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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색광선 Oct 31. 2022

힘들 땐 가끔 백일몽을 꿔도 괜찮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

문제, 문제, 또 문제.

갑자기 골치 아픈 일들이 내 숨을 턱턱 막히게 한다면 우리는 보통 무슨 생각을 먼저 할까?


‘그래, 문제를 해결하자.’ 이렇게 생각 회로가 부지런히 흐르려면 적어도 그 문제가 내 능력으로 감당할 만하게 보여야 한다. 그러나 내겐 현실적으로 버거운 일들이 줄줄이 소시지처럼 끊이지 않는다면? 정신이 아찔해진다. 일단은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게 인간의 본능 아닐까.


(이제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구질구질한 현실,

유체이탈하고 싶어



에블린은 중국인 이민자 가정의 억척 주부이다. 남편은 생활 능력이 별로인 듯하고, 늙은 아버지를 돌보는 것도 그녀의 몫이다. 외동딸은 독립해서 동성 연인과 따로 사는 중인데 에블린이 보기엔 딸이 사는 꼬락서니가 영 마땅치 않다. 게다가 공포의 세무 조사가 닥쳐온다. 에블린 가족은 똑 부러지는 실력을 인정받은 저승사자 느낌의 조사관에게 딱 걸렸다. 그녀는 지상 최대의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


인간은 현실에서 고통을 느낄 때 여러 방법으로 자신의 정신을 무장한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인간이 마음을 보호하는 모습을 정신역동 이론에서는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라고 한다. 우리는 나도 모르는 채 다양한 방어기제를 사용하며 매일매일 살아간다.


이 영화의 주인공 에블린(양자경 역)도 그렇다.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위기를 겪으면 자기 통제가 어려워지는 법. 평소 안 하던 실수를 저지른다거나, 감정 조절이 안 되어서 난감한 적이 있다면 보통 내가 스트레스로 힘든 상태일 거다. 원래 세련된 모습에서 벗어나 퇴행한 모습, 괴로움을 잊기 위해 비현실적인 공상(fantasy)에 빠지기도 하고, 현실을 부정(denial)하는 모습. 바로 에블린의 모습이다. 이 영화는 마치 그녀의 백일몽들을 뒤죽박죽 합쳐놓은 듯하다.



수많은 내가

비빔밥처럼 섞여버렸네?!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갑자기 에블린의 남편은 그녀에게 멀티버스에 빠지는 장치를 달아주며 중대 임무를 전달한다. 그녀의 딸에게 잠재해 있는 어떤 사악한 존재를 물리쳐야 한다는 거다. 그리곤 그녀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우주 속에서 셀 수 없는 에블린들이 있다고 말한다.


다른 우주에서 그녀는 유명한 가수이기도 하고, 피자 가게를 홍보하는 거리의 노동자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영화배우이며, 각 잡고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이기도 하다. 쿵후 무술 고수이기도 하지만, 갑자기 손가락이 소시지처럼 변해서 무력해지기도 한다. 자신이 극혐하는 동성애 취향을 물씬 풍기며 세무조사관과 이상야릇한 분위기를 즐기기까지. 그뿐인가. 에블린을 포함한 모든 인물들은 각자 무한한 우주를 갖고 있다. 매 순간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이들은 여태까지 미처 살아보지 못한 또 다른 모습으로 제각기 다른 시공간을 살아간다.


지금의 에블린이 최악이야.
넌 무엇이든 할 수 있어.
지금 넌 무엇이든 못하니까.


무한한 멀티버스에서 살고 있는 수많은 에블린. 현생에서 궁지에 몰린 에블린이 현실에서 누려보지 못한 수많은 잠재몽을 영화에선 이렇게 멀티버스로 표현한 게 아닐까?


꿈의 줄거리는 원래 상식의 잣대로는 이해가 어려운 법. 또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하려면 그녀가 소위 병맛스러운, 생뚱맞은 행동을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콧구멍에 파리 흡입하기 식이다. 다른 멀티버스로 이동을 시도할수록 그녀는 점점 과감해진다.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을 거듭하며 갈수록 용감해지는 에블린. 팍팍한 현실에 주눅 든 모습과는 정반대이다. 에블린은 멀티버스들을 넘나들며 자신이 미처 제대로 해보지 못했던 수많은 꿈을 체험한다.



미처 살아보지 못한

다른 인생이 있다면?


이미지 출처 : Daum 영화


그렇다면 누구라도 한 번쯤 다양한 시공간을 살아가고픈 유혹에 빠지지 않을까? 하지만 이렇게 되면 인간은 '욕구'라는 걸 아예 못 느낄지도 모른다. 뭔가를 이루고 싶다는 간절함이 없다면 인간은 무한한 시공간 속에서 허무주의(Nihilism)에 빠질 수밖에 없다. 지금 내가 사는 모습이 마음에 안 들면 손 털고 다른 유니버스로 떠나면 그만이니까. 이렇게 되면 현생의 소중함도 없어진다.


실제 우리의 인생에는 멀티버스란 없다. 삶이란 유일하고 유한하다. 그렇기에 지금 내가 마주하는 모든 사람들과 경험들, 이 순간에 느끼는 모든 감정들이 다 특별하고 소중한 거다. 이 영화는 멀티버스라는 장치를 도입해서 내가 누리지 못한 인생의 꿈, 미완의 삶에 대한 아쉬움을 유쾌하게 풀어내었다.


현생을 살아가는 에블린, 그리고 수많은 에블린들을 응원하며.



* 이 글은 뉴스 앱 '헤드라잇' [영화관심_Kino Psycho] 2023.03.08 콘텐츠로 발행되었습니다.


https://m.oheadline.com/articles/fOdqlQRMzYFAsJ5hJN8H7Q==?uid=743e351dfb3f41898a3018d22148c7f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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