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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색광선 Apr 06. 2023

덕후, 반항아, 개척자가 만든 농구화. 에어 조던

에어(Air, 2023)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회사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괴짜. 하지만 자기 일엔 진심인 사람들. 나이키(Nike)라는 생태계에선 이런 직원들이 마음껏 서식할 수 있었다.


뭐든 진심이 통해야 일이 풀린다. 오늘날 나이키를 상징하는 농구화, 에어 조던은 조직에서 별종들 덕분에 탄생할  있었다. 신발에 미친 경영자, 농구엔 진심인 스카우터, 운동화에 빠삭한 덕후 디자이너. 어떤 희한한 의견이라도 귀담아들을  아는  몇몇 사람들은 자기 일을 진심으로 해냈다.


이젠 운동화는 물론이고 스포츠웨어 전반을 대표하는 나이키. 하지만 1984년에 나이키는 컨버스, 아디다스에 이어 3등이었다. 나이키가 시장 지배자로 우뚝 선 계기는 불세출의 농구 스타 마이클 조던을 모델로 영입해서였다. 하지만 당시 유망주였던 마이클을 나이키로 데려오는 과정은 험난했다. 관료주의, 사내 정치를 타파해야 했고 실무자는 상사에게 반항해야 했다. 숫자가 아닌 직감에 따라 과감히 판단해야 했고 구태의연한 기존 업무 방식을 밀쳐내야 했다. 이 모든 변칙 플레이가 에어 조던을 만들었다.



현장에서
직감을 따른
변칙 플레이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소니(멧 데이먼 역)는 고등학교 농구 경기들을 둘러보면서 원석을 가려낸다. 사막에서 진주 찾기. 이걸 하라고 CEO(벤 에플랙 역)는 소니를 채용했다. 그리고 소니는 마이클 조던을 알아봤다. 하지만 소니가 전략 회의랍시고 직원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말이 통하지 않았다. 경기 실적만을 보고 안전하게 몇몇 선수에게 골고루 모델 영입을 제안하는 전략은 누구라고 못하겠는가. 직원들이 관습대로 일하면 월급은 받겠지만 회사는 생명력을 잃게 된다. 나이키에 이런 관료주의가 스며들지 않게끔 소니는 기꺼이 직원들과 싸웠다. 마이클 조던에 올인해야 한다고.


이런 제안은 CEO도, 마케팅 담당자도 불안하게 만들었다. 왜냐고? NBA 입단 전 조던은 아직 유망주일 뿐이었다. 하지만 소니는 자신의 일을 할 땐 사무실이 아닌 농구 현장에 있었다. 회사에 있는 소니 방은 온갖 농구 비디오테이프들이 난잡하게 쌓여 있고 지저분했다. 진짜 농구 경기의 감각을 뼛속까지 알기에 그는 조던 어머니를 만났을 때도 핵심을 말할 수 있었다. 컨버스, 아디다스와 미팅을 하면 아마 조던을 찬양하는 감언이설을 할 거라고. 이 시나리오대로 조던이 따라가길 원하지 않는다면 나이키와 만나달라고. 그는 솔직했다. 이 말 한마디가 조던 어머니 마음을 움직였다.


아마 이게
제 인생 최대 실수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전 조던을 포기하기 싫었어요.
아드님은 저희 같은 사람과 일해야 하지 않나요?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나이키가 조던을 위해 만든 단 한 켤레의 시제품. 이 운동화를 만드는 과정 또한 과감했다. 신발 색깔의 비율을 엄격히 정해 놓은 농구 규정을 어기고 매 경기 5000달러라는 벌금을 물자. 이까짓 거 나이키가 내면 된다! 이들은 오로지 조던을 위한 맞춤형 신발, 조던이 자기 분신이라고 느낄 만한 아름다운 운동화를 만드는데 집중했다. 운동화 디자이너는 사내 주차장에 있는 CEO의 차 옆에서 위험하게도 신나게 스케이트 보드를 타던, 신발 역사를 꿰고 있던 별종이었다. 오른발, 왼발 신발을 구분하기 시작한 게 불과 600년 전이라는 건 덕후만이 안다. 반항기로 똘똘 뭉친 '에어 조던'은 이렇게 탄생했다.


CEO는 나이키의 초장기 시절을 기억했다. 어떤 회사를 키우려면 시장을 뒤흔들어 놓을 만한 대안을 가진 반역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걸. 그래서 이들을 믿고 과감한 결단을 할 수 있었다. 이사회 주주들의 눈치를 보는 관행을 피하고 업계 최초로 운동화 판매 수익을 선수와 나누는 판단. 이 역사적인 결정을 통해 마이클 조던과 나이키는 운명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었다.



반역자들이
주인공이었다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보통 신생 기업에는 이런 사람들이 모두 있다. 어떤 회사가 탄생하려면 기존 시장에는 없는 서비스나 상품을 만들어내려는 반역자적인 정신이 기폭제가 되어야 한다. 어떤 회사든 창립 멤버들은 업의 핵심에 집중하려는 사명감, 나만이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주인의식, 어떤 난관도 기꺼이 투쟁하며 헤처 나가려는 개척자 정신을 갖고 있다.


하지만 조직이 점점 커지고 새로운 인력들이 영입되면서 이런 창업자 정신은 서서히 사라지며 파편화된다. 사람들은 월급 루팡으로 점점 변하며 유리한 입지를 다져 평생직장으로 안주하려고 사내 정치가 활개를 친다. 직원들이 안일해질수록 더 나은 대안을 위해 갈등을 직면하기보다는 실세를 따라 비위 맞추기에 급급하다. 구성원들이 이런 처세술에 익숙해지면 그 회사엔 미래가 없다. 결국엔 성장 동력을 서서히 상실하며 그 기업만의 DNA를 잃는다.


그러나 나이키는 이 길을 가지 않았다. 기업 로고 모양처럼 과감히 방향을 전환했다. 턴어라운드(turnaround). 이걸 해낸 사람들은 조직에서 주류와 계속 부딪히던 소수였다.


입사 지원을 할 때 자신의 MBTI를 회사가 좋아하는 유형으로 속여서 말한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다양한 사람들의 개성을 존중하려 만든 심리검사가 사람에게 선입견을 씌우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게 씁쓸하다. 잊지 말자. 나이키 안에는 별종, 반항아, 개척자들이 있었다. 3등에서 1등으로 점프한 건 이들이었다.



참고도서_창업자 정신 ㅣ 한국경제신문사, 2016년




* 이 글은 뉴스 앱 '헤드라잇' [영화관심_Kino Psycho] 2023.04.06 콘텐츠로 발행되었습니다.


더 많은 글을 보시려면 ‘헤드라잇’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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