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이치 사카모토: 다이어리(2026)
몇 해 전 그가 타계했을 즈음 들쳐봤던 책이다. 밑기지 않았던 사망 소식에 슬퍼하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어떤 마음으로 제목을 이렇게 지었을까? 마치 『마지막 잎새』(O.Henry 지음)와 비슷한 뉘앙스잖아. 읽을수록 힘들어지면 어떡하지.
표지를 펼치기도 전에 슬퍼하길 미리 망설였던 기억이 난다. 이런 잡념이 스쳐 지나가며.
위 유고집 얘기를 먼저 꺼내는 이유는 이 다큐멘터리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본 작품은 저 책을 영상으로 요약한 브이로그(Vlog)라고 보면 된다. 최근 예기치도 않게 다시 그를 스크린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화면 속 그는 단정했다. 깔끔한 옷차림에 떄론 개구쟁이 같았다. 게으른 나보다도 열정적으로 보였다. 병세가 깊어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여전히 살아있으니, 하고 싶은 활동을 어떻게든 해내고 있으니. 저승사자가 그 곁에 다가온다는 걸 더더욱 실감하기 어려웠다.
그는 지독한 기록쟁이었구나 싶다. 시한부 인생이란 걸 알기 이전부터 원래 이런 습관이 몸에 베인 사람처럼 보였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악상을 연필 메모로 남기고, 피아노에 앉아 시연해 보고, 악보를 만들고, 각종 의뢰에 화답하고, 즐겨 찾는 레스토랑을 위한 BGM 목록 작성까지. 뭔가 하고 싶으면 바로 해버리는 사람을 모험가라고 한다면 아마도 그가 대표 모델이리라. 책에 나오듯 보통 사람 3배는 바쁘게 산 셈이라고 그의 친지가 말한 대로다.
그가 남긴 마지막 앨범 『12』는 모든 곡 제목이 날짜로 되어 있다. 막귀로서 처음엔 듣기 어려웠다. 뚜렷한 기승전결도, 멜로디도 없이 곡들마다 선율이 되다 만 애매한 소리들이 이어졌다. 이건 뭘까. 그저 음이 들렸고 그다음 음들이 쌓여가다가 또다시 사라지는 느낌이랄까. 뭉쳐가다 소멸하는 소리가 일으키는 진동에 잠기며 청자는 궁금해진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팠던 음악은 자연에 담긴 소리들의 혼합이었던 걸까.
모호한 음정에서, 소리에서, 그 사이 공명에서, 호흡하며 나를 느끼는 것. 소리들이 겹치며 만들어내는 진동에 나를 맡기는 것. 아마도 그가 이렇게 한 음 한 음을 쌓으며 음악을 만들어낸 밑재료는 자연이었나 보다. 암 진단을 받을 즈음 뉴욕 자택 마당에 두려고 주문한 그랜드 피아노가 날씨의 풍파를 맞으며 변형되는 걸 보며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한때 그의 음악은 화려했다. 그에겐 『마지막 황제』 등 OST 작곡가로 쌓아온 명성이 있었다. 소위 전공투 세대로서 일본 사회 변혁에 앞장섰던 젊은 날이 있었다. 최첨단 전자 악기를 쌓아놓고 혁신적인 사운드를 선보였던 YMO(Yellow Magic Orchestra)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유작을 들으니 그는 이젠 소멸해서 자연이 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걸까도 싶다. 이젠 나무로 돌아가는 저 피아노처럼.
화면 속 그는 열심히 작업하고, 때론 춤을 추며 행복해 보였다. 이렇게 열심히 살 수록 죽음은 교통사고처럼 갑자기 오는 게 아닐까. 우린 삶이 유한하다는 걸 모른 척한다. 『마지막 잎새』 여주인공도 아침잠에서 깰 때마다 창문 밖 잎사귀를 확인했듯, 그도 순간순간 살아있음을 이렇게 음악으로 확인했던 걸까.
일개 팬으로서 이렇게나마 상상해 본다. 그가 보름달을 바라보며 무슨 상념에 잠겼을지 미처 헤아릴 순 없지만 말이다.
앨범 제작기와 함께 다큐 속 내레이션은 그의 일기를 읊조린다. 때론 스마트폰에, 때론 종이에 끄적였던 일상을 영상으로 음미할 수 있다. 동일본 대지진 후 그가 만든 유스 오케스트라 활동, 온라인 콘서트 준비, 라디오 출연 등등.
반가웠다. 그를 스크린에서 다시 봤으니 말이다. 여명을 되뇌며 최선을 다했던 그의 마지막 시간을 일부라도 엿보며 애도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내레이션이 사망일에 가까워질수록 다큐는 이렇게 담담한 톤으로 마무리될 듯했다. 하지만..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쯤 울컥할 수 밖엔 없다. 상영 내내 슬픔을 참아왔건만 그가 남긴 일련의 보름달 사진들을 보며, 창가 밖 거리 풍경 위에 오롯이 뜬 보름달들. 그가 살아있었던 시간들. 의식을 잃었어도 움직였던 그의 손가락들. 그가 숨 쉬었던 흔적들을. 다시금 마주하며 끝내 참아왔던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래, 아직도 준비 안 된 이별이지만 이젠 받아들이자.
다시 벚꽃이 필 때쯤 그가 다시 생각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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