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녹색광선 Apr 20. 2023

류이치 사카모토,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음악명상

에이싱크(RYUICHI SAKAMOTO: async, 2017)


그의 일상을 기록한 코다(Coda, 2017)를 볼 때까지도 그가 거짓말처럼 나으리라 믿었다. 마음속으로 꼭 그래야만 한다고 여겼기에, 이 다큐 영화 속 그는 너무나 평범하게 앨범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기에 그리 믿었다. 병마를 떨치고 언제 그랬냐는 듯 눈부신 음악을 예전처럼 선사해 줄 거라고.


코다에서 내 머릿속에 각인된 장면은 그가 간식을 먹는 순간, 그리고 바흐 곡을 피아노로 다시 연습하던 모습이었다. 그가 작은 접시에 놓인 몇 점 안 되는 과일을 먹는 모습은 마치 수도승처럼 단정해 보였다. 한편 아직 익숙하지 않은 듯 피아노로 어떤 곡을 한참 치다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더 연습해야겠다고 말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아이 같았다. 하루하루 왕성한 창작 작업에 몰입하는 그가 위독하다고 믿고 싶지는 않았다.


《에이싱크(async) 개봉 당시엔 보지 않았다. 그가 계속 왕성한 생명력으로 활동할 거라 철석같이 믿었기에  혼자 여유를 부린 듯하다. 하지만 최근 그가 타계했다는 소식을 듣고 믿기지 않은  최근 영상으로나마 그를 보아야 했다.  200 만이   있었던 뉴욕 라이브 공연실황을 담은  귀중한 영상은 인간이 우주  나를 느끼도록 만든 음악 명상 재료과도 같다. 그가 코다에서 자연  소리 자체가 아름다운 음악이라고 여기며 손수 수집했던 음원들은 페스츄리 빵처럼 겹겹이 쌓이며 여러 악기 소리들과 함께 관객 마음에 공명을 일으킨다. 나처럼 그의 팬이라면 andata 시작하면서부터 눈시울이 붉어지리라.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그가 소리로 일으킨 거대한 파도를 관객은 그저 온몸으로 흡수하면 된다. 그가 연주하는 음악과 동시에 재생되는 영상은 우리가 눈으로도 음악을 보게끔 친절히 도와준다.


여기 세상의 소리에 둘러싸인 내가 있다. 수많은 생명을 가진 소리를 들으며 살아 숨 쉬는 나 자신과 내가 만나는 순간. 내 마음속 중심으로 그는 인도한다. 생생한 소리를 빚어내는 그의 모습을 보며 그가 예술가이자 철학자로서 평생 이 세계를 관조하는 도구가 음악이었음을 깨닫는다. 긴 투병 생활 동안 생(生)에 대해, 우주 섭리에 대해 얼마나 깊은 사색을 했을지 일개 관객인 나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영상 속 글귀처럼 우리는 내 앞의 삶이 무한한 듯 여긴다. 그러나 생명도 잠시 무한의 시공간을 스쳐 지나갈 뿐, 육체에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다. 이 안타까움을 넘어서서 시공간을 초월한 소리를 만들고 싶었던 걸까.


눈과 귀로 내 몸과 정신에 파고드는 소리의 파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흡인력을 배가시킨다. 나는 그저 눈과 귀를 열고 계속 호흡할 뿐이다. 그가 소리로 일으켜 우리 마음에 전해주는 파장은 더욱 커져만 간다. 온갖 감정과 상념들이 내 안에서 올라오고 부유물처럼 떠다니며 거친 파도를 치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비로소 이 세계와 내가 연결되어 있고 이 순간 함께 살아있음을 알아차리게 만드는 소리. 오로지 소리, 소리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이 파도는 거대하다.


마지막 백미는 엔딩 크레딧이다. water state2 영상과 음악이 동시에 흘러가며 거의 음악 끝에는 정적이 흐른다. 명상의 여윤을 끌어안고 온전히 나와 만나는 마지막 정리의 순간. 음악이 인도해 준 내 안의 나를 비로소 깨닫는 지점이다. 때문에 명상의 본질에 맞게 음악명상은 항상 침묵으로 끝난다. 이 무음(無音)의 순간을 상영관에서 엔딩 끝까지 고요히 경험했다면 당신은 행운아다.


하지만 대다수 관객들은 참을성이 없다. 공기 속 정적이라는 음악을 온전히 느끼도록 화면엔 소리 없이 움직이는 파장이 계속 흐르지만 대부분은 자리에서 일어나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남은 날이 하루밖에 없을 때
내가 듣고 싶은 음/음악만을 넣었다.


몇 년 전 국내 모 잡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에이싱크(async)》 앨범에 대해 그가 한 말처럼,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는, 그가 가장 사랑했던 말처럼.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생애 동안 충만한 시간을 보냈으리라.


이 공연 후 2022년에 그가 공식선상에서 마지막으로 공연한 온라인 피아노 독주회 영상은 언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또 다른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 예정이란 얘기는 들었지만 이걸 보면 정말로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더욱 보기가 망설여진다.


앞으로 벚꽃이 다시 피면 이젠 이곳에 없는 그가 생각날 텐데.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팬들은 봄마다 그를 그리며 슬퍼할 텐데. 신이 있다면 원망스럽다. 왜 그를 저 멀리 데리고 갔을까.






* 이 글은 뉴스 앱 '헤드라잇' [영화관심_Kino Psycho] 2023.04.19 콘텐츠로 발행되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음악을 내 마음속에 저장했던 시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