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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색광선 Feb 28. 2023

음악 정치무대, 오케스트라

타르(Tar, Tár, 2022)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지휘자는 클래식 음악계에 언제부터 나타났을까? 인원이 적을 때는 합주를 하더라도 지휘자가 필요 없다. 연주자들끼리 눈과 귀로 신호를 교환하니까. 하지만 대규모 인원이 모인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려면 얘기가 달라진다.


단상에 올라가 있는 단 한 사람의 수신호를 바라보는 순간, 모든 단원들은 지휘자의 해석을 따른다. 정치가 다수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동이라면, 집단이 음악을 연주하는 건 이제 일종의 정치로도 보인다.



오케스트라
정치학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오케스트라는 그 자체가 민감한 악기이다. 단원들은 지휘자가 안내하는 음악적 해석을 그대로 구현해 낸다. 지휘자는 자신이 이끄는 음악적 방향에 대해 자신 있게 단원들을 설득해야 한다. 연주자들은 우물쭈물하며 곡에 대해 제대로 안내해주지 못하는 지휘자를 신뢰하기 어렵다.


다만 이렇게 오케스트라 연주를 이끄는 과정은 민주주의와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인다. 영화에선 서로 견해 차이가 나는 구성원은 방출된다. 커리어 정점에 있는 여성 지휘자 리디아 타르. 그녀는 어떤 인터뷰에서 지휘자가 인간 메트로놈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자 이렇게 일침을 놓는다.


제가 시계를 조작하죠


그렇다. 지휘지는 이 민감한 악기, 오케스트라를 섬세히 조작하는 통치자이다. 인간에 대한 통제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리더 자리이기도 하다. 한 기업을 이끌어가는 CEO처럼 보이기도 한다.


줄리아드 음악원 강의 중 그녀는 자신감과 자만심 사이에서 묘한 줄타기를 한다. 학생에게 자신의 주장을 강압하느냐 설득하느냐. 이건 습자지 한 장 두께처럼 미묘한 차이라 어떤 교육 방식이 적절한지 혼란스럽다. 레슨을 받을 땐 모멸감을 느낄 만큼 매서운 평가를 받거나, 아니면 칭찬을 받거나. 양극단을 오가는 피드백을 받기 쉬운 현장이 음악계인 듯하다.



자기도취자의
조종술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타르는 자신을 따르지 않는 이에겐 잔인하다. 그 누구라도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한다. 화가 나면 레즈비언 연인의 딸을 괴롭히는 어린이라도 다가가서 저주를 퍼붓는다. 오케스트라에서 그녀는 악기 볼륨에 대한 의견 차이가 있는 부지휘자를 교묘히 내쫓는다. 의도적인 말싸움을 벌이면서까지.


상대방을 배려하는 척하다가 교묘히 조종하며 찍어 누르기. 이런 태도는 자기도취적인(narcissistic) 사람이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정당화하며 누군가를 굴복시킬 때 전형적으로 보이는 수법이다.


자기도취적인 사람, 나르시시스트(narcissist)가 조직에 있으면 주변 사람들이 괴로워진다. 나르시시스트는 성취욕을 채우기 위해 타인을 사람이 아닌 대상(object)으로 대한다. 손윗사람은 목적에 따라 적절히 대접하고, 아랫사람은 편히 이용하다 필요가 없어지면 버린다. 나르시시스트는 누군가를 용도 폐기할 때도 자기 결정을 타당화하려고 그럴듯한 이유를 댄다. 이기적인 결정에 대해 허울 좋은 근거를 대는 이유는 나르시시스트가 자신을 포장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스스로 저지른 과오로 인해 몰락으로 치닫는 자기애성 지휘자 타르.



정점에서

나락으로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타르는 더더욱 귀가 예민해진다. 환청(hallucination)인지 영화적 효과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을 험담하는 듯한 소리, 혹은 생활 소음이 점점 크게 들린다. 약으로 다스리며 연주회 리허설을 진행하던 중 예전 제자에게 저지른 성추문이 발각된다. 성노리개였던 제자는 자살해 버리고 타르를 수족처럼 따랐던 프란체스카는 잠적. 정점에서 추락하는 길은 브레이크 없이 가파르다.


이 즈음 오케스트라엔 새로운 다크호스가 들어온다. 젊은 여성 첼리스트. 타르를 두려워하지 않는 순수함과 재능을 모두 가졌다. 타르는 이 젊은이가 마음에 들기에 어떻게든 오케스트라에서 솔로이스트(soloist) 기회를 주려고 교묘한 정치술을 발휘한다. 결국 이 첼리스트는 연락을 끊어버린 프란체스카를 이어 타르와 주요 일정을 함께 하지만 SNS엔 타르의 새로운 먹잇감이라는 평이 쏟아진다.



음악은
권력이었다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타르는 결국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쫓겨난다. 하지만 그녀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부정한다. 습관처럼 긴장을 낮추는 약을 들이켜고 연주회 당일 무대에 돌진해서 후임 지휘자를 폭행하기까지. 명성은 초라해지고 그녀는 사람들을 피해 세상 깊숙이 숨는다. 머나먼 아시아까지 도망치듯 건너와 이름 모를 게임 음악 오케스트라 무대에 서다니.


그녀에게도 외래 지휘자로 베를린 오케스트라 문턱을 가까스로 넘었던 과거가 있었다. 순수했던 시절엔 음악을 음악으로 대했을지 몰라도 정점에 올랐을 때 음악은 그녀에겐 권력이었다.



* 이 글은 뉴스 앱 '헤드라잇' [영화관심_Kino Psycho] 2023.03.11 콘텐츠로 발행되었습니다.


https://m.oheadline.com/articles/fOdqlQRMzYFAsJ5hJN8H7Q==?uid=743e351dfb3f41898a3018d22148c7f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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