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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색광선 May 02. 2023

내 마음속 차가운 빈 방, 외로움이란 공간

토니 타키타니(Tony Takitani, トニー滝谷, 2004)


(영화이자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소설  『토니 타키타니』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외로움이란 방. 아기일 땐 이 방이 있는 줄도 모른다. 하지만 3-4살쯤 '마음'이란 걸 알게 되며 우리는 모두 각자 이 방이 있음을 느낀다. 이 나이쯤 되면 우리는 모두 자기 마음을 요모조모 들여다볼 줄 아는 심리학자가 된다. 말을 익히며 "내 기분은 이런 거야. 나 이런 걸 원해 " 식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혹은 나와 다른 사람 마음이 무슨 색깔인지, 차가운지, 따뜻한지 상상할 수도 있다. 이걸 마음 이론(Theory of Mind)이라고 한다.


이 방엔 아무것도 없다. 텅 빈 이 방은 아기일 땐 쪼그마한 곳이었다. 그러나 자라나며 어른이 될수록 점점 커진다. 나이가 들 수록 겉과 속마음을 교묘히 나눌 수도 있으니 이 방은 미로처럼 점점 복잡해진다. 난 나도 모르게 이 방에 빗장 거는 법을 배웠다. 이렇게 문을 닫아놓고 바쁘게 살면 평소엔 괜찮다. 내 속이 텅 비어 있다는 느낌이 덜해서이다.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토니 타키타니도 그렇다. 태생부터 일본인답지 않은 희한한 이름을 받은 이 남자. 트롬본을 연주하던 재즈 뮤지션인 아버지의 서양인 친구가 지어주었기 때문이다. 그 덕에 토니는 사람들의 잔인한 호기심을 피해 마음속 외로움이란 방에 빗장을 열고 들어가 방문을 걸어 잠그곤 했다. 그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이 방을 견고하게 잘 지켜 나갔다.


그는 예술가인 아비의 피를 이어받았는지 그림에 소질을 보였다. 하지만 토니가 그린 그림엔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았다. 숱하게 이런 말을 들어도 돈 버는 데엔 지장이 없었다. 생명이 느껴지지 않는 기계, 물건을 그리며 그럭저럭 밥벌이를 할 수 있었다.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어느 날 토니는 어떤 여인을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그는 자기 안의 빈 방을 그녀로 채우려 했다. 드디어 결혼까지 성공. 그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그녀가 곁에 없으면 불안했다. 어디에서 뭘 하더라도 이젠 아내와 오래 떨어져 있기 싫었다. 또다시 고독이 나를 집어삼킬까 봐 혼자 공포를 느낄 정도로.


그녀는 마치 먼 세계로 날갯짓하는 새 같았다. 특별한 바람을 몸에 걸친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옷이 그녀에게 얹혀 있었다.


그런데 아내는 마음속 빈 방을 토니가 아닌 옷으로 채우려 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쇼핑 홀릭, 옷 중독자였다. 월급 대부분을 옷을 사는데 쓸 만큼 증상은 심했다. 자기 안에 부족한 부분을 옷이 채워주는 듯한 느낌이 있어서다. 그녀 마음속 텅 빈 방 이름은 허전함일까, 열등감일까. 제대로 입지도 않은 옷들은 옷장으론 부족해서 어느새 집에 있는 방 하나를 가득 채워 버렸다.


토니는 아내와 마음으로 연결되고 싶었지만 아내는 그렇지 않았다. 옷으로 부족한 자신을 꾸며서 존재감을 채우려는 그녀. 아내는 마치 가까이 있어도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았다. 토니는 그녀에게 넌지시 말했다. 돈을 많이 써서라기 보단 옷 사는 걸 줄이지 않겠냐고. 그녀도 자기가 문제라는 건 알았기에 드디어 반품을 결심한다. 하지만 굳은 마음을 먹고 외출하던 날, 고약한 운명의 장난일까. 그녀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토니가 잠시 탈출했던 외로움의 방은 다시 커졌다. 그는 이 허전함을 채우려 여직원을 고용한다. 토니는 아내와 같은 체격인 여성이 필요했다. 아내의 옷을 입고 자기 옆에 머물 수 있도록 살아있는 마네킹이 필요했던 거다. 평생 처음 느껴보는 고독감, 이 고통을 해결할 방법을 나름대로 생각해 낸 것이다. 마치 꼬마가 부모 채취를 잃지 않으려 애착 인형을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듯.


하지만 토니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그는 방 안을 잠식해 버린 옷 무덤을 지켜보며 질식할 듯 답답해진다. 아내는 이 세상을 잠시 철새처럼 떠돌다 사라지고 그녀가 남긴 이 묵중한 천 쪼가리만 남은 거다. 그는 잠시 꿈꿨던 유아적인 소망에서 벗어나 여직원 채용을 취소하고 모든 옷을 처분한다.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누가 나를 불러주지 않으면, 날 비로소 확인해주지 않으면 난 진정으로 살아있는 게 아닐지 모른다. 지금 내 감정, 생각, 온갖 충동과 욕구를 누군가가 일부라도 봐주지 않으면 난 진짜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가 누군지를 봐주는 타인은 '거울 역할(mirroring)'을 해준다. 이때부터 고독감은 서서히 옅어진다. 물론 그 어떤 타인도 나조차도 다 모르는 나를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그러기에 곁에 있는 누군가가 배우자라도, 연인이라도, 친구라 해도 난 외롭다. 결국 고독은 사라지기보단 누가 날 알아줄 때 잠시 옅어지는 거다.


무라키미 하루키 단편소설을 동명으로 영화화한 토니 타키타니. 영화  등장인물들은 자기 내면을 표현하는 소설  문장들을 그때그때 그대로 읊조린다. 그들 자신도 모르는 섬세한 감정 변화는 류이치 사카모토가 피아노 독주로 대신 알려준다. 마치 걸음을  걸어 목발에 의지하듯 가끔  감정을 알기 위해 음악에 의지해야  때가 있다. 어떤 노래가  기분을 알아줄 ,  음악을  재생목록에 저장하듯 관객과  영화를 연결해 주는 마음의 끈은 음악이다.


토니는 누군가를 사랑하며 고독의 방을 잠시 탈출하려던 기억을 서서히 지워버렸다. 사랑은 그에게 고통스러운 기억이 되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토니가 잃어왔던 모든 걸 깨닫게 해 주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절대 고독은 감옥과도 같다는 걸. 영화 속 독백처럼 기억은 바람에 흔들리는 안개처럼 천천히 그 모습을 바꿀 때마다 흐려져 갔다.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난 지금 어떤가. 토니와 비슷한가. 감정이란 마음속 방을 스스로 걸어 잠그고 있는가. 돈을 벌 만한 쓸모 있는 기능을 하며 기계처럼 버티는 건 아닌가. 가끔 외로움이란 방이 커질 때면 누군가를 찾아 헤매지는 않는가. 마음속 방이 허전해서 음식으로 채우고, 허전해서 옷으로 꾸미고, 허전해서 뭔가를 사고, 허전해서 SNS로 누군가를 쳐다보고, 허전해서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검색하며 내 머리에 그 뭔가를 채워 넣는 건 아닌가.


시간이 지나 홀로 살던 토니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양육엔 별 소질이 없는 떠돌이 뮤지션이었다. 아들에게 유품으로 남긴 악기와 희귀 재즈 음반은 그저 관리하기에 귀찮은 물건일 뿐이었다. 토니는 움켜쥘 필요가 없는 유품들을 모두 태워버린다. 그리고 그에겐 다시 빈 방만 남았다. 집에도, 마음에도.







* 이 글은 뉴스 앱 '헤드라잇' [영화관심_Kino Psycho] 2023.04.25 콘텐츠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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