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타고 30일, 아프리카 - 13
잠비아와 탄자니아를 오가는 타자라 (TAZARA) 열차를 타봤다. 여행 중 표를 구하느라, 그리고 기차역까지 이동해 오느라 고된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덕분에 2박 3일 동안 이 안에서 머무르며 현지인들과 완전히 섞여 지냈다. 이런 게 여행 중 값진 경험 아닐까. 검은 레게 머리, 검은 피부를 한 사람들과 같은 침대칸에서 며칠을 살아보는 건 내 평생 여기에서만 가능하리라.
좋은 시설을 기대하진 말자. 급행 노선은 신식 열차로 바뀌었다고 하지만 1등석이라고 해도 꾀죄죄한 느낌인 데다가 침대칸도 좁다. 객실 당 총 4명이 탈 수 있는데 경비 여유가 있는 사람은 한 객실을 통째로 구매하기도 한다.
열차를 타려고 카피리 음포시 기차역(New Kapiri-Mposhi Railway Station)에 도착한 날, 현지인 간에 존재하는 경제적 신분 질서를 한눈에 목격했다. 3일간 기차여행 중에도 열차 안, 밖에서 현지인간 빈부 격차는 뚜렷이 보였다. 이 광경을 보기 전엔 공항만큼 부의 격차를 뚜렷이 바라볼 수 있는 장소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타자라 기차도 그렇다. 이 가난한 대륙에선 표 등급에 따라 여행하는 모습이 극명하게 갈린다.
외국 여행자들은 무조건 침대칸인 1등석 급행열차를 예매한다. 돈 없는 관광객들이 이 기차를 이용하는 이유는 바로 저렴한 표 값 때문이다. 급행열차 1등석 침대칸 기준으로 한 좌석당 834콰차(약 52,974원 : 23년 7월 기준)이다.
외국인에겐 열차표 값이 비행기와는 비교가 안 되는 사랑스러운 가격 아닌가. 하지만 현지인에게 1등급 침대칸 표값은 무시 못할 수준일 거다. 나와 같은 1등석 침대칸을 탔던 잠비아 여성 2명은 집안이 꽤 부유해 보였다.
잠비아 중년 여성' 와니타'. 그녀는 잠비아와 탄자니아를 오가며 무역업을 한다고 했다. 집안사람 중 의료인과 법조인, 일본까지 유학을 가서 공부하는 학생도 있을 정도다.
두 딸을 둔 30대 초반 여성 '카말라'는 나와 서로 말을 트면서 예전 휴가 때 화려한 리조트에서 아이들과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자신과 같은 열차를, 다른 칸으로 탄 남편도 내게 소개해 주었다. 그는 사업 차 몇 년 전 대전에 간 적이 있다고 하며 한국인인 나를 반가워하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가족이라도 다른 칸에 탑승해야 하는 이유는 열차 규정 때문이다. 타자라 열차에서는 동성끼리만 같은 칸에 탑승할 수 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왜 이런 보수적인 규칙을 따라야 하는지 물어보니 코웃음을 치며 냉소적인 표정으로 자기네들도 이해 못 할 규정이란다. 그녀는 3일 내내 열차 안을 너무나 답답해하며 남편과 시간을 보내려 저녁 늦게까지 식당칸에 있다 잠잘 시간이 되어서야 자기 침대로 돌아오곤 했다.
이 두 여성은 집안 배경이 윤택해 보였다. 꾀죄죄한 낡은 옷을 입고 기차역 바닥에서 바리바리 싼 봇짐을 옆에 낀 채 땅바닥에 죽치고 줄지어 앉아 있는 2,3등석 승객들과는 겉모습이 분명 달랐다.
내가 출발했던 카피리 음포시 역에는 1등석 승객을 위한 VIP 대기실이 따로 있었다. 하지만 이름만 거창할 뿐, 뭐든 기대하면 안 된다. 들어가 보면 우리나라 시골에서 볼 수 있는 허름한 지방 시외버스 정류소가 떠오른다. 아니, 이 보다도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기실 안에 별도로 있는 1등석 승객용 화장실은 위생 상태가.. 차마 말할 수 없는 수준이다. 화장실 사용을 그냥 포기했다.
'웬만하면 참자. 조금 있으면 출발인데, 뭐.'
열차에 탄 후 처음 만난 와니타, 카말라와 차례로 인사했다. 앞으로 최소 3일은 같이 지내야 하는 사이다. 1등석 칸이라곤 하지만 내게도, 그녀들에게도 이 공간은 좁디좁다. 각 침대에 배치된 담요는 분명 빨지 않은 상태로 보인다.
몸을 요리조리 옮겨가며 이불 삼아 내 침낭을 쫙 펼치며 며칠간 지낼만한 공간을 정리했다. 침대 구석과 벽이 맞닿는 면에는 생수병들을 줄지어 욱여넣었다. 그동안 목이 타 들어가게 건조한 아프리카 날씨 속에서도 화장실이 무서워 물 마시기를 참느라 고역이었던 참이었다. 결국 물을 와장창 샀다. 2리터 생수 6병, 작은 생수병도 여러 개. 그동안 견뎌왔던 갈증을 열차 안에서 해소해 보자!
기차는 자주 정차했다. 무슨 역에 정차한다는 안내 방송도 없이 그저 자주 멈췄다. 고장이 난 건지, 정기적인 도착인지 알 수도 없다. 이때마다 철로에 나와 있는 아이들은 창가에 다가와 돈이나 먹을 걸 달라고 구걸했다.
구형 열차를 탄 경우 창가 근처에 배낭을 두면 기차가 잠시 멈출 때 현지인들이 창문으로 손을 뻗어 훔쳐간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난 다행스럽게도 신형 모델을 탔다.
Hey, Madam!!
아이들이 소리 높여 내게 외친다. 어떻게든 자신에게 내 눈길을 돌리게끔 만드는 말, 이 목소리에 자동적으로 내 눈길이 움직인다.
Give me food,
or money!
이렇게 외치는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이 아이들은 언제부터 이렇게 영어로 구걸하는 걸 익혔을까. 어른들이 말하는 걸 보고 들었으리라. 다 큰 성인들도 열차 창문으로 손을 뻗어 승객들 짐을 빼가는 판국이니까. 여행객 짐 중 값나가는 걸 건졌다면 이들에겐 평소 만져볼 수 없는 큰돈을 번 셈이다. 그러니 너도나도 관광객만 보면 돈 덩어리로 보일 수밖에.
척 보면 10살도 안되어 보이는 어린이들에겐 1주일에 1,2번씩 오는 타자라 기차에 있는 관광객들을 보는 게 구경거리다. 그래서 이렇게 철로까지 나와서 열차를 마냥 기다린다고 들었다. 외국인으로 보이는 내가 아이들에게 눈을 맞추면 얘네들 눈에도 생기가 돈다. 그리곤 작은 두 손바닥을 맞대는 손짓과 사랑스러운 미소를 곁들여서 저 문장을 외친다.
와니타, 카말라는 각자 갖고 있던 감자칩 과자 봉지를 기차 창문 밖으로 던져 주었다. 열차가 머무는 동안 아이들은 계속 철로를 떠나지 않았다. 나도 먹다 남은 과자가 있었기에 이들을 따라 아이들을 향해 던졌다.
그 순간. 얘네들 사이에서는 과자 쟁탈전이 벌어졌다. 와니타와 카말라는 현지어로 아이들에게 뭐라고 말했다. 아마도 서로 사이좋게 나눠 먹게끔 타이르는 말일 거다. 하지만 다툼은 갈수록 거칠어졌다. 급기아 아이들 무리 중 남자애 2명은 1:1로 본격적인 몸싸움까지 시작했다.
'다치면 어떡하나'
한참을 씨름하듯 목덜미를 움켜쥐고 주먹까지 날리는 두 남자애를 지켜보는 게 힘들었다. 나와 같은 칸에 머무는 두 잠비아 여성도 침묵했다. 외국인인 나와 이 두 여성은 같은 열차 칸에서 갑작스레 아이들의 빈곤을 목격해 버렸다. 우리 셋 다 원치 않는 싸움 구경을 한 셈이다. 그것도 모두 같이 건네준 과자가 싸움 빌미를 제공했다. 이들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자립심을 갖고 성장할 수 있을까.
이 아이들이 가난 속에서 투쟁하며 심신이 거칠어지는 과정이 상상되니 심란해졌다. 이들에게 돈을 준다면 의존성을 점점 키울 뿐이다. 하지만 과자 정도는 괜찮으리라 여겼다. 그런데 내 눈앞에서 싸우는 아이들은 너무나 배고파 보였다. 이들은 기꺼이 또래와도 싸우며 탐욕을 채우고 생존하는 법을 배워가리라.
첫날 저녁엔 와니타와 한참 얘기를 나누었다. 알고 보니 그녀 집안엔 전문직 종사자들이 여럿 있고, 그녀 또한 잠비아와 다르에스살람을 오가며 무역을 한다고 했다. 꽤 부유한 사람인 듯하다.
간간히 신비로운 자줏빛 석양을 등에 두고 산들바람을 쐬며 와니타와 얘기를 이어갔다. 그녀는 잠비아 실상에 대한 여러 얘기를 해 주었다. 다이아몬드, 그리고 3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채굴을 시작한 금 같은 천연자원을 채굴하는 권리를 외국 자본에 10-20년짜리 기간으로 팔고 실제로 잠비아인들이 이런 천연자원 채굴권을 거의 갖지 못한 상황이라고 한다. 과거 식민지 시절과는 달리 선진국은 이제 자본으로 아프리카 땅을 지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화가 무르익으며 우리는 서로 나이를 확인했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그녀가 55세이고, 이젠 무릎이 아파서 고생 중이며 요즘 걷기 운동을 열심히 하는 중이라고 한다. 아프리카 인들은 저마다 탱탱한 피부에 검은 머리 일색이라 도통 나이를 짐작하기 힘들다.
스낵칸에 가서
같이 마실래?
어느덧 해는 깜깜해졌다. 저녁을 먹고 무료한 시간이다. 그녀가 추천해 준 맥주를 나보고 함께 마시겠냐고 묻는데, 난 화장실에 자주 가고 싶지 않다고 완곡히 거절을 했다. 물론 여기 화장실이 열악해서 되도록 가고 싶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사실은 그녀가 내게 한 잔 사줄 것처럼 말했기에 더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았다.
꽤 오랫동안 그녀와 얘길 한 거 같다. 집안 형제가 4명인데 2명이 먼저 죽었다고 한다. 그중 사인이 말라리아였던 형제가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 괜스레 나도 걱정이 되었다. 와니타뿐만 아니라 현지인과 말라리아를 주제로 대화를 할 땐 모두들 표정이 진지해진다. 탄자니아는 말라리아가 위험하냐 물어보니 그렇지는 않다고 또 말한다. 그녀가 어디서 들었는진 몰라도 혈액형이 (+)로 끝나면 말라리아에 강하다고 말하는데 의학적으로 신빙성이 있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와니타는 자기 부모가 혈액형이 모두 (+)로 끝나서 자신도 유전적으로 강하다고 하는데, 순간 미신 같지만 내 혈액형이 B+ 임을 떠올려본다.
열차가 출발하면 직원들은 돌아다니며 1등석 좌석별로 종이곽에 담긴 미니 비누, 두루마리 휴지 1개씩을 나눠준다. 두루마리 휴지는 그리 도톰하진 않고 3일 동안 다 써버릴 수 있는 양이다.
세면대에서는 실오라기처럼 물이 나온다. 세수나 양치를 하려면 두 손을 맞대고 물을 한참 모아야 한다. 그러니 한 사람당 세수를 하는 시간은 길어지는 법. 막상 씻더라도 깨끗이 헹군다는 게 너무 힘드니 점점 씻는 게 귀찮아졌다. 머리를 감는 건 상상할 수도 없다. 기차에서 내릴 때까지 떡진 머리로 버틸 수밖에.
희한한 건 2등석 쪽 화장실은 수세식 변기인데 1등석 화장실은 재래식 변기라는 점이다. 내가 탔던 열차만 이런 건지는 모르겠다. 게다가 1등석 세면실엔 열차 출발 후 채 하루도 안 지났건만 물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와니타는 열차 안을 돌아다니며 기어이 물 나오는 곳을 찾아냈다! 2등석 어떤 칸 세면실 수도꼭지엔 제법 물줄기가 굵은 물이 나온다는 정보를 얻은 후에는 나도 그곳을 이용했다. 그나마 내가 탄 차 칸과 거리가 가까워서 다행이었다.
식사는 열차 맨 끝 칸에 달린 식당칸에서 해결했다. 그럭저럭 처음 먹는 메뉴이니 다 먹을 만하다. 잠비아 화폐로 한 끼 가격은 50콰차 정도다. 식사 값은 잠비아 영토에서는 잠비아 화폐인 콰차로, 국경을 넘으면 탄자니아 실링으로 지불해야 한다. 식당칸 직원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똑같은 사람에게 다른 화폐로 지불해야 하는지를 와니타에게 물어보니 또다시 쓴웃음을 짓는다. 자기도 왜 이리 번거롭게 돈을 내야 하는지 모르겠단다.
아침은 대체로 빨리 나왔지만 점심, 저녁은 요리가 나오기까지 1시간 걸렸다. 이전에 정보를 얻을 땐 1등석 칸으로는 식사를 배달해 주었다는 수기도 읽었지만 내가 여행했을 때(23년 8월)는 그렇지 않았다. 직접 식당칸으로 이동해서 현금을 내고 주문해야 밥을 먹을 수 있다.
식사는 모두 현지 요리다. 아침은 전형적인 서양식으로 나온다. 식빵, 차, 소시지, 토마토 같은 과일을 데운 가니쉬. 나머지 점심과 저녁은 치킨 혹은 생선 요리였다. 또한 이곳엔 튀긴 요리가 참 많다. 어제 먹은 치킨 요리도 기름으로 튀기듯 익힌 거고 오늘 먹은 생선 요리도 마찬가지다. 식당 메뉴는 날마다 항상 똑같다.
'내 자리를 비워 줘야지'
내가 밥을 먹으러 식당칸으로 가면 바로 내 윗침대에 자리 잡은 와니타가 아래 좌석으로 내려와서 창가 구경도 하고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와니타와 친해진 후론 매 끼니때마다 되도록 식사 시간마다 내 자리를 비워주고 나도 식당 칸에 가서 천천히 밥을 먹었다. 나 또한 에어컨도 없이 후덥지근한 좁은 침대에서 잠깐이라도 해방된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둘째 날 점심시간, 일찌감치 12시쯤 숙소칸에서 식당칸으로 이동했는데 1시간이 지나도 음식은 나오지 않는다. 기다리는 새에 와니타도 식당칸에 왔고, 나와 같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와니타가 주방 쪽 직원에게 물어보니 14분 정도 더 걸린다고 한다. 참고로 내 옆 자리에 앉은 서양인들은 무려 2시간이 걸려서 치킨 요리를 먹을 수 있었다.
도대체
이유를 알 수가 없네.
우리는 요리를 기다리며 또다시 헛웃음을 나눴다. 요리 재료를 열차 밖 어디서 공수해 오는 것도 아니고, 식당 칸에 있는 손님은 나와 와니타를 포함해서 2-3 테이블 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미스터리다.
처음 먹어본 생선 요리는 와니타가 추천해 준 대로 맛있었다. 그런데 이 놈들이 내 돈 탄자니아 돈으로 10000실링을 갖고 가서 2500실링을 거슬러주어야 하는데 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자주 거스름돈을 주는 걸 잊은 척한다. 두 번, 세 번 말해야 겨우 거스름돈을 챙겨서 돌려준다.
와니타와 함께 식사를 하며 그녀가 아프리카 방식으로 음식을 먹는 걸 지켜보았다. 이들은 직접 손으로 음식을 집어먹는다. 현지인들은 한국인인 내 눈으로 보기엔 너무 더러워 보이는 방식으로 식전에 손을 씻었다. 식당 직원은 손님에게 세제와 물이 담긴 작은 바가지를 들고 온다. 그럼 손님은 세제로 손을 비벼 거품을 낸 다음 다시 직원이 맑은 물을 부어주면 거품 난 손을 대강 씻는다.
'충분히 더 손을 헹궈야... 뽀드득뽀드득 문질러야 거품기가 사라질 텐데..'
물론 손 씻는 순서 자체는 맞다. 하지만 물이 워낙 부족해서일까. 와니타가 손 씻는 모습을 보며 내 머리에선 이 찝찝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이들과 어울리며 먹고 자는 동안 열차는 서서히 달려갔다. 잠비아 국경과 멀어지며 이제 내게 남은 돈은 한 끼 더 먹을 정도인 70콰차 뿐이다. 국경까지는 2-3시간 정도 걸릴 것 같다고 와니타가 말한다. 그저 기다리는 수 밖엔 없다. 탄자니아 국경 심사를 받는 기차역까지.
* 이 글은 뉴스 앱 '헤드라잇' [나 혼자 잠보! 아프리카 배낭여행] 2023.11.06 콘텐츠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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