물들도 나타날 듯한 아름다운 초원이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들 복도로 나와서 시원 서늘한 저녁 바람을 쐰다. 다른 침대 칸에선 아프리카 여성들이 소리 높여 노래를 합창한다. 현지 음악인지, 가스펠인지, 알 길은 없지만 이들은 항상 기쁨이 넘친다. 즐겁게 사진을 찍고, 웃으며 노래하고. 그 사이에 염세적이고 수줍은 한국인 여행자 한 사람이 쭈뼛쭈뼛, 끼어있는 꼴이다. 이들은 기쁨 유전자를 타고난 건가. 이들의 밝은 표정을 지켜보며 새삼스레 내 차가운 얼굴이 부끄러울 뿐이다.
사람 구경, 자연 구경. 이 맛에 타자라 열차를 타는구나.
하지만 타자라 열차는 한 번만 타련다. 제대로 씻지 못한 채 더위 감옥을 견디는 건 일생 중 한 번으로 족하다. 잠비아 여인 타마라도 앞으로 다신 이 열차를 탈 일은 없을 거라고 혀를 내두른다.
열차는 예정 시간보다 약 3시간 늦게 탄자니아 수도, 다르에스살람 기차역에 새벽 3시 40분경 도착했다. 종착역 안내 방송 같은 건 없다. 그저 직감으로 알 뿐. 열차 감옥에서 드디어 해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