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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색광선 Oct 17. 2023

자본을 말아먹은 엄복동, 자본가를 건드려 망한 천국의문

천국의 문(Heaven's Gate, 1980)

한국엔 망해도 싼 망작 <자전차왕 엄복동(이하 UBD)>이, 미국엔 저주받은 대작 <천국의 문>이 있었다.


둘 다 망했어도 UBD는 그냥 졸작이지만 <천국의 문>은 그 반대다. 갈수록 재평가를 받는 중이다. 다만 그야말로 처참하게 망했기에 한국의 UBD처럼 미국에서도 흥행 참패의 상징이 되었다. 어느 정도 망했냐면 이 영화를 찍고 나서 제작사가 망했다.


이후 할리우드에선 어떤 영화가 규모가 크지만 망작이 될 까봐 걱정할 때 '천국의 문'이라는 밈(meme)을 쓰게 된다. <타이타닉>을 찍을 때도 제작비가 눈덩이처럼 늘어나면서 "이러다 <천국의 문>이 되는 게 아니냐"는 풍문이 떠돌았다고 한다.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공교롭게도 UBD처럼 <천국의 문>도 역사물이다. 그런데 흥행이 안 되었던 이유는 UBD와는 다르다. UBD는 그 많은 제작비를 뒤로 빼돌렸다는 의혹을 받을 정도로 자본을 낭비한 망작이다. 하지만 <천국의 문>은 미국 자본가 계급을 사회 고발 수준으로 제대로 건드리려다 망했다. 미국사에서 부끄러운 민낯을 다뤘기에 영화는 당연히 해피엔딩이 아니다.


이 영화감독은 그 유명한 <디어 헌터>를 만든 마이클 치미노이다. 그는 <디어 헌터>에서 베트남 전쟁 실상을 파해치려 했듯이 <천국의 문>에서도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실제로 학살했던 존슨 카운티 전쟁을 고증하려 했다. 하지만 너무 욕심을 부렸나 보다. 미 서부 시대를 재연하느라, 로맨스까지 다루느라 상영 시간은 너무나 길어졌다. 자그마치 217분이다.


1892년 아이오밍 주 존슨 카운티에서 미국 원주민을 말살하고 땅을 선점했던 거대 농장주 집단은 기득권을 지키려고 후발 개척자들을 집단 학살했다. 이들은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이주해 온 중소 자영 농장주들이었다. 자본가들이 주도하여 노동자 계급을 청소하려 했던 추악한 역사, 이제 들여다보자.




(이제부터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엘리트'라는 선언,
 하버드대 졸업식


이미지 출처:  IMDb.com
이미지 출처:  IMDb.com
이미지 출처:  IMDb.com


1870년 70회 졸업식. 학생들은 아주 천천히 음악에 맞춰 캠퍼스를 행진한다. 대강당에 모여 축사를 낭독한 후 저녁 댄스파티까지. 엄숙한 분위기에서 시작한 전통 의식이 화려한 뒤풀이로 끝나는 모습은 그야말로 화려하다. 시작부터 뒤풀이까지 이어지는 모든 순서는 엄격한 전통에 따라 진행된다. 마치 엘리트 양성 의식을 다루는 역사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사회에 새로운 지식인을 배출하는 걸 자축하는 선언식처럼.


때문에 의식은 간단히 끝나지 않는다. 정확한 순서를 거쳐 낮부터 밤까지 진행되며 졸업식은 무게감을 더한다. 아무나 이 의식에 끼어들 수 없다. 오직 초대받은 자, 사회 지배층끼리만 교류하며 즐길 수 있는 그들만의 파티. 마이클 치미노 감독은 이걸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보여준다. 이 졸업식 장면을 촬영한다고 하버드 교내 캠퍼스에 있는 나무를 뽑아서 촬영장으로 공수해 왔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이미지 출처: IMDb.com
이미지 출처: IMDb.com


아무도 겁 안 나.
죽어도 좋다고 느낀 적 있어?


졸업생 제임스(크리스 크리스토퍼슨 역)와 빌리(존 허트 역). 겁 없던 두 청년은 뭔가 해보겠다는 포부를 안고 세상으로 나간다. 거친 시대를 살아야 했기에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난 건 두 젊은이에겐 행운이었다.




이민자들의 나라
미국이라고?


이미지 출처: IMDb.com


미국. 이민자들이 주인인 국가라지만 과연 시작부터 그랬을까.

20년 후 와이오밍 주. 꾀죄죄한 옷차림에 술과 먼지에 찌든 제임스. 파릇파릇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그는 이민자 전용 열차에서 케스퍼 기차역에 내린다. 이곳엔 오만군데에서 모여든 이민자들이 넘쳐난다.


살아남기가 만만치 않다.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뭐든 해야 한다. 살 방도가 없으면 기차역에서 죽치고 있다 굶어 죽는 이들이 태반이다. 찢긴 고기 같은 시체가 마차에 짐짝처럼 실려가는 광경이 놀랍지 않다. 찢어지게 가난하니 장례 치를 돈도 없다.


이곳이 자유의 땅이라고? 여긴 짐승 같은 놈들 밖엔 없다.


이미지 출처: IMDb.com


이민자들은
겉으로는 농부인척 하지만,
속으로는
무정부주의자나 도둑들이야.


인간 군상들이 한 데 섞이니 축산 협회 대지주들은 영 못마땅하다. 당시 이민자들은 작은 영토를 확보해서 정착할 터전을 꾸리던 시기였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자기네 재산을 빼앗길까 봐 이민자를 경계한다. 결국 이들은 무력으로 이민자 청소를 계획한다. 눈에 거슬리는 자들로 처형 명단 125명을 만들어 정의를 구현하자.


대지주들은 이민자 처형 계획에 대해 법적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약삭빠르게 미 중앙 정부 쪽 사전 동의까지 받아 놓았다. 영화에선 이 자본가 집단에 제임스처럼 무력한 중년이 된 빌리도 끼어 있었다.




정의를 구현한다는
헛소리


이미지 출처: IMDb.com


자본가 집단에서 제임스는 눈엣가시이다. 집안 배경이 좋으면서도 그는 자발적으로 서민들과 어울리며 우울한 중년이 된다. 반면 대학 동기인 빌리는 자기 목소리를 못 내는 소심한 상류층으로 남았다. 부조리한 현실을 지켜보는 두 남자 모두 무력한 건 마찬가지다.


제임스는 중소 자영 농장주들에게 이 소식을 전한다. 곧 처형일이 다가올 거라고. 이민자 마을 모임에서는 우왕좌왕, 갑론을박뿐. 제임스가 입수한 처형 예정자 명단에 적힌 이름이 하나씩 불릴 때마다 비명을 지르며.

 

동쪽에서 온 투기꾼들은
우리가 이 나라에서 자리 잡는 게
싫을 뿐입니다!


제임스는 일단 마을을 떠나 목숨부터 건지라고 말하지만 가난한 자들은 갈 데가 없다. 분노하며 배수의 진을 치고 끝까지 싸울 수 밖엔. 사람들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치기 시작한다.




'인센티브'라는
족쇄


이미지 출처: IMDb.com


자넨 법만 집행하면 돼.


더 기가 막힌 건 자본가들이 피고용인에게 악행을 지시하는 말이다. 자본가들은 살생 절차에 대해 이미 중앙 정부와 합의했기에 법적으로는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실제 학살을 하는 건 기득권층에서 돈으로 모집한 피고용인들이다.


일당 5달러를 받는 총잡이들. 이들은 어쩌면 같은 계층인 소시민들을 더 죽일수록 인센티브를 받는다. 서민끼리 죽고 죽이는 교묘한 싸움판을 만들어 살인을 교사한 건 자본가였다. 대지주들은 약자들이 분노하지 않도록 일부는 이득을 얻는 기회를 주어 노동자들의 입을 틀어막으려 한다. 자본가들은 약자끼리 서로를 죽여야 각자가 사는 시스템을 완벽하게 설계했다.




계급 만들기는
인간 면역반응인가?


중소 자영 농장주들(이미지 출처: IMDb.com)


돈 없는 게 죄가 되어가고 있네요.
늘 그랬어.


끼리끼리 무리 짓기. 집단 안에서 서로 어울릴 만한 무리를 가려내는 행동은 일종의 생존 본능이다. 위험한 환경에선 인간을 포함한 다른 동물들도 서로 비교하고 구별하는 습성이 생긴다. 즉,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서로를 잘 알고 이해관계가 같은 이들끼리 자연스레 무리로 뭉치고 이질적인 세력은 경계한다. 이 과정에서 이종(異種)에 대한 혐오는 자연스레 뒤따라온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초기에도 위기감을 느낀 국가들이 국경 장벽을 높이며 동양인과 외국인에 대한 혐오를 키웠듯이.


영화를 보면 미국 이민 역사도 마찬가지였다. 서부 개척 시대를 돌이켜보면 이방인들이 섞이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먼저 개척지를 선점한 무리는 자연스레 자본가 계급으로 뭉치며 기득권을 움켜쥐었고 후발 이민자들은 최하층 노동자로 흡수되었다. 지배층은 노동자들을 자기네 입맛에 맞게 이용하거나 배척했다.




'자유'라고 쓰고
'약육강식'이라 읽는다


이미지 출처: IMDb.com


공동의 이익을 지키려고 서로 섞일 수 있는 무리를 구분하려는 본능. 은연중에 사람을 '급'으로 나누는 관습은 사회가 복잡해지며 계급의식으로 발전한다. 어떤 집단이든 재산과 권력을 선점한 계층은 후발 주자를 쉽게 용납하지 않는다. 황야에 서서히 온갖 인종들이 모이며 약육강식 법칙을 철저히 따른 과정. 약자는 도태되고 가진 자가 대우받는 구조. 바로 오늘날 세계 1위 강대국인 미국이 성장해 온 방식이다.


미국의 부끄러운 역사가 된 존슨 카운티 전쟁은 연방군까지 자본가 지주 편에 가담했던 실화이다. 있는 자들을 먼저 보호했던 약육강식 생존 법칙은 미 역사에서 이때부터 시작된 걸까. 이 내전을 돌이켜보며 1992년 LA 폭동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이때도 미 경찰은 한인타운이 아닌 부유층 백인 거주 지역에 인력을 집중시켰다. 약자가 공권력 보호 대상에서 후 순위로 밀리는 역사는 되풀이되는 걸까.




무한반복되는

학벌-자본-정부 카르텔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미 서부 개척시대에도, 지금도 명문대는 학력보단 학벌을 키우는 기관으로 돋보인다. 이 시절에도 대학은 자본가 양성 기관이며 졸업한 지식층은 사회 구조를 지배하는 권력층으로 흡수되었다. 영화에서 이들은 좋은 머리로 무법자들을 처형할 것이라는 법적 명분을 만들어 기득권을 해칠 수 있는 시도를 봉쇄하려 한다.


결국 존슨 카운티 학살 계획은 영화에서도 성공한다. 제임스는 자신을 연모하던 창녀 엘라와 함께 새로운 삶을 꿈꾸지만 자본가 세력은 이들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기득권층을 무단 이탈해서 창녀를 사랑하고 미래를 꿈꾸었던 제임스에 대한 복수였을까. 결국 엘라는 자본가들이 쏜 총격에 맞아 생을 마감한다.




21세기는
자본신분제 사회


이미지 출처: IMDb.com


영화 속 마지막 장면. 1903년, 로드 아일랜드 뉴포트 해변 위 화려한 보트 안에서 제임스 부부의 표정은 모두 우울해 보인다. 그는 몸소 서민이 되어 무엇이든 가능하리라 믿었던 젊은 시절의 환상에서 벗어났다.



이미 한국은, 아니 세계는 자본신분제 사회로 접어들었다. 왜 ❮기생충❯ ❮오징어 게임❯이 국경을 넘어 공감을 얻었겠는가. 현재 SKY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 상당수는 강남 3구 출신이다. 왜 2030 세대들이 '공정'이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가.


이젠 '자유'라고 쓰고 '자본'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보자. 그러면 지금 사회가 돌아가는 많은 현상이 설명된다. 합법적인 틀에서 진행되는 수도 및 가스요금 인상, 기간산업 및 의료보험 민영화 시도처럼. 공권력을 거머쥔 세력이 입법 & 사법권까지 슬금슬금 넘보는 야욕은 역사에서도 반복되는가. 있는 자가 더 많은 자유를 누리는 사회. 흙수저와 금수저로 유리 천장이 나뉜 사회. 과거 황무지를 개척하며 꿈을 키우던 옛날에도, 지금도 계급을 가르는 현상은 반복되고 있다.




P.S.  2023.10.19에 한국에서 개봉하는 <플라워 킬링 (Killers of the Flower Moon, 2023)> 또한 미국 백인들이 부를 거머쥐기 위해 원주민 오세이지 족을 학살한, 어두운 미국 자본주의 역사를 담은 영화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 로버트 드니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출연. 


 작품 역시 상영 시간이 206. 영화관에서 오래 걸어놓기엔 부담되는 길이다. 관심이 있다면 되도록 빨리 보는  좋을 .






* 이 글은 뉴스 앱 '헤드라잇' [영화관심_Kino Psycho] 2023.04.10 콘텐츠로 발행되었습니다.


https://m.oheadline.com/articles/gjhNNhhIgwssUfekLeR1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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