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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색광선 May 08. 2023

아빠, 여우처럼 영악해지고 짐승처럼 잔인하라고요?

판타스틱 Mr. 폭스(Fantastic Mr. Fox, 2009)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에헴, 전 여우랍니다. 전 가정이 있는 유부남 여우예요. 집엔 저와 똑같이 생긴 아들과 아내가 각각 한 마리, 아니 하나씩 있어요.  좀 더 소개하자면 전 그야말로 판타스틱한 멋진 가장이 되고 싶어요. 인간처럼 여우 가장도 먹고살자고 고생하는 건 똑같답니다. 더 맛난 먹이를 갖고 싶고, 더 좋은 집에서 살고 싶고요.


근데 여우랑 인간은 모두 나이를 먹을수록 남을 속여먹는 데엔 선수가 되나 봐요. 어느 날 전 아내와 산책길에 맛난 먹잇감 냄새를 맡았어요. 그래서 쏜살같이 훔쳐 먹으려다가 그만 덫에 걸리고 말았지 뭐예요. 결국 아내가 그러더라고요. 이젠 이렇게 위험한 짓을 해가며 살지 말자고요.


이미지 출처: IMDb.com


하지만 인간계 속담에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말이 있죠? 지금 사는 집은 마음에 안 들더라고요. 더 늦기 전에 과감히 부동산 투자를 해서, 좀 더 전망 좋은 집에서 살고 싶더라고요. 제 아버지도 여우력으로 7살 반 정도 되었을 때 돌아가셨거든요. 그래서 죽기 전에 좀 더 좋은 집에서 살아보려 하니 몇몇 잔인한 인간들이 신경 쓰이더라고요. 물론 목돈이 필요하니 제가 좀 더 야망을 갖고 투잡을 뛰어서라도 벌이를 더 해야 해요. 그리고 제가 바라는 명당은 바로 보기스(Boggis), 번스(Bunce), 빈(Bean)이란 놈들이 있는 언덕이에요. 근데 이렇게 뚱보, 홀쭉이, 난쟁이란 별명처럼 생긴 건 다양해도 인간들이 못된 건 다 똑같아요.


제 친구인 주머니쥐, 카일리가 있거든요. 얘랑 같이 이 농부들 집을 야밤에 차례차례 잠입했어요. 닭장에서 닭도 훔치고, 사과 주스도 얻고. 우린 약삭빠르기 때문에 경비견 비글쯤은 문제없어요. 개가 좋아하는 블루베리 안에 수면제를 넣어서 먹여버리면 잠재워 버릴 수 있거든요. 자꾸 인간이 사는 데를 넘나 든다고 뭐라 하지 마세요. 우리도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어요. 인간들이 우리가 살던 터전을 다 차지해 버렸으니까요.


이미지 출처: IMDb.com


사실 제 아들도 저처럼 좀 더 영악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이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거든요. 아들과는 반대로 사촌 크리스토퍼슨은 굉장히 날렵해요. 높은 나무에서 다이빙도 잘하고 말주변도 좋으니 또래 친구 중 호감녀도 금방 생기나 봐요. 그러니 저도 모르게 자꾸 아들에겐 운동신경도 모자라는 애라고 나무라고 사촌만 칭찬하게 되네요. 저도 아빠로서 별로 좋은 양육법은 아니라는 걸 알지만 어떡해요, 아들만 보면 답답한걸.


우리 여우들은 남을 티 안 나게 속일수록 더 칭찬받나 봐요. 인간들도 그런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중요한 도둑질을 할 땐 아들이 못 미더워서 사촌 크리스토퍼슨을 선택했어요. 아들은 속이기를 인정 못 받아서 아직 영예로운 강도 모자를 못 받았거든요. 그래서 얜 불만인가 봐요. 그나저나 아내에겐 제가 훔쳐온 닭을 어디 딴 데서 구했다고 거짓말했거든요. 내 딴엔 악착같이 벌어보자고 이렇게 한 건데 아내는 가장의 심정을 이해 못 해주네요. 결국 부부 싸움을 했어요. 아들 앞에서 부부가 서로 각자 자기 말만 떠들어대니 항상 자식 앞에서 민망해지곤 해요.


이미지 출처: IMDb.com


그나저나 이 농부들은 동물들과 같이 사는 법을 모르나 봐요. 자기네 터전을 조금도 나누려 하지 않아요. 우리 여우들을 박멸한다고 불도저로 우리가 살던 땅을 트랙터로 다 헤집어 버리는 거 있죠? 전 진짜 열심히 벌어서 가족과 좋은 데서 한 번 살아보고 싶었는데 더 힘 좋은 인간들은 거길 또 뺏으려 하네요. 인간들은 힘이 아니라 돈으로도 땅을 뺏는다던데 그런 걸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고 하나요?


우린 땅굴을 파가며 더 깊이, 깊이 숨었어요. 하지만 인간들도 자기들의 영역을 넓힌다고 땅을 더 파버리니 정면 대결은 피할 수가 없네요. 결국 전 야생동물들을 모두 불러 모았답니다.



이미지 출처: IMDb.com


아무래도 제가 가장으로서 생각을 잘못한 거 같아요. 욕심을 조금만 버리고 아들의 못난 점만 보는 대신 잘하는 걸 칭찬해 줄 걸 후회가 되네요. 야생동물들이 다 모이니 제각기 가진 장점들이 보이더라고요. 전 정말로 판타스틱하게 명연설을 했답니다. 우리가 서로 장기가 다르니 이걸 잘 살려 보자고요. 그리곤 결국 합심해서 인간들을 혼내주는 데 성공했어요.


그나저나 이젠 아들에게 타고난 야생 여우처럼 더 영악해지라고 말해야 할진 모르겠네요. 저도 욕심을 부리고 성공해보려 했는데 저만큼 탐욕에 넘친 인간들과 부딪히니 모든 걸 다 걸고 잔인해져야 목숨을 건지더라고요. 어떻게 세상에서 버티기를 해야 할지 아직도 미지수예요. 그래서 아들에게 제 경험만으로 훈계하는 건 이젠 그만하려고요.


 




이 글은 뉴스 앱 '헤드라잇' [영화관심_Kino Psycho] 2023.05.07 콘텐츠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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