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타고 30일, 아프리카 - 12
타자라 (TAZARA) 열차는 배낭여행자들에게 특히 유명하다. 잠비아와 탄자니아를 오가는 TANZANIA-ZAMBIA RAILWAY 약자인 타자라 열차는 급행과 완행 노선이 있다. 급행열차는 2박 3일, 완행으론 3박 4일이 걸린다곤 하지만 시속 60km 내외로 총 1900km에 달하는 구간을 천천히 달리는 열차가 언제 목적지에 도달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돈 없는 여행자들이 이 기차를 이용하는 이유는 바로 저렴한 표 값 때문이다. 하지만 현지인들에게 이 가격은 결코 싼 게 아니다. 타자라 열차 안에는 1,2,3등석이 있고 푼돈이라도 아껴야 하는 서민일수록 2등석, 혹은 더 저렴한 3등석을 이용한다.
이제 이 열차를 타기 전에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살펴보자.
타자라 열차표는 온라인에서 구할 수 없다. 전화나 왓츠앱(Whats App)으로 우선 특정한 날에 출발하는 열차표를 사고 싶다고 직접 타자라 열차 회사에 연락을 해야 한다. 홈페이지 상에 담당자 연락처가 나와 있다. 탄자니아에서 잠비아로 이동할 때는 출발역인 다르에스살람 역 담당자에게, 잠비아에서 탄자니아로 갈 때는 출발역인 카피리 음포시 역 담당자에게 연락을 해보자.
이렇게 연락하는 과정 자체가 번거롭다. 난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담당자에게 메일을 남겼지만 아무런 회신이 없었다. 그래서 담당자 연락처들을 왓츠앱에 등록한 후 유선 연락을 시도했다. 하지만 통화 실패.
마지막으로 왓츠앱에 메시지를 남겼을 땐 며칠 후 답글이 왔지만 댓글 알람을 늦게 확인하고 대댓글을 남기자 또다시 감감무소식이었다. 결국 담당자가 답글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응답해야 제대로 대화가 가능할 것 같았다.
여행객들은 보통 급행열차 1등석 침대칸, 아래 침대를 선호한다. 이렇게 외국 여행자들이 사전 예약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좀 더 편하게 여행을 하기 위해서다. 1등석을 타야 그나마 쾌적한 시설에서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이 열차가 유명해져서 1등석 침대칸은 빨리 매진되니 최소 1주일-10일 전부터 구하는 게 좋다.
'아.. 결국 타자라 하우스나 기차역까지 가서 현장 구매해야 하는 건가.'
점점 답답해졌다. 여행 일정 상 열차 회사 사무소까지 직접 가서 표를 살 경우 그토록 원했던 1등석 침대칸 표를 사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사막 투어를 떠나기 전날 오후까지도 도무지 담당자와 연락이 되질 않았다. 투어를 떠나기 전, 인터넷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마지막 날 오후가 되자 진짜로 똥줄이 타기 시작했다. 홈페이지에는 열차 예약 문의가 가능한 시간이 평일 오전 7시 30분 - 오후 5시까지라고 나와 있었다. 1등석 표를 예약하지 못하면 막상 기차를 타더라도 고생길이 훤해 보였다.
What do you want?
아...!! 댓글 알람이 울렸다. 왓츠앱으로 담당자에게 바로 유선 연락을 시도했다. 그런데 네트워크 상태가 너무 안 좋았다. 나미비아에 있을 때 왓츠앱으로 잠비아 쪽 담당자에게 국외 전화를 하려니 상대방 목소리가 도무지 들리지 않았다. 저 멀리서 여직원이 그냥 메시지를 남겨달라고 하는 소리가 뚝뚝 끊기듯 들리는 걸 겨우 듣고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이름, 출발일, 원하는 열차표(운행구간, 급/완행, 좌석 등급)를 줄줄이 적어 댓글을 남겼다.
그런데 바로 상대가 답글을 줄 줄 알았건만 또다시 무반응이었다. 근무시간이 끝나는 오후 5시가 넘어도 답은 오지 않았기에 마음속으로 표 구하기를 포기했건만, 오후 7시가 넘어서야 답이 왔다. 내 이름으로 예약을 해 놓겠다는 거다. 그 순간 답답한 속이 비로소 시원해졌다. 길게 정성 들여 Thank you 메시지를 남기며 드디어 한시름 놓았던 기억이 난다.
어떤 사람은 현지인에게 돈을 약간 쥐어주고 부탁해서 유선 전화로 담당자에게 연락해서 표를 구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무슨 방법이든 원하는 출발일보다 여유 있게 시간을 두고 표 구하기를 시도해 보자. 담당자와 연락이 되어 이렇게 확답을 얻었다면 잠비아에서 출발할 경우 출발일 전날까지 루사카 버스 터미널 바로 옆에 있는 타자라 하우스(TAZARA House) 건물에 가거나 카피리 음포시 기차역에 출발일 당일날 최소 1-2시간 일찍 도착해서 표 값을 잠비아 화폐인 콰차로 지불하고 예약해 둔 표를 수령하면 된다.
타자라 열차 안에서는 삼시세끼 식사를 할 수 있다. 매끼 4천 원 정도로 괜찮은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또한 맥주를 판다. 먹거리를 사 먹을 만큼은 현금을 갖고 타야 한다.
대충 열차에서 쓸 돈을 가늠해 보니 현금이 좀 부족해 보였다. 그래서 루사카 버스 터미널에서 사설 환전상을 찾아 8달러를 잠비아 화폐(콰차)로 바꾸었다. 원래 루사카 버스터미널 내 사설 환전소 위치를 물어물어 찾아가 보았더니 오전 9시도 안 된 시간이라 아직 영업 전이었다. 하지만 현지 삐끼들은 관광객들의 관상을 읽나 보다. 환전이 필요하냐고 누가 묻더니 내 앞에 어떤 환전상 남자를 데려다준다. 하지만 환전하려는 화폐 단위가 작으니 환율도 짜게 쳐 주는데 사실상 마지막 환전 기회라 어쩔 수 없었다.
아프리카 내 어느 나라에서든 지역 간 장거리 이동을 한다는 건 쉽지 않다. 배낭여행자에겐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버스, 오토바이, 자동 인력거인 툭툭(tuk tuk) 등을 타고 현지 기차역까지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체력과 시간이 필요한 노동이다. 그래도 이 과정을 오롯이 혼자 해낼 수 있음을, 그렇게 살아있음을 느끼는 게 배낭여행이 주는 보람 아닐까?
잠비아에서 탄자니아로 이동할 예정이었기에 우선 잠비아 수도 루사카에서 카피리 음포시 버스 터미널(Kapiri-Mposhi main bus station)까지 버스로 갔다. 출발일 전날 루사카(Lusaka) 버스터미널에서 현금을 주고 다음날 오전 9시에 출발하는 첫차를 예약했다. 목적지까지 소요 시간이 최대 3시간이라고 하는 직원 말을 철석같이 믿어버리곤 이튿날 아침엔 모처럼 늦게 숙소를 빠져나왔다. 이번엔 여유롭게 목적지에 도착해서 열차를 타기 전 점심도 여유 있게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어제 버스 연착으로 고생해 놓고도 왜 또 버스 회사 직원 말을 믿었을까. 이젠 얘네들의 시간관념은 정말 믿지 못하겠다. 이들은 출발 시간부터 제대로 지키질 않는다. 버스는 9시 40분이 되어서야 출발했다. 여기 버스들은 다른 나라에서 사용하던 걸 들여온 건지, 워낙 차량을 오래 몰아서 그런지 꼬질꼬질한 티가 역력하다. 이런 차에 사람들은 물건들을 실어 나르려고 바리바리 짐을 싸 온 걸 버스 아래 짐칸에 끝없이 집어넣는데, 이걸 하느라 버스 출발 시간이 길어졌다.
우선 어제 끊어둔 버스값 지불 영수증을 내미니 나보고 버스표로 교환을 하라고 한다. 영수증을 지불하고 좌석 번호를 받아야 버스에 탈 수 있다고 해서 좌석표를 발급해 주는 무리로 다가갔다. 내가 탈 버스 바로 옆에 현지인들이 모여있는 게 눈에 바로 띄었다. 도대체 뭘 보길래 저런 동그라미 모양으로 옹기종기 뭉쳐있는 걸까?
이 무리에 가까이 다가갔다. 이들은 모두 A4 크기 정도 되는 어떤 종이를 진지하게 쳐다보는 중이었다.
지금 좌석 배정 중이구나..!
이제야 알았다. 이들은 나와 같은 버스를 탈 승객들이었던 거다. 이들은 버스 안 좌석 그림이 그려진 종이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버스회사 직원에게 각자 원하는 좌석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미 복도 쪽 좋은 자리는 다 나간 거 같았다.
아뿔싸.. 괜히 숙소에서 늦게 나왔네.
그런데 이 순간 버스회사 직원이 난 1번 맨 앞 창가 좌석으로 예약되었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내가 아무래도 외국인이다 보니 현지인들 틈바구니에 섞여서 불편하지 않게끔 자리를 빼놓은 걸까. 그 버스를 탄 외국인은 나 한 명뿐이었기에 이런 상상을 해 보았다.
안타깝게도 이 좌석은 찜통 그 자체였다. 에어컨이라곤 없는 버스에서 내 좌석엔 창문도 열리지 않아 땀이 줄줄 흐르고 숨쉬기 괴로웠다. 게다가 내 자리는 해가 정면으로 내리쬐는 방향이었다. 답답한 숨을 쉬며 이들이 호언장담했던 3시간이 아닌, 거의 6시간을 견뎌야 했다.
버스는 드디어 카피리 음포시 정류소(지도 - 회색 사각형 음영 부분)에 섰다. 이때가 원래 12시여야 했지만 2시 반도 훌쩍 넘었다. 내가 탈 급행열차는 오후 4시에 출발하기에 서둘러 정류장 근처 슈퍼에서 장을 보았다.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빨간색 표시를 한 곳이 버스 정류장 바로 옆에 있는 대형 마트이다. 열차에서 먹을 물과 과자, 과일 등 간식을 이곳에서 사면 된다.
버스 정류장에서 타자라 열차가 출발하는 뉴 카프리 움프시 역까지 도보로 이동할 경우 거리는 약 2km, 25분 정도 걸린다. 평소라면 충분히 걸어갈 거리지만 생수 등 짐을 바리바리 짊어지니 너무 힘들었다. 결국 기차역까지 택시를 잡아 탔다. 인터넷에서는 30콰차로 갔다는 수기를 읽었건만, 여행자로 보이니 기사들은 나보고 80, 75콰차를 부른다. 내가 씨알도 안 먹힌다는 표정으로 40콰차를 말하니 50콰차 이하는 안 된다면서 50콰차(한화 약 3,200원)를 결국 줬다. 그냥 30콰차로 불렀다면 40콰차로 절충했을까. 아님 현지 물가도 갈수록 올랐기에 50콰차일까. 너무 지쳐서 협상이고 나발이고 그냥 택시를 탔다.
그런데 막상 택시를 타고 보니 버스 정류장과 기차역은 너무 가까워서 5분도 걸리지 않았다. 50콰차를 낸 게 다시금 후회가 되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관광객은 봉인 걸.
슈퍼마켓에서 늦은 점심거리로 샀던 치킨 한 조각, 누들(noodle) 조금, 감자조림(mashed potato) 같은 걸 기차역 앞 광장에서 생수와 먹었다. 먹고 나니 3시. 혼자 여기까지 머나먼 길을 온 게 새삼 믿기지 않았다. 기차역에 도착한 걸 축하할 겸 차가운 병맥주 한 병을 역사 앞에서 들이켰다.
엊그제부터 오늘까지 얼마나 멀리 이동한 거지..?
이틀 전 오전엔 짐바브웨에 있었고, 오후엔 걸어서 국경을 넘어 잠비아 리빙스톤에 도착했다. 다음날 어젠 리빙스톤에서 루사카로, 오늘은 루사카에서 카피리 음포시로. 이젠 여기서 탄자니아로.. 이렇게 멀리 3일 동안 이렇게 멀리 이동했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았다. 배낭 2개, 10kg가 넘는 짐을 맨 채 걷고, 타고, 때론 달리는 과정 자체가 여행이었다.
열차 출발 1시간 전, 오후 3시부터 보딩 타임(boarding time)이었기에 1등석 침대칸에 승차했다.
예약했던 침대칸에 들어가자 저 사진과 같은 220V 전기 콘센트가 벽면에 보였다. 아프리카 현지에서 익숙하게 보았던 모양이다. 보통 다른 데서는 한국에서 쓰던 220V 전선을 삼각형 모양 구멍 중 아랫부분 두 군데에 끼워 넣으면 잘 들어갔다. 그런데 이 열차에선 도무지 안 들어가는 게 아닌가.
당황스러웠다. 역 근처엔 이런 걸 파는 가게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급한 마음에 열차에서 다시 내려 플랫폼에 있는 역 직원 아무나 붙잡고 열차에서 찍은 콘센트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런 걸 어디 파는데 없냐고 물어보았다. 그러니 그 직원은 내가 가진 한국형 전선을 보여달라고 하더니 이 콘센트에도 연결이 된다고 말하는 거다. 그러면서 그는 기차역 플랫폼 벽에 붙어있는 아무 콘센트를 가지고 내게 시범을 보여주었다.
저 삼각형 모양에서 맨 위쪽 구멍에는 자기가 가진 열쇠 끝을 쑤셔 넣으며 동시에 삼각형 아래 두 구멍엔 한국형 돼지코를 쑤셔 넣으니 진짜 들어가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서툰 영어로 열심히 설명을 해주는데, 뭔가 뾰족한 걸 삼각형 윗구멍에 넣고, 동시에 아랫구멍엔 220V 전선 돼지코를 끼워 넣으면 된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마스터에게 비법을 전수받은 기분이었다. 정말 고맙다고 인사하고 다시 열차 안으로 돌아가 여러 번 연습을 하니 전선을 잘 끼워 넣을 수 있었다. 목마른 자가 마실 물을 찾은 듯, 전기를 쓸 수 있다는 사실에 비로소 안심했다.
기차는 웬일로 16시 정시에 출발했다. 같은 칸 승객인 잠비아 여성 '카말라'와 '와니타'도 정시 출발이 이상하다고 말한다. 아프리카 타임, 언제쯤 익숙해질까.
* 이 글은 뉴스 앱 '헤드라잇' [나혼자 잠보! 아프리카 배낭여행] 2023.10.15 콘텐츠로 발행되었습니다.
https://m.oheadline.com/articles/wbP99X6OsR-R7l5q5b8os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